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016]굿바이 얄리:다정한 죽음

사서 고생과 카르마

by Noname


눈물이 마를 무렵 희미하게 알 수 있었지
나 역시 세상에 머무르는 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할 말을 알 순 없었지만
어린 나에게 죽음을 가르쳐 주었네
굿바이 얄리
이젠 아픔 없는 곳에서 하늘을 날고 있을까



사람이 죽음을 맞딱드리는 시기는 정해져 있지 않다.

그리고 그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저마다 미묘하게

그 삶을 형성하는 거대 요인이 된다.


신, 종교, 미신, 주술, 천국과 지옥, 이승과 저승

이 모든 개념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파생되었다.


인간이 갖는 죽음에 대한 공포는 충분히 정치적, 상업적 활용이 가능했으며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정서를 조작하는 수단으로써 이득을 보거나,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의적 조종에 따르고 있다.


죽음에 대한 맞딱 드림이 자연스럽지 않을 경우,

그의 인생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정상적으로 형성되지 않은 강화물(클루지)로 인하여

삶이 피폐해진다.


그리하여



살아있다는 인식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살아있다는 인식이 지나쳐서


살아 있다는 게 지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살아있는 것 자체가 삶의 과제가 되어버리는 거지


사서 고생


이 사서 고생 알고리즘이 유년기에 형성되면

회피성 인격장애, 경계성 인격장애가 되는 경우도 있는데


MBTI의 INTP 유형을 보면 타인을 부정하고, 종종 자신을 부정하는 성향.



일곱살 짜리 유치원 생이 있었다.


유치원 졸업식날 동생이 갑자기 사라져서 3일간 실종 상태였고,

3일 후, 물에 잔뜩 불은 차디찬 주검으로 발견이 되었다.


당시 누군가는 일곱살 짜리에게 '너 때문이다.'라는 말을 했고


그래서 인지 뭐든지 지나치게 본인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버릇이 되었고

비난 받을까봐 두려운 마음에 뭐든걸 알아서 잘 하려고 하였다.


부모님은 앓아누우셔서 눈길 한 번 주지 않으셨다.


그 어린 시절부터 매일 같이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끼치지 않고, 누구도 마음 아프게 하지 않고 죽기만을 소원하던

어떤 어린이는 차라리 본인이 죽었어야 한다는 죄책감으로 한 평생을 살게된다.


병적으로, 누군가의 생사를 확인하거나 병적으로 타인을 가까이 두지 않는다.

충분히 자신이 사라져도 슬퍼하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유지할 뿐


살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한다.

전설 같은 이야기,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배신감에 이 세상이 다 미워지는 이야기




어쩌면 학교앞 문방구의 수많은 병아리들은

어린이들에게 생명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그토록 많이도 짹짹 거렸나보다.


우리 엄마도 병아리 부터 사주지 ...

유년기 트라우마는 삶에 대한 본능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뼈에 새겨진다는 의미는 사실 DNA에 각인 되는 것을 뜻한다.


사실 '유년기 동생의 죽음'이라는 사건은 나에게까지 대물림되어 온 것으로,

심지어 어른들이 유아에게 탓을 돌렸다는 것 마저도 일치한다.


DNA자체는 매우 복잡한 알고리즘이고,

세대를 거듭할 수록 강화가 일어나고, 하드코딩 되기 때문에


더욱 난해해진다. 또한 같은 상황을 창조한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업장이라고 하고, 카르마 라고 한다.


즉, 전생이라는 것은 당신이 물려받은 유전자에 저장되어 있는

본능적 기질과 삶의 방식인 것이다.


그것만이 DNA가 살아 남기 위해 매순간 행했던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상황을 창조해서 같은 대응을 해야, 그 DNA가 정당화 되는 것이다.


해당 정보를 담고 있는 단백질 세포가 거듭 재생되려면 정당화가 필요하니까.


우리는 수천년의 인간 역사동안

가장 최고의 방식을 전수 받아 살아가고 있다 .


비록 그것이 모순덩어리에 결함이 가득할지라도


세상이 편해지고 바뀌었기 때문에

지금과는 맞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최선을 받은 것이다. 그것이 비록 최악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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