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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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거부하고 믿지 않는 감정
카프카는 학술원에의 보고에서 출구 없는 두려움, 내면의 고요함을 말한다.
의지하고 의존하던 존재가 한순간에 짐덩어리가 된 상황
글쎄 평론가들은 그 상황을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추상적으로 포장하지만 가족 중 누군가 긴 병 치례로 사망한 경험이 있다면 단번에 그 상황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쓴 “간사함”이라는 글은 “변신”을 읽기 전 외할머니의 병환과 임종을 통해 깨달은 인간의 잔인성이다.
본인의 삶을 자신에게 희생한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인간적인 도리와 정서를 가지고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몇 할이나 될까. 어쨌든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한다.
효용가치가 사라진 자신의 전 세대는 그저 삶의 장애물이 된다.
변신의 주인공 그래 고르 장자는 벌레로 변신했지만 그 벌레는 바로 병에 걸린 사람들에 대한 은유로 느껴졌다.
이 부분에 대해선 독후감을 쓴 적이 있는데 아마 싸이월드 게시판에 써서 사라진 것 같다.
명백히 한 가정의 가장 역할을 하는 사람에게 그가 벌어 온 돈과 그의 희생은 당연한 것이 될 뿐이다. 그리고 그가 그 가족들에게 효용가치를 잃으면 그저 출구 없는 두려움을 제공한 짐덩어리로 전락하고, 급기야는 언제 죽을지, 그리고 바로 그런 마음을 갖는 자신에 대한 죄책감, 상대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라는 양가적 감정으로 점철된다.
그리고 더 이상 효용가치를 잃은 짐덩어리를 천덕꾸리기 취급을 하여 급기야 스스로 삶의 희망을 포기하게 만들어버리고, 그의 죽음에 안타까움과 슬픔을 잠시 표명하고는 해방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인간의 이기심에 누가 비난을 할 수 있을까?
물론 온전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한결같이 보듬는 사랑이 큰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다.
“긴 병에 장사 없다.”
끝까지 순수한 사랑과 숭고한 희생을 행하는 사람이 성자로 칭송되고, 예로 치면 열녀상 열부상을 받는 건 그만큼 그 확률이 희박하다는 반증이 아닐까
프랑츠카프카의 작품은 내게는 어렵다. 변신 외의 작품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
아마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은유가 아닌 이상 나는 상상하고 되어보는 능력이 부족한 탓일 게다.
프란츠카프카는 다정한 천재라고 생각한다.
나는 외할머니의 임종과 아버지의 임종에서 그레고리 장자가 죽음을 택했을 때와 같은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카프카가 아니었다면 나는 평생 그 카타르시스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며 괴로워했을 테다.
그러나 인정한다. 나는 근본적으로 이기적이고 못된 악인이다.
사랑을 하기엔 희생을 감수할 그릇이 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