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지구라는 말을 어디서 들었더라
태양계를 떠올리다가 지구를 생각했다.
어린 시절 나는 우리가 누군가의 뱃속에서 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린이들이 대체로 그러하듯, 수박을 먹으면 내 뱃속에서 수박이 주렁주렁 열려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내 배는 다 자란 수박보다 작았고, 형태가 보존되어 다시 나타난 수박씨를 보고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걸 너무 빨리 알아버렸다.
내가 알고 있는 과학지식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 부모님께서 사주신, '과학학습만화 40권'이 전부였다.
어떤 경위로 그 책이 내 방에 꽂혀있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그 책을 무척 좋아했다.
노트에 내용을 요약해서 적어가며 신나게 보았고, 등하굣길에 누군가를 만나면 그 이야기를 해대서 종국에는 좀 질려했던 생각이 난다.
태웅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만은 내가 하는 이야기에 신이 나서 또 물어봐주곤 했다.
종종 나는 내가 모르는 것을 대답하곤 했는데, 말이 다 끝나고 나서야 내가 모르는 걸 대답했다는 걸 알았다.
그러면 나의 작은 심장은 두근두근 뛰어서, 당장 내가 한 대답이 맞았는지 확인해야 했다.
지금이야 인터넷이 있지만, 집에 있는 백과사전이며 거기에도 없으면 학교 도서관에서 한참을 찾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모르는 걸 대답했는데, 그 대답이 제법 정확하게 맞아떨어지곤 했다.
그 질문들은 대체로 자연현상의 원리와 같은 것들이었다.
어쩌면 내가 그걸 대답할 수 있었던건 너무나 당연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누구나 대답할 수 있는 것들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우리에게 중도와 중용과 평정심이 중요한 이유는 지구에 살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었다.
지구는 태양계에서 물이 물로 존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수증기도 아니고 얼음도 아닌 액체의 상태
그리고, 지구 내에서는 마치 태양계를 재현이라도 하듯, 북극과 남극의 양극점과 적도를 기준으로
한국이 위치한 36.5도에 매우 지구의 위치와 비슷한 곳에 대한민국이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대한민국의 양 끝에서 중간 위치인 충청남도에서 태어났고,
중간의 중간의 중간 위치에서 태어난 나는 겨울 새벽에 태어났다.
여성스러운 사람들과 있으면 남성성을 더 쓰고,
남자들과 있으면 중성화되고,
좋아하는 남자 삶과 있으면 여성화된다. 그럴 일이 별로 없는게 아쉽지만, 나는 꽤나 여성스러울 때가 있다.
어쨌거나,
지구는 필요하면 자정작용을 한다.
사막도, 빙하도, 북극곰도, 코끼리도, 인간도, 곤충도, 꽃도, 나무도, 파충류도, 물고기도, 바이러스도
사람들이 만들어낸 빌딩도, 교각도, 위성도, 배도, 잠수정도, 쓰레기도,
모두 품는 듯하면서도 해가 될만하면 자정작용으로 치운다.
어느 정도는 지켜보고, 분해하지 못한 쓰레기는 그대로 쓰레기 섬이 되어 떠다니게 두고,
우리는 마치 우리 몸의 세포가 침투한 바이러스와 싸우듯, 혹은 우리 몸에 생겨난 종양을 없애듯
그러니까 단백질이 단백질과 싸우듯이
지구에 생겨난 쓰레기섬과 인간의 잔해들을
인간이 인간과 협조하거나 싸워내서 좀 더 살기 좋게 만든다.
모든 게 닮아있다.
지구와.
엄마 자궁의 양수는 최초의 생명체가 잉태된 바다와 같다고 어디선가 내레이션으로 들었다.
아마 지구다큐멘터리였을 거다. 캄브리아기 설명에서 나왔을 거다. 최초로 땅 위로 기어올라온 파충류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이었을 거다.
지구처럼 살면 된다.
우리는 지구로부터 파생되었다.
지구는 태양계로부터 파생되었다.
태양계는 우리 은하로부터
파생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중요한 건 지구와 싱크를 맞추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고 하지 않나.
지구에 살면 지구법을 따라야지.
그러니까 지구법이라는 게 중요해서
선조들이 중도를 그렇게 강조한 게 아닐까
치우침이 없이, 흐르는 물처럼
왜냐면 지구는 70%가 물로 덮여있고,
우리 몸은 60-70%가 물이고,
그러니까 물처럼 바람처럼 살아야 하는 거였나
나는 바람이 더 좋다.
내꿈은 바람이 되는거라고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그럼 바람은 어디에서 왔을까.
지구를 만들 때, 물을 움직인 건 바람이었을까?
산을 깎고, 포자를 날려 세상을 만들고
지구를 순환시키는 것
그게 바람이지
그럼 바람은 어떻게 불어오나
대기압의 변동, 기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공기가 이동하는 현상을 바람이라고 한다.
기압은 왜 높아지거나 낮아지나
북극과 적도의 영향이다.
본질적인 위치가 갖는 특질 음과 양
음과 양의 조화를 이루어 중도로 가게 만드는 것이 바람이다.
남자와 여자
북극과 남극
양과 음
밝음과 어둠
그림자와 실체
선과 악
중간,
어쩌면 다음 세대의 진화한 인류는
죽지 않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날마다 새롭게는
피고 지는 꽃처럼
생성되었다가 사라지길 반복하는 우리 몸의 세포와 같다.
세포를 살려내거나 제거하는 건 정신의 힘이다.
진화된 인류는 정신을 거듭나게 하는 방법을 찾아낸 후,
정신을 통해 몸의 세포를 거듭나게 하는 방법을 찾아내
결코 소멸하지 않는 방법을 깨닫게 될 수도 있다.
노화는 우리가 만들어낸 상상 속의 관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어쨌든 지구처럼 살아야 한다.
2015년도까지만 해도 나는 하늘을 볼 때마다 '지구용사 선가드'노래를 마음속으로 불렀다.
'무지개다리 놓고 가고 싶어도, 지금은 갈 수 없는 저먼 우주는 아름답고 신비한 별들의 고향'
이 부분이 내 코끝을 얼마나 찡하게 하는지, 어린 시절부터 매한가지였다.
지금은 잘 부르지 않지만 떠오르면 우주에 대한 애틋한 향수를 느낀다.
땅, 불, 바람, 물, 마음 다섯 가지 힘을 하나로 모으면
이건 '캡틴 플래닛'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