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578 오미자의 추억

선물이 어려운 이유

by Noname

고등학교1학년,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가지 않겠다고 우겼지만 결국 가게 됐다.


가서는 그래도 잘 다녔던 것 같다.

그때만 해도 죄책감에 돈이 많이 드는 활동은 스스로 하지 못하는 경향이 더 컸었다. 나 자신이 행복한 걸 용납하지 못하는 편이었달까.


관광상품을 파는 곳에서였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오미자를 판매하는 곳이었다.


오미자의 효능을 한참 이야기하다가, 이걸 사가면 부모님이 좋아하실 거라고 했다.


그래서, 오미자를 샀다. 그 멀리 제주도에서부터 작은 나에게는 너무 크고 무거웠던 오미자 병을 소중하게 들고 집에 왔다.


조심스럽게 오미자를 내밀며 이게 어디 어디에 좋다더라, 엄마가 아프니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화를 냈다. 그리고 한참을 된통 혼났다. 몇 날 며칠을 엄마는 오미자를 보며 한숨을 쉬고 성을 냈다.


선물을 고르는 건 어려운 일이다. 되려 짐덩이를 떠안기는 꼴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꿋꿋이 선물을 했다. 38살이 되어서야 엄마는 내가 주는 건 돈이 아닌 이상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니 더더욱 내가 준 선물에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좋은지 의구심이 들다가도, 좋아해 줘서 너무 고마운 거다.


아주 사소한 것들에 아주 작은 마음 씀에도 감동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엄마와 전화통화를 했다. 어젯밤 그렇게 글을 썼더니 또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그 시절의 엄마는 내 나이보다 어렸다.

그래서 몰랐던 것뿐이다.

어린 나의 소중하고 여린 마음을.


아이티회사다 보니 감성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운 분위기이다. 임신하신 여자분들께서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이 없지만, 딸들은 보통 감성적이라서 대하기가 너무 어려울 것 같다는 말씀들을 하셨다.


아마 그런 거겠지.

나는 너무 섬세하고, 예민하고, 제법 영리한 편이었으니까

다 내가 귀여운 탓이다.


아마 싸이코패스는 후천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지기도 할 거다.

영화 '캐빈에 대하여'를 생각하면 그건 순전히 엄마가 아들을 사이코패스로 만들었으니까.

사람은 누구나 감성이 있다. 그 감성이 얼마나 거부를 당하느냐에 따라 이성적이 되어가는게 아닐까


우리나라 남자분들이 대부분 '남자는 울지 않는다' 따위의 가스라이팅에 감정을 잃은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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