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680 함께 살기

충돌회피

by Noname

1.5룸에서 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어릴 때야 언니로서의 권위가 있었기 때문에 동생들은 내게 말대꾸를 하거나 내 과자와 같은 것들에 손을 댈 수 없었다.


지금은 이빨 빠진 호랑이라서 꿀밤 안 맞는게 다행인 상태


내가 사회초년생이 되었을 무렵 서울로 올라온 동생과 같은 방을 쓰다가, 이모님댁에서 독립을 했다.


"나는 얘랑 절대 같은 방에 살 수 없어!"


하면서 늘 방두개가 있는 곳으로 이사를 갔지만, 공동 공간이 전혀 관리가 되지 않았다.

동생은 옷가지나 물건들, 먹다 남은 과자와 음식들을 그냥 아무데나 두는 버릇이 있고, 나는 물건들이 제자리에 있어야 하고, 약간의 강박증이 있어서 라벨을 앞면으로 정리해두고 되도록 밖으로 나와있는걸 좋아하지 않았다.


처음 같이 살때는 화도 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마저도 한달에 한번 예민해지면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화를 내는 정도였다.


그러면 동생은 '치우려고 했는데, 언니가 치운거야. 성격이 더러워서 이런 꼴을 못보는 거라니까. 언니 방에 널부러진 책들이랑 내 옷들이랑 다를 바가 없어.'하면서 말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또 틀린 말은 아니니까 그렇구나 하며 지냈다.


그리고 내가 세네갈에 갔고, 세네갈에서 나는 매일 매일 청소하고, 정말 정갈하게 모든걸 정리해두고 살았었다.


돌아온 후에 같이 살다가 내가 산으로 들어가면서 다시 떨어졌었다.

그렇게 2년을 따로 살다가 마침 2021년 9월에 발생한 변태사건으로 동생과 다시 같이 지내게 되었다.

2022년 2월부터 1.5룸에서 동생은 거실에서 원룸처럼, 나는 내 방에서 산다.


한동안은 내 방에서 평화를 즐기다 방문을 나오는 순간부터 정신없는 모습에 토요일만 되면 운동을 마치자 마자 2-3시간씩 사그리 청소를 했다.


그때 친구가 물었다. "동생은 자기 물건 건드려도 뭐라고 하지 않아?"

아차 싶었다.


내 입장만 생각하면서 동생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정리를 해버린 거다. 그것도 매번

생각해보면 이모가 내 물건들이나 내가 아끼는 애착 옷들을 말도 없이 버려버리면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물론 내가 물건을 버리거나 하는건 아니지만 동생 말에 의하면 나름대로 본인은 어떤 옷을 어느 위치에 떨어뜨려놨는지 안다는 거다.


사실 합치기 전에 동생은 본인이 매우 깔끔해졌다며 동생집에 놀러가보면 정말 깔끔하게 치워져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야, 이건 사기 결혼 아니냐?"

"상아야, 그러니까 잘 알아보고 했어야지."


하며 킥킥 웃는 동생을 어떻게 하겠나. 같에 웃어야지


9월에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하면서 그런 부분들이 깔끔했던 이모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생겨난 강박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많은 부분들이 달라졌다.


어느 정도 수용이 가능한 상태가 되었고, 상담받은 이야기를 같이 하면서 동생도 가끔 집을 깨끗이 치우기 시작했다.


이제는 음식이나 물건들이 널부러져있으면 그냥 두거나 최소한의 범위에서 정리한다.


며칠전 매번 새해 인사를 먼저 주시는 분들께 큰마음을 먹고, 먼저 명절인사를 드렸다.


그중엔 재작년에 결혼을 한 허허 오빠가 있는데, 2010년 경에 같이 스터디를 같이 했던 오빠이다.

오빠는 언니들이 구박을 하고, 뭘 해도 허허거리면서 사람 좋게 궂은 일을 다 했다.


기술사 준비를 하던 중 모의고사를 보는 날 마주쳐서 같이 밥을 먹었었다.

오빠는 기술사 시험도 허허거리며 언젠간 되겠지 하면서 속편하게 이야기 해서 내게 한소리 듣기도 했다.


그렇게 사람이 좋으니 결혼 생활이 어떨지 궁금했다.

오빠는 '한 사람이 욱하는 버릇이 있으면, 아무리 나라고 해도 힘들지.'했다.

지금 부인분과 카톡방에 게시판을 운영하면서 서로에게 바라는 점을 등록하고, 관리한다고 한다.


오! 버그 수정중인가!

마침 프로젝트 통합테스트 기간이기도 하고, 결함관리와 이슈 및 위험관리를 하는 나로서는 정말 좋은 관리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식으로 관리를 한다는게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특히나 내 동생이랑은 어렵다.


사실 예전에 이런 식으로 하다가 누군가 내게 말씀하셨다.


"연애는 비즈니스가 아니에요."


하여튼 그런 것이 수용된 결혼 생활을 하는 오빠가 매우 현명해보였다.


이럴때 또 MBTI가 유용하다.

동생은 완전한 P라서 뭔가를 하기로 하면 나는 정확한 시각에 맞춰 움직이는 반면, 동생은 그런게 없다.


가령 겨울을 제외한 계절에는 일부러 회사에 일찍 가서 1시간 정도 개인시간을 확보한다. 그 편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도 수월하고, 아침부터 급하게 서두를 일이 없어서 좋기 때문.


동생은 '아니, 복잡하게 싫고, 아침부터 서두르는게 싫어서 일찍 가려면 일찍 일어나야되는데 일찍 일어나는게 스트레스 아니냐고."하면서 신기해했다.


심리 상담 선생님께 배운 "아, 나와는 정말 다른 사람이구나."가 절로 나오는 구절


사실 대부분의 경우, 애초에 내가 그냥 동생에게 다 맞추는 편이 낫다.

포기하면 편하니까.


그 덕에 나도 여유를 즐기며 누워도 있고, 정신없게 널부러져있는 동생의 잔해를 보며 인간의 삶에 대해 생각 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고.


중요한 건 내가 사랑하는 동생이 그게 편하고 좋다는데

어쩌다 한번 청소하고 생색을 내면 집이 반짝 거려서 좋다며 신나하면 되니까.


매일 깨끗하면 깨끗하다고 신나할 일이 사라지겠지.


하여튼, 동생이 있어서 좋다.


부모님이 주신 최고의 보물이라며 물건에 비유하긴 그렇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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