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676 철벽이 아닙니다.

망상

by Noname

애매한 감정은 애매하게 표현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정말 진심일 경우, 쑥스러워서 못했다고 하지만 그건 그냥 남이 자신의 감정을 유추해 알아주길 바라는 유아기적 사고와 같다. 용기가 없어서 말 못할 감정은 허왕되다.


뭐가 불편해서 혹은 제뜻대로 되지 않아

울어버리는 아이처럼

자신이 원하는 걸, 혹은 자신의 감정을 명확하게 표현하지도 않으면서 알아주길 바라는게 이상하다.


왜 말하지 않아도 알아야하는가?


그건 본인도 그 감정에 대해 애매하고,

책임지긴 싫은데 달콤함은 맛보고 싶은

이기적 발로에 지나지 않는다.


왜 표현하지 않는가, 부끄러워서?


내가 우리 아빠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직접 한 건

21살 때였다.


그때만해도 살가운 성격도 아니었고, 말을 많이 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하지만 사랑하니까,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에게는 잘하는 그 말을 나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부모님껜 부끄러워서 못한다는게 너무 어이가 없었다.


사랑한다는 말이 왜 존재하는건지 갑자기 헛웃음이 나왔다.


한시일 뿐인 연애와 같은 감정 놀이의 재료로 쓰일 요량으로 생겨난 말이 아니다.


연애가 하고 싶은게 아니다 사랑이 하고 싶은 거다.

사랑이 하고 싶으면 사랑을 할 수 있어야한다.


행위를 흉내내며 외로움을 채우려는 시간과 감정 낭비 말고,

본질인 사랑 말이다.


그런데 무섭다. 내가 떠날까봐.

누군가를 아프게 할까봐.

온전히 내가 다 받아들이고,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 찾아올까봐


그리고 무섭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날까봐

잘못될까봐. 그래서 내가 영영 일어서지 못하게 될까봐. 또 다시 슬픔에 빠져버릴까봐


망상이군.

아직 시작도 되지 않은 감정에 대해 상상하면서 두려워하느라고 그 좋은 시절을 다 보냈다.


상처 받기 싫어서

멍청하다. 속상하게


그래도 계속 이렇게 살겠지

조금만 더 살아보자

얼마 안 남았다


감정을 다 털어냈어도 심장이 기억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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