섬세하고 어려운 일
대학생 때 무척 좋아했던 친구가 있었다.
취향도 명확하고, 워낙 예쁜걸 좋아하는 친구인데다 좋은 걸 해주고 싶은 욕심에
그 친구에게 줄 선물을 고르는 일은 매년 나에게 큰 고민 거리였다.
그렇게 몇번 고심을 해서 친구에게 준 선물들이
어쩌다 놀러간 친구의 집에서 보이지 않을 때마다 적잖이 실망을 했던 기억이 있다.
"아, 이번에도 실패구나."
나중에는 내가 해주는 것들은 그 친구의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라는 생각에 다다랐고,
그 영향은 다른 친구들의 선물을 고르는 데에도 미쳤다.
선물을 주고도, 마음에 들지 않아할까봐 마음을 졸이게 되는거다.
사랑받고 싶은 지나친 욕심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준 선물이 상대방에게는 쓸모없는 짐이 되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하고,
선물 하나에 오만가지 생각을 했었다.
나는 선물이나 편지를 받으면 어린 시절부터 모아두고, 귀중하게 여겼다.
아직도 초등학생때부터 주고 받은 편지들이 시골 집 보물상자에 고이 보관되어있다.
심지어는 선물 포장지까지 잘 접어서 가지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정도는 아니지만 말이다.
그냥 그 마음이, 너무도 고마웠던 건데
두려운 마음 반, 내 손을 떠난 것을 상대방이 어떻게 활용할지는 내 권한 밖이라는 생각 반으로 어찌했는지는 물어보지 못했다.
그렇게 조심스럽고, 또 두려움까지 내포했던 친구와의 관계는
기술사 공부로 내가 먼저 연락을 하기 어려워지자 멀어졌다.
영화 '500일의 썸머'를 처음 보면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듯 보인다.
그런데 두번째 보면 사실은 남자주인공은 자신의 감정이 취해, '누군가를 사랑하는 자기 자신'에 취해있을 뿐 여자주인공의 취향과 같은 세세한 부분에는 관심이 없다.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 자신이 원하는 것에 여자주인공을 끼워맞출 뿐
어쩌면 내가 그 친구에게는 그런 존재였을지 모른다.
심지어는 그 친구의 취향에 끼워맞춰지는 척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엇나갔을 지도.
선물을 고르는 건 그래서 내겐 너무 어려운 일이다.
사려깊은 친구들은 무언가 하나를 줄 때에도, 상대방에게 혹은 상대방의 집에 그 선물이 필요한 것인지를 먼저 묻곤 한다.
그게 비록 자신에게는 최고의 것이라고 해도, 상대방에게는 아닐 수도 있다는 그 '다름'을 아는 친구들이다.
또 어떤 친구들은 그저 그 선물에 담긴 마음만으로도 고마워하는 친구들도 있다.
30대 후반이 지나면서 각자 자신의 취향이나 삶의 모양새가 명확한 윤곽을 갖추게 됐다.
그러다보니 먼저 필요한게 무엇인지를 묻게 되는 경향이 짙어진다.
'위시 리스트'에 선물이 담겨있는 사람은 보기에 따라 이기적일 수도 있고, 배려심이 깊을 수도 있는 거다.
나의 경우는 내가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을 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고민을 덜어주고자 위시리스트를 가격대별로 일부러 담아두는 편이다.
신기한 것은 무엇을 주고 받든, 그게 무심한 말 한마디이거나 기프티콘 하나라도
어떤 사람이 주면 평생을 잊지 못할 소중한 보물이 되고,
어떤 사람이 주면 내게 아무리 필요했던 것일지라도 곁에 두고 있기 부담스럽다는 거다.
물건이나, 말이나, 편지에는 그 사람의 기운이 묻어있는지도 모른다.
좋지 않게 헤어진 연인들을 보면 어떤 사람은 '물건은 죄가 없다.'면서 아무렇지 않게 그 물건을 쓰지만 어떤 사람들은 아무리 소중해도 버린다.
'받은 것'은 무의식 중에 '준 사람'과 연결지어진다.
그 '준 사람'에게서 묻어나오는 향기가 그 '받은 것'의 존속을 결정짓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