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643 약한, 너무도 약한

그래서 강한 척해

by Noname

강해지고 싶은 이유는 약하기 때문이다.

냉정해지고 싶은 이유는 너무도 정이 많기 때문이다.


언젠가 그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외국인들은 모르는 사람과도 가볍게 인사하고,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한국인들은 정이 너무 많아서 모르는 사람, 이웃과 가볍게 인사만 하기가 불편해서 오히려 더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시골 마을에서 자란 나는 집에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 동네에 처음 보는 차가 지나가면 누구네 집에 방문한 차인지 속속들이 알고 지내는 게 너무 피곤했다.


보고 배운 것은 어쩔 수가 없어서

아무리 냉정한 척 굴어도 이내 마음이 약해진다.


그렇게까지 냉정하게 굴 정도로 시급성을 갖는 일도 없어진 지금은 물렁하다.

너무 물렁하다.


특히 내가 쳐놓은 담장은 아랑곳없이 넘어오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다잡고 다잡아도 되질 않는다.


중학교 친구들이 내가 해놓은 계획표 따윈 아랑곳없이 캠핑을 가자고 한다.


아는 지인분께서 산에 가자고 하신다.


이미 정해진 약속만도 올 상반기 내가 하려는 것들을 따져보면 벅차다.


나는 또 지난 몇 주처럼 토요일 일요일 정신없이 쏘다니다가 월요일 아침에는 눈을 반쯤 감고 있겠지.


아마 캠핑도 가고, 산에도 갈 테지.

뻔하다.


선생님, 한 6주 넘게 일요일마다 운전 몇 시간씩 했더니 피곤해요, 체력을 더 길러야겠어요.


- 네? 여기서 더요?


어쩔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도 보내고 싶고,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도 이루고 싶다.


그러려면 더 강해져야지.

별 수 있나


관계에 약하다. 사람을 너무 좋아한다.

대리님께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다 알고, 만나고 지내시냐며 신기해하셨다.


그게 제가 그러려던 게 아니고, 그냥 가는 곳마다 소중한 사람들이 생기다 보니까 아무리 약속을 미루고 미뤄서 어쩔 수 없을 때 보는 거라 그게 그래요.


다시 독하게 마음먹고, 잠수를 타려면 얼마나 위중한 일이 생겨야 할까


그런데 삶을 살면서 소중한 사람들과 관계하는 것만큼 위중성을 띄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내 마음에서는 더 신나게 사람들과 어울리라 하는데

그저 나의 계획과 냉정함 코스프레는 가짜를 떨궈내는 수단에 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들

지금 이 순간은 지금밖에 없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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