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719 인생최초 당일 휴가

그럴만했다.

by Noname
KakaoTalk_20221216_001253489.jpg 2021년 10월 5일 변태사건으로 인해 전화심리상담을 받으며 정리한 내용

되도록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 매몰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내 자신이 만들어낸 세계에도 갇혀 있는 상황에서 외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반응하기엔 인생에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고, 나의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어떤 사건의 중심에 있게 되었다.

대체로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그걸 견디는 역치는 10일 정도인것 같다.

적당한 자극을 넘어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하루 24시간의 절반 이상 할애가 되어야하는 자극이 지속적으로 가해질 경우. 10일


작년 9월에 발생했던 관음사건의 내용은 이렇다.

우리집은 3층이었고, 건너편 공사중인 건물은 옥상까지 5층 정도의 건물이었는데, 비계와 철망이 쳐져있었다.

내가 귀가한 시각인 밤 9시 30분에 맞춰 검정색 카니발을 타고, 그 건물에 당도한 남자가 신발을 갈아신고 그 건물에 들어갔고, 밤 12시 30분 경 뭔가가 계속 뜯기는 소리에 벌레인 줄 알고 창문을 봤다가 남자를 발견한것.


바로 소리를 지르고 경찰에 신고를 한 후, 동생집으로 피신 조치가 되었다. 혼자 운전을 하며 동생집에 가던 그 사이의 기억은 두려움과 심장소리와 끔찍함이다.


KakaoTalk_20221216_002158386.jpg 1m거리의 옆집 건물 비계에서 철망을 뜯었던 흔적


그 사건을 겪었을 때, 다들 이사를 가라고 했지만 어차피 그 건물이 완성되면 안전해질 것이 자명했기에 난 이사를 가지 않았다.


물론 작은 소리에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스트레스 상태에서 몇달 동안 밤에 외출을 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경찰은 가해자가 내게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한 것이 없기에 잡더라도 처벌하기 애매하다며 스마트워치를 두달 동안 쓸 수 있게 해주었고, 심리상담을 지원해줬었다.


내 스스로를 지키던지, 누군가로 부터 보호를 받던지 선택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그당시에는 누군가로부터 보호 받는게 나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안전한 곳으로 이사를 가는 거겠지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았으니.


그때 알았다. 여성은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어있다는 걸


군인, 경찰, 소방대원들에 대한 어떤 신비함이 있었다. 사람들을 돕고, 구해주는 사명감이 멋있었기에 그런 남자친구를 만나면 되지 않을까 짧게 생각하고, 잠시 군인인 분을 만났지만. 사람이 영 아니었다.


11월 부터 운동을 시작했고, 늘 강해지고자 했다.

물론 재미도 있었지만, 지금보니 매일 캘리클락슨의 스트롱거를 들으며 운동을 한거로 추정컨데

나는 그냥 내 스스로 나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당시 회사는 일이 너무도 많았고, 휴가를 쓸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다.

주말에는 요가선생님을 만나거나 하면서 주변의 따뜻한 지인들 덕에 심적으로 많은 힘을 내며 잘 견뎌냈고, 공사는 끝났다.


한동안 검은색 카니발을 보면 소름이 끼쳤는데, 그것도 상담을 받다보니 많이 좋아져서 이제 그 기억은 많은 걸 배운 경험으로 남았다.


이번에 겪는 사건은 아직 진행중이라 언급할 수 없지만,

전날 상담을 받으면서 감정이 폭발했고, 그 잔여물이 남아 힘이 들었다.



사건이 공론화되면서부터 휴가 생각을 했지만, 현재 프로젝트와 프로젝트 분들을 생각하며 굳이 휴가를 길게 쓰고 싶진 않았다.


그래도, 오늘은 쉬어야했다.

그럴만 했다.


인생 최초로 눈을 뜨자마자 팀장님들께 연락드리고 휴가를 올렸다.


휴가를 쓸 당시 계획은 동생이 나가길 기다렸다가 혼자서 실컫 울고, 동네의 맛있는 스프를 사먹고 돌아와 그림을 그리고 운동을 가는 거였다.


공교롭게도 동생이 없을 시각인 11시 우리는 서로를 발견하고 조금 당황했고, 펑펑 내리는 눈에 잠시 신이 났고, 동네 그 스프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시켜먹었다.


그리고는 목욕탕에 갔다. 친절한 분들이 참 많은 동네라며 동생과 웃었다.

이야기를 하다 알보고니 동향 출신이신 세신사 분께 말끔히 세신을 받고, 보송보송한 몸으로 고기를 사먹은 후, 낮잠을 잤다.


한참자다 일어나 운동을 다녀온 하루.

동생 PT시간에 맞춰 가다보니 운동을 1시간 20분 밖엔 하지 못했지만, 적당히 좋았다.


둘이라서 위안이 되었겠네.

하셨던 목욕탕 사장님 말씀이 귓가에 맴돈다.


잘 했다. 쉴만했다. 다시 힘내보자.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마흔-721 건넛집 불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