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아니야
며칠전 회사 대리님의 청첩장 모임이 있었다.
청첩장 인삿말 첫 문장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 문장은 대리님의 아버지께서 써주셨다고 했다.
사랑에 빠지다니 정말 로맨틱하네요.
라고 말하는 동시에 깨달아버렸다.
나는 사랑에 빠질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산책을 하는 중 남자 차장님께서 ‘클래식’이라던가 하는 옛날 드라마의 로맨틱한 대사를 외우셨다.
나는 거기에
“차장님 요즘 여성호르몬 나오시나봐요. 저는 그런 감성이 1도 없어서 망했어요.” 하자 다들 배를 잡고 웃었다.
어쨌든 나는 정말 감성이 없다. 이성이 감정을 어떻게든 제어할 수 있기 시작한 서른살부터 연애가 어려워지기 시작했기도 하다.
사랑에 빠질 수가 없으니까
딱 한번 서른한살, 2015년도에 만났던 한 분에게는 좋아하는 감정이 생겼었지만 그때도 기술사 공부를 해야한다는 현실적인 압박에 잘 되지 않았다.
그분은 나와 같이 법정스님을 좋아하셨고, 낑깡나무를 키우셨었으며 요리도 잘하시고, 직접 구운 빵을 선물해주셨었다. 유명한 해외대 수학과를 나온데다, 한국에서 애널리스트를 하고 있었고, 꿈이 있었고 계획이 있었다. 늘 공부하고 운동을 하셔서 큰키에 잘 생긴 얼굴이었고 목소리도 좋으셨다.
모든게 완벽한 분이셨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열등감과 아프신 아버지와 그 모든게 핑계가 되어주었다.
맞다. 정확하게 감정을 제어하진 못했다. 열등감을 이겨내질 못했다.
그리고는 그보다 더 순수하고 예쁜 감정, 누군가를 좋아하고, 함께하고자 하는 그런 감정은 제어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분은 내게 “진짜 현실적이시네요.” 라고 말했었다.
오늘 기술사 친구들을 만나 따라 들어간 커피숍, 그분과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그 자리에 앉으니 새삼 생각이 났다.
사랑에 빠졌더라면 좋았을텐데
오후에 이야기를 하는데 차장님께서 그러셨다.
“엑셀 필터처럼 필터가 너무 많으신거 같아요.”
맞다. 내겐 필터가 정말 많다.
“에이 차장님 상대방들이 먼저 저를 거른 걸지도 모르잖아요.”
그냥 하는 소리다. 외모 탓을 아무리 해도 외모 탓이 아니라는 것 쯤은 나도 안다.
그냥 그 모든 이유는 핑계다.
나는 사랑에 빠지도록 내 자신을 그냥 두지 않는다.
때로는 내가 너무 소중해서 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내가 너무도 부족해서 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아직 때가 아니라서 라고 믿고 싶긴 하다.
최근 결혼해서 잘 사는 친구들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잘 지내는 친구들만 내리 만난데다
상담선생님의 권유에도 미션을 실현시키지 못한 무능함에 이 도태주의가 다시 고개를 쳐든것 같다.
사랑에 빠지지 못하는 무능함을 이성이라는 허울로 포장하는 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