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684 날개가 부러진 새

패거리가 필요하다

by Noname

사람들은 이런 기분이 들때, 술을 마시고 싶어지는 걸까? 괴로워서?


날개가 부러진지 꽤 오래 되었다.

8년.

숨이 막힐듯한 공포를 느낀 적도 있었다.

영원히, 다시는 날아오를 수 없을 것 같아서


솔직하게 말하자.

내가 카프카의 ‘변신’을 읽고, 느낀 카타르시스는 거짓이 아니었다. 나는 카프카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감사함을 느낀다.


진심으로 그레고리의 가족들이 그레고리가 죽음을 선택한 후, 다시 일상을 살아감에 감사를 느꼈다.


하지만 나는 아빠가 돌아가신 후, 돌아가지 못했다.


트라우마는 살면서 겪는 비슷한 일을 계기로 다시 한번 격발된다.


그걸 깨고 나올지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이걸 자유의지라고 한다.

내 자유의지는 꺽이고, 부러졌다.

정확히는 내 스스로 꺽고, 부러뜨렸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어린시절부터의 좌우명을 버렸다.

한편으로는 확인해보고 싶었다.


내가 부당했던 조직문화에 반기를 들고, 지리멸렬함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으로부터 도망을 쳤던 건지, 아니면 과감하게 지극히 이상아스러운 선택을 했던 건지


사실 나는 부당함을 참았던 적이 없다.

참아주는 척을 했더라도 결국 어떻게든 반기를 들었으니까.

그래서 더더욱 내 친구들은 내가 한국에서 누군가를 만나 결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아주 잠시 평범하게 안정적인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세네갈에서 알게된 지인분께서는 남자를 소개해주시면서 “너도 이제 결혼해야지. 남편 내조하면서 일하지 말고, 대학원은 무슨 대학원이야. 그 남자 만나봐.“ 하시는 분이 계시다.


“그래야할까?”

오늘도 그분께서 전화를 주셔서 같은 말씀을 하셨다.


눈물이 났다. 심장에 멍에가 씌어지는 느낌이었다.

부러진 채 아직 낫지 않은 날개가 푸드덕거리면서 날고 싶다고, 다시 날아올라 창공을 날고싶다고 피를 뚝뚝 흘리고 있었다.


삼주 전, 쉬고 있는 내게 “프로불평러의 반항의 기술”이라는 책을 추천해주신 분이 떠올랐다.


읽던 책을 다시 집어들었다.

그분은 알고 계셨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일상 블로그에 가감없이 내뱉던 내 글의 스타일을 바꿔야겠다고 했을때,

내가 정신과 약을 먹고, 차분해졌을때,


과장님답지 않다며 아쉬워하셨던 분이다.

남자 이상아라고 지인으로부터 소개를 받았던 분이다.

비슷한 사고방식과 삶의 모양새를 가진 사람을 두번째로 만났다.


처음 만난 분은 코이카봉사단 교내교육 중 같은 방을 썼던 언니다. 최근 10년간의 봉사활동 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에 돌아와 10년만에 나를 다시 만나고 싶다고 했더랬다.


열정으로 이글거리는 눈빛과 건강한 에너지가 넘치게 흘러나오던 내 모습을 기억하는 분들이 계시다.


하고싶은 걸 하라며 용기를 주신 분들이 계시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어디로든 길은 있다.”


패거리가 필요하다.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묻는 사람들말고, 잘하고 있다고 서로서로 부추겨줄 패거리


혼자서 잘 왔다. 이제 함께 할 사람들이 필요하다.

더 강력한 유대로 따로 또 같이 같은 방향을 향해 갈 사람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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