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길
즐겁게 아침 운동을 마치고, 출근을 하는 길
문득, 내 자신이 시체같다고 느꼈다.
이 이질감은 종종 찾아온다.
현실에 있지 않은 느낌
살아있지 않은 느낌
그저 허공을 부유하는 먼지 하나만큼의 존재감도 느껴지지 않는
'참 괜찮은 태도'라는 책을 읽고 있다.
마침 당시 쌍용 노동자의 아내 분들의 절반도 넘는 숫자가 1년 이내에 자살을 생각 해 본 적이 있다는 글귀가 있었다.
1년 이내라니,
지난 일주일 이내라고 물어야 정상 아닌가 싶었다.
그게 사실 초등학생 때는 오늘 하루 내에 몇번이나 자살을 생각했어요? 라고 묻는게 더 정상적이랄까
누굴 미워하거나 원망하려들면 죄책감에 더더욱 나를 탓하던 날들이었다.
내가 서태지씨를 좋아했던건 5집 take five의 '내겐 좋은 사람이 많다고 생각해'라는 가사였지만 그당시 그런 사람은 없었다.
6집이 나왔을때, 'ㄱ나니'에는 아래와 같은 가사가 있었다. 그래도 나는 'take five'를 더 많이 좋아했다.
날 좀 가만히 놔둬줘 널 배신 못할 나여도 가혹하게 찟긴 상처를 핥았지
가만히 난 착하게 두눈을 깔고
넌 내 고통을 엿보고 난 또 감추려 애썼어 꽤 뚫린 난 저항 할순 없었지
알았어 신이란 내곁엔 없어
가끔 때때로 날 묶고 절대 복종을 다 토해 낼 듯한
내 두뇌를 넘어선 두려움이 내 피로 고통을 뿜어 올렸어
웃네 만족한 듯 무척 즐겁게 넌 웃네 섬짓한 눈빛을 띄고 넌
난 죽고 싶었건만 가끔 내겐 넌 그나마 문득 따뜻한 감언 결국 또 니속에
날 긋고 싶었건만 감히 네겐 나 차마 문득 난 죄책감만 결국 또 네속에
아무리 모지게 대한들 자식은 결국 부모의 사랑만을 원한다.
따뜻한 눈길, 따뜻한 손길.
어쩌다 베풀어진 그 따뜻한 눈길에 따뜻한 손길에 그 모든 희망이 다시 점화되는거다.
2014년 7월 아빠의 병환으로 봉사활동 기간 2년을 채우지 못하고, 1년만에 세네갈에서 돌아온 후로.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나는 줄곳 동물원에 발이 묶인 코끼리 처럼 살았다.
세네갈에서 만난 귀한 친구 승민이는 내게 '너 참 UN이랑 잘 어울린다.'라며 자신이 본 UN분들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독일이랑 참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해줘었었다. 그래서 나는 몰래 '사실 나는 내가 떠날걸 알고 있어서 굳이 여행을 떠날 의미를 느끼지 못해.'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오늘 유럽에 여행을 간 기술사 친구 람구가 어쩌다 나온 대학원 이야기에 프랑스 대학원 이야기를 해주었다.
국제개발협력을 위해서 기술사도 취득하고, ODA공부도 했던 나를 알기에 관련 분야 정보를 많이 찾아주던 고마운 친구이다.
당분간은 내 체력과 능력을 더 향상 시키기 위해서 머물 예정이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분명 떠난다.
그리고 다시 떠나면 누구도, 그게 설령 가족이라도 내 발길을 돌리진 못할걸 알고 있다.
그런데 사실 머나먼 꿈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은 종종 지치는 법이다.
아 앞에서 굳이 'ㄱ나니'이야기를 한 건, 어버이날이기도 하고
그동안 엄마에게 사랑 한소끔 받아보겠다고 내 발을 묶어 놓고 있었다는 사실을 오늘에야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2018년에 에티오피아로 떠나길 확정하기 직전에도,
하물며 여행으로 유럽을 간다고 했을 때도,
더 거슬러 올라 대학생 시절 인도에 간다고 했을때도, 제주도에 간다고 했을때도
엄마의 그 자식을 잃은 불안감이 나의 발목을 잡았고, 나는 잡혀주었다.
착한 딸이라는 걸 엄마에게 증명해보이고 싶어서.
엄마가 나를 낳기를 잘했다는 말 한마디를 듣고 싶어서.
글쎄, 지금의 엄마라면 그렇게 말을 해줄지 몰라도
이미 지난 그 시절의 엄마에겐 글렀다.
그러니까, 더이상 발목 잡히지 말자.
3년이다.
딱 3년
이사한 집은 서향이다. 노을이 아름다운 방이다.
세네갈에서 살던 집 역시 서향이었다. 노을이 정말 아름다운 방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때의 기운이 느껴진다.
내 심장을 뛰게하는건 역시 그것 밖엔 없구나.
그런데 사실 내가 자살과 죽음을 지나치게 인식하고 사는건 그게 유년기의 극단적 트라우마이기도 하지만
워낙 섬세하다보니 감정까지도 세밀하게 느끼기 때문일뿐이다.
사람들은 죽고싶다는 마음 자체를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마음만큼이나 두렵게 여기고 자신 안에 그러니까 무의식 안에 꽁꽁 숨겨두다가 부지불식간에 저질러버리는 것 뿐이다.
차라리 나같은 류의 사람들은 오히려 오래 산달까
할머니들이 아이구 죽어야지 하는거랑 다를 바가 없다.
워낙 엄마로부터 죽어버리겠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이기도 하고.
반항기엔 비웃으며 죽지도 못할거면서 했다가
엄마가 급성 발작을 일으켜서 엄마의 손과 발을 모두 다 따고, 울며 빈 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