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728 밤을 위해 낮을 포기 했다

신세계백화점 본점

by Noname

점심을 먹고, 16방위로 산책을 하고 있다.

프로젝트 초반엔 낯을 가린다고, 또 그동안 습관적으로 점심을 먹고 개인시간을 보냈기에 합류하지 않았었다.


언젠가 그냥 한번 따라간 산책이 이제는 빼먹으면 아쉬울 지경이 되었다.


을지로입구를 중심으로 사방팔방 정말 16방위로 산책을 다닌다.


농담삼아 ‘점심 직장인 산책 기행’이라며 이름까지 붙였다.


연말이 되면서 신세계 백화점 본점은 장식을 시작했다. 작년에는 상암동에만 있었기에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루미나리에 같은 걸 한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루미나리에는 장인정신으로 한땀한땀 빛을 엮은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한참 공사를 하던 신세계 본점, 장식이 모습을 드러냈다고 했다.


점심시간 우리는 기대를 품고 신세계 본점 쪽으로 산책을 갔다.


밤에 빛나기 위해선 낮에는 적잖이 흉물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루미나리에라면! 이라고 생각했는데, 패널로 뒤덮인 건물은 낮에 보기엔 역시 흉물스러웠다.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까

오늘 갔던 서울시립미술관의 외관이 주는 엔틱하지만 무게감 없는 그 모습을 본 느낌과 같았달까


팀원분들께서 밤에 찍은 신세계 본점의 동영상을 보내주셨다.


패널에 화려한 영상이 온갖 색으로 뿜어져 나왔다.

“엇 팀장님 저거 패널 몇개가 들어 간 걸까요?”


역시 나는 낭만 따윈 없다보다.

일전에도 김포 대형카페 사진을 공유해주신 팀장님께

“어머 팀장님 저 정도 규모면 소리가 진짜 많이 울리겠어요. 계산대가 한 곳이라면 줄 길게 서야겠네요.”


라고 망언을 한 적이 있는데 또 그랬다.


밤에 빛나기 위해 낮을 포기한 건물과

낭만을 즐기기 전에 견적부터 들이대는 나는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나의 밤은 아직 오지 않았기에 적나라한 낮의 세상에서 너무 모든걸 똑똑히 보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철저하게 설계되고 설치된 설치물이 있기에 밤의 아름다움이 한층 더 빛이 난다.


얼마지나지 않아 나의 찬란한 밤이 오겠지.

그럼 이 낭만따윈 말아먹은 적나라함도 그 모든 어둠에 가리워지고, 아름다움을 뽐내게 되겠지.



빛을 위해 어둠을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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