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의 다짐
어린 시절 다짐했었다.
35살이 되면 출가를 하거나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살겠다고.
자기 자신 밖에 모르던 이기적인 꼬마가 처음 마음을 낸 건 중학생 시절 사후장기기증 신청이었다
부모님의 동의를 얻어야했고, 부모님은 어쩌면 착찹한 심정으로 동의를 해주셨다
텔레비전에서 봤는지, 한 사람이 사후에 기증한 장기가 여러 사람의 삶을 바꾸주었다는데에 감동을 받았었다
그리고는 20살, 대학생때 친한 언니는 어머니의 소원으로 해마다 크리스마스에는 교회에 나가는데 그때는 무슨 봉사활동 겸으로 이벤트를 위해 풍선만들기 등등을 배우기 위해 그 몇주전부터 나가야한다고
나보고 같이 가자고 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연애중이고, 마침 할일도 없던 나는 그저 언니랑 놀려고 같이 나갔었다. 홍대의 어느 교회였던 듯하다. 지금도 그 길가에서 언니랑 같이 먹던 쌀국수집이 생각이 난다.
어린시절부터 선생님들로부터 예쁨을 받아서 딱히 봉사활동을 일부러 해본적이 없었다.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언니는 그 첫날 이후로 바쁘다고 나오지 않았지만 나는 몇번을 더 갔다.
그냥 별거 아닌 풍선 만들어주기 노래부르기 였는데 누군가를 위한 일이 된다는게 정말 기뻤던 것 같다
늘 관심을 갖던 해외봉사활동을 가고자 했지만 엄마가 한국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네가 졸업하고, 일을 4년을 하고도 가고 싶으면 가라고 하셨다.
그 뒤로 봉사활동을 이곳저곳에서 하다가 2012년에 친구의 소개로 나눔문화라는 곳에서 친구교사활동을 했다. 주말마다 친구들을 만나면서 정말 영혼 깊이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다.
정확히 경력 4년을 채우고, 엄마에게 당당히 나는 이제 떠나겠노라고 아프리카를 갔었다.
어린 시절부터 늘 죽음을 코앞의 일로 생각하던 내게는 그 모든 것들이 “지금 당장”을 기준으로 움직였다.
다만, 부모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그러니 늘 아쉬움이 없이 자유롭게 삶의 선택을 계속해온 내게 35살 이후의 삶은 보너스 인생이 되었다
실제로 35살에는 대둔산에 들어가 명상과 몸을 단련하며 1년을 보냈으니, 더더욱 그렇다
그렇게 다져온 내 삶에 추가로 주어진 이 삶이 얼마나 소중하겠는가
35살을 넘어 마흔을 바라보는 시점
어떤 선택을 하든 잘 해낼거라는 확신이 있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하든 상관이 없었다.
지금은 그저 물 흐르는 듯 살고 있지만
도중에 돌아온 아프리카 봉사활동이 못내 아쉽다.
그래서 언제 어떻게 누굴 만나도 내가 잘하는 일로 도움을 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계속 공부를 한다
삶이 언제 멈추어도 후회할 일은 없지만
삶이 어느 정도는 지속된다는 가정하에 지금당장보다는 후일을 기약하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얼마전 아프리카 이야기를 꺼내자
엄마가 정색을 하셨다
“아이 뭐, 당장은 아니더라고 나중에라도 갈 수 있다는 거쥬.”
나는 엄마 말을 여전히 너무 잘 듣는다. 소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