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558 평온의 역설

고통을 선불

by Noname

어디선가 '신은 우리에게 그 스스로가 견딜 만큼의 고통을 준다.'라는 말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건 아닌 것 같다.


수용소에서의 사람들이 고통을, 인간의 존엄성이 해체되는 상황에서 견딜만했다면 죽지 않았겠지.


신은 우리에게 고통을 견뎌내고자 하는 의지를 선택할 권리를 주는 게 아닐까.


견뎌낼 의지,


사랑하는 존재들의 얼굴, 웃음


살아남기 위해서 우주를 생각하게 된 건 아주 오래전부터이다.


사람들은 웃었다.


우주라니, 지구라니


그렇게 허황된 이야기를 하다니, 너는 정말 특이하구나.


사실은 내가 우주이고, 내가 지구이고, 내가 나이기에 나의 사멸에 대해서 큰 거부감이 없다.


그냥 명목상으로 존재하는 가치라고 생각했다.

추상은 구체화되는 순간부터 현실이 되지 않던가.


나는 현실에서 여전히 발이 동동 떠있는 상태였는지도 모른다.



이번에 알았다.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면서 함께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살고 싶은 친구들이 있다는 걸


시름시름 며칠을 앓으며 알았다.


그리고 그 함께 함이 될 수 있다면 영원하기를 바란다는 것도 알았다.


마음이 아팠다.


아픈 마음을 덜어내기 위해 운동을 한다.

운동을 하면서 느끼는 고통은 평온을 가져다준다.


산에서도 그랬다.

자전거를 탈 때도 그랬다.

헬스를 하면서도 그랬다.


근육통이 가져오는 고통은 현실감을 깨우고, 저 멀찌감치 가서 때로는 앞서서, 때로는 뒤쳐져서 불러일으키는 사사로운 마음의 고통들을 지워낸다.


고통의 역설이자 평온의 역설이다.


고통은 평온을 가져온다.

생각이 많은 나에게는 그렇다.


친구는 말했다.

너희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위해서 나머지 날들을 견디고 산다고.


굳이 고통을 끌어와서 살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인생은 균형과 조화 같다.


희로애락은 어느 정도 수준의 균형을 가지고 오는 것 같다.


슬픔을 느끼지 않으면 슬픔이 알아달라고 오고.

즐거움을 느끼지 않으면 즐거움이 알아달라고 오고.

노여움을 느끼지 않으면 노여움이 알아달라고 오고.


뭐. 108 번뇌가 왔다가 갔다가


조만간 공포영화를 좀 봐야겠다.


두려움이 오기 전에 선결제해버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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