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699 문득, 한비야선생님 생각이 났다

완전한 존재

by Noname

코이카 국제협력단을 통해 29살 여름

세네갈로 봉사활동을 갔었다.

그때 어느날 한비야 선생님께서 방문을 하셨고, 큰 행사였기에 단원 모두가 참석을 했었다.


그때 나는 현지 적응기에 얻은 치열로 인해 진통제가 없이는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퉁퉁 부운 잿빛 얼굴로 진통제를 삼키고는 행사에 참석했다.


좋은 말씀들을 많이 해주신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비야 선생님과 함께 찍은 당시의 사진은 나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몰골이 말이 아니다.


신체 곳곳을 정비하고 잘 관리해야 한다는 교훈을


타고난 땅에서 겪는 병도 어려울진데 풍토가 전혀 다른 타지에서 얻은 전염병과 신체 내외부의 손실은 내 몸을 제대로 관리해야만 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주었다.



그런 현장을 다니는 한비야 선생님이 매우 존경스러웠다. 접종해야하는 백신도 한두개가 아니라 국내 교육 당시 양팔에 동시에 주사를 맞은 날도 있고, 어떤 백신은 맞고 내리 사흘을 앓은 적도 있었다.



당시 국제단원 생활은 2년이 의무 기간이었지만 돌아가신 아버지의 병환으로 1년을 일찍 중도 귀국했다. 곧바로 에볼라가 터져 다른 단원들도 거의 돌아왔었는데, 한달만 더 버텼다면 유예가 됐겠지만 아마 다시 돌아가진 못했을거다.



2년을 다 채우고, 내가 당시 목표했던 길을 갔다면 지금의 내 삶은 어땠을까


물론 그 경험을 연장하기 위해 기술사를 취득했고,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가기 위해 에티오피아와 보츠와나를 검토하던 중 허리디스크로 다시 한국에 주저 앉았다.


몸을 완전히 회복 시키고, 운동을 하여 체력을 만들고, 이제는 건강한 정신을 만들고 있다.


한비야 선생님은 60나이에 결혼을 하셨다.

한 사람이 자신의 정체성을 거의 완전히 정립하고 난 후에 그 영혼을 견주어 잘 맞는 사람을 찾을 수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모든게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상태에서 누군가에게 기대고 의지하고자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내 삶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욕심이 있다.


“난들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

하는 노랫말이 맴돌았다.

나조차 내가 누구인지 명확치 못해 흔들리는 촛불과 같은데 어떻게 그 누군가의 영혼이 나와 닮았다고 단정 지을 수가 있겠나


아직 만들어져가는 중이다.

잘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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