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660 카르마, 환생, 이 생의 과제

지난 목요일 상담 10회기

by Noname

근 2주간 상담 선생님과의 작업은 나의 죄책감과 근원을 알 수 없는 눈물의 정체 밝히기였다.


9회 차 상담 이전, 정신과 약을 먹으면서 많은 감정적 동요들이 사라지면서 생각이 많이 끊어졌으나 문득문득 흐르는 눈물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억눌린 무언가가 있음이 분명했다.


그 일주일 동안 가만히 있다가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일이 네 번이나 있었다.

상담선생님께 그 이야기를 드렸다.


그동안 나는 죽은 남동생에 대한 감정을 떠올려 본 적이 없었다.


예전 명상센터에서 상담을 할 때였다.


"남동생이 죽은 사건이 있습니다. "


"그래서 남동생에 대한 감정은 어떠세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나는 죽은 남동생에게 어떤 감정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남몰래 숨겨둔 동생의 사진을 보면서도 그저 죽은 동생 상록이 정도로 기억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동생에 대한 감정


오로지 동생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동생이 아닌 내가 살아있다는 수치심에 함몰되어 있었다.


죄책감을 덜어내려 20살 무렵부터 온갖 방법을 동원했지만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명상센터에서 몇 년을 수행하면서도 쉽지 않았다.


9회기 상담 이후로는 많이 덜어졌다. 아마 예전이었다면 이 상태로는 회사를 다니지 못했을 거다.


나는 스스로의 실수를 용납하지 못했다. 그 실수로 야기된, 혹은 내가 실수하지 않았더라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모든 것들을 나 자신의 탓으로 몰아세우고, 나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내몰곤 했다.


지금은 많이 편해지고, 뻔뻔해졌달까. 많이 편해졌다.


이번 상담에서는 목요일 낮, 잠시 떠올렸던 동생의 기억, 그리고 또 흐르던 눈물을 마음속에 담아두고도


고요한 상태로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많은 것이 편해졌음을 이야기드리고, 동생의 이야기를 애써 다시 꺼냈다.


단 한번도 타인의 앞에서 터뜨린적 없는 눈물이 터졌다. 하염없이 꺼이꺼이 울었다.

그 착하고, 천사 같았던 동생을 내가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이 걷어지기 시작하자,

감정이 하나 떠올랐다.


"동생이 너무 보고 싶어요."


보고 싶다는 말을 싫어했다.

어차피 보고 싶다 해도 볼 수 없는데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건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내 동생이었는데.


알 수 없는 그리움들과 슬픔과 뭔가를 지켜줘야만 한다는 강박 역시 동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연애를 하면서도 느꼈던, 결핍과 공허함과 끝끝내 이 사람이 아닌데 싶었던, 마치 피스가 하나 사라진 퍼즐 맞추기 같았던 그 모든 느낌들이 오로지 동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이 과제를 푸는데 38년이 걸리다니.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동생 생일이 남동생이 죽은 날과 같은 건 어쩌면 남동생이 보다 더 상아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 여자로 환생한 게 아닐까요?


환생.


예전에 유튜브 영화 소개 코너에서 본 프랑스 영화가 생각났다.

솔메이트였던 두 커플 중 남자가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나서 자신과 자식들을 버렸음에도 늘 자신의 주변에서 모습을 보이며 고통스럽게 하는 이야기. 최면 치료를 받으면서 본 전생의 모습에서 자신은 그 남자의 엄마였고, 그 남자는 자폐가 있는 자신의 아이였으며 그 아이가 간 특수학교에서 만난 자폐가 있는 여자아이와 둘이 가까워지면서 자신을 멀리하자, 현실을 원망하며 결국 그 둘과 함께 교통사고를 저질러 모두 함께 죽게 되는 이야기.

그리하여 여자는 자신이 전생에 지은 업보로써 그런 고통을 받게 된 것이기에 그 고통을 받아들이고, 겸허하게 평범한 삶을 다시 살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


정확하게 남동생이 죽은 뒤 1년 후 태어난 여동생이 여자라는 사실이 매우 의아했던 어느 날이 기억에 있다.

그 기억은 매우 강렬해서 지금도 이상할 정도였다.


내가 처음 동생들에게 보여준 애니메이션은 토토로였다. 토토로를 무척 좋아하는데 그 영문을 몰랐다.

1년 전 다시 본 토토로를 보고 알았다.

토토로는 사라진 동생을 찾아주는 환상의 요정이었다.


내가 무밍트롤을 좋아하는 이유 역시 아마도, 남동생과 같이 본 애니메이션이었기 때문이리라.


이제 다시 누군가를 공허하게 하는 일을 없으리라.

내 심장을 채우던 존재의 정체가 탄로 났고, 그 자리는 이제 비워졌다.


내 생의 가장 큰 숙제가 풀렸다. 그래 너는 나에게 죽음을 인지한 채 삶을 사랑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준 천사였음이 분명했다.


착한 사람들은 일찍 죽는다고, 그래서 너도 우리 아빠도 일찍 죽는다고,

이 생에서 더 풀 과제가 없어서.


그럼 나는,

내게 무슨 과제가 더 남아있는 걸까.


많이 편안해졌다.


지난 이틀은 고통스러운 순간의 연속이었다.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환생. 나는 내 여동생을 죽은 남동생의 환생으로 여기고 싶지 않다.


여동생은 여동생 대로, 죽은 너는 너대로 그 존재를 엮고 싶진 않다.


사실 현재 회사 팀장님의 성함이 내 죽은 남동생과 같다.

이상록


단 한 번도 말해본 적 없는 그 이름을 작년부터 입에 올리는 게 편안해졌다.


보고 싶은 내 동생, 상록이


누나가 못 지켜줘서, 못 챙겨줘서 미안해, 누나 이제 정말 행복하게 잘 살게.

그동안 누나가 네 맘도 모르고, 네 뜻도 모르고 널 붙잡고 힘들게 했다면 미안해.


이제 정말 안녕. 잘 가 내 동생, 사랑해.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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