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654 엄마 그거 무겁게 왜 들고 왔어!

기뻐하는 걸 보려고

by Noname

고등학교 2학년 때,

로버트할리 씨가 광고하는 세스잉글리시 샘플을 해보고, 초등학교 6학년 때 혼자 영어를 독학한 이후로 영어공부를 하지 않았던 내가 왠지 영어를 잘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엄마께 말씀드렸었다.


그 당시 60만 원 돈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삼 남매 뒷바라지를 하는 부모님 사정이 여의치 않았을 건데


평소 뭐 사달라는 게 별로 없던 터라

엄마는 못 이기는 척 사주셨다.


시골 아주머니가 전화를 했더니 무시를 했다나


그래서 현금 60만원를 보내줘 버렸다고 하셨었다.



당시 학교가 멀어 기숙사에 있던 나

그러니까 우리 동네에서 그걸 가져오려면

1.5km를 걸어 나와 한 시간에 한 대 있는 버스를 타고,

읍내에서 우리 학교까지 또 2km를 걸어야 했다.


엄마가 그걸 들고 학교에 나타나셨다.

나는 짜증을 냈다.


“엄마, 그걸 무겁게 왜 들고 걸어와!”


“딸이 이거 받고 좋아하는 거 보고 싶어서…”


엄마는 무안한 듯 말하시고는 손에 그것을 쥐어주고, 바로 다시 그 길을 걸어가셨다.


한참 울었다.

내 뜻대로 공고에 진학시켜주겠다고 하시곤, 결국 인문계 고등학교에 보내주신 부모님을 원망하며 나는 다정한 말한마디 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얼마 전 책을 읽고, 시간을 길바닥에 버리는 것에 대한 비효율을 언급했었다.


오늘 친구들을 주기 위해 가던 길을 돌아 동네 빵집에 들러 빵을 사려고 5분을 기다리는 동안 알게 됐다.


이런 거구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해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단 몇 초라도 보기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맛있는 음식을, 좋은 물건을 쥐어주고 싶어서

그 비효율 따위는 아랑곳없이


오로지 기쁨에 찬 사랑의 마음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을 귀하게 쓰는 거였구나


시골에서 장을 보고, 자식들이 좋아하는 걸 쥐어주려고


온몸이 아프지 않은 데가 없다며 본인 몸 하나 힘겹게 움직이던 엄마,

그 무거운 시장바구니를 양손 가득 쥐고는

힘들면 길에 내려놓고 잠시 쉬며 겨우겨우 집에 도착하면


“휴, 얘들아 순대 먹어라~“


온갖 음식들을 가방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양손 가득 들고, 어린 나를 챙겨가며

서울에 있는 이모집이며 삼촌 집이며 우리 집이며

당차게 돌아다니시던 외할머니


나는 말만 그렇게 하고 행동은 똑같이 닮아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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