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궁극적 생산성, 혹은 창조성
지구의 자정작용에 대해서는 초등학교에서 배운다.
지구의 일부인 인간의 출산 인구가 줄어드는건
아무리 경제적, 사회적, 개인적 근거를 들어도 핑계는 될 수 있어도, 원인은 될 수 없다.
아무리 인간이 천지지변에 대한 예측력을 상실했다고 하더라도,
자신들의 종족보존을 위한 근원적 본능을 잊진 않는다.
인류는 자신들의 생존에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본인의 논리와 의지와는 상관없이 지구의 일부로서 저출산을 택한게 아닐까.
전시에 베이비붐이 일어나니, 우리나라 출산률이 상승하려면 전쟁이 나야한다는 이야기는 적합한 이야기이긴 하다. 하지만 전시의 베이비붐은 무차별적인 양적 생산에 불과하다.
생존률이 낮은 종들이 많은 알들을 낳듯이, 그러니까 크릴새우는 1만개의 알을 낳는다.
전시, 전염병의 창궐, 위생 상태가 낮은 환경에서 인간은 많게는 10명이 넘는 자식을 낳기도 한다. 생존 확률이 낮기 때문에 그중 1-3명만 살아남아도 인류의 보존에 영향이 없도록
정말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한, 현 시대에 양으로 승부하는 무차별적인 생산이 이루어지지 않는 건 당연하다.
코로나로 고령인구가 다수 사망했다손 치더라도, 고령인구는 지난 세대에 비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우리가 나이가 들면 실버타운에 갈 필요가 없다고 했다. 모두다 고령화 되어서 내가 사는 곳, 가는 곳이 실버타운이라서
쾌락이 없다면 인간은 자신의 피와 살을 내어줘야하는 인간 궁극의 생산, 즉 출산을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현대는 그 쾌락을 다양한 방법으로 충족시킬 수 있다.
그래서 가장 애틋한 부성과 모성을 가진 일부의 사람들이 보다 현명하고, 보다 진취적인 인류로의 진화를 꽤하기 위하여 자연으로부터 선택 받아 창조를 해낼 수 있는게 아닐까.
생명의 신비는 창조에 있다.
그 창조는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지며,
창조의 가장 상위는 자신과 같은, 혹은 더 진화된, 혹은 더 살아남기 유리한 피조물을 생산해 내는 것
그리고, 나머지는 궁극의 그 피조물들이 그들의 진화와 그들의 생존과 그들의 번영을 도울 수 있는 부수적인활동들을 해내는 것이 아닐까.
어떻게든 인류는 살아남는다.
지구에서 선택받은 최후의 인류가 화성을 가든, 어딜 가든
자연이 생존을 허락한 가장 현명하고 지혜로운 존재로서 삶을 이어나가게 되겠지.
저출산 걱정 접어두고, 현명하고 지혜로워지길 택하자.
그저 기여하는 것이 우리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