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기록부
정부24에 들어가면 생활기록부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고등학생일 적에 아마 교육청에서 네이스인지 나이스인지 학생전자생활기록부를 도입하려고 했고
그때 찬반 조사와 동의서 등을 받은 기억이 어렴풋이 있다.
조회를 해보니, 고등학교 생활기록부가 일부 기록되어 있었다.
기록이야 선생님의 주관적인 견해를 대학교 진학에 불리함이 없도록 포장된 것이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만화책만 읽던 나와는 좀 달라서 의아했다.
내가 기억하는 나는 역시 나 자신에게 매몰되어 있을 수 밖에 없구나 싶었다.
디자이너가 되지 못한 이유는 일단
컴퓨터그래픽스운용기능사 실기를 취득하지 못한 것도 있다.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 웹스타일리스트 학원을 6개월이나 다녔는데
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모방을 하지 못하는 나는 다른 사람들을 보고, 저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데 난 못하는구나. 하고 포기했다.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부모님께서 내가 교사가 되길 바랐다는 건 좀 의외다.
공부에 취미가 없었기 때문에 전혀.
심지어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의 성희롱적 발언에 수업을 들어가지 않은 적도 있고, 일부러 '가'를 받기도 했다.
어리석은 영혼의 반항심이란.
그래서 진지하고, 소신있고, 냉철하다고 표현이 된 것 같다.
내 기억에 의하면 내가 가장 똑똑했던 때는 초등학생 때이다.
그리고 가장 어른스러웠던 때도 그때이다.
아쉽게도 기록이 없다.
그땐 더더욱 성취욕과 집념이 강했다.
체구가 너무 작아서 다른 친구들은 다 뛰어넘는 뜀틀을
수업이 끝나고 연습한다고 거의 2시간 동안 내리 뛰어 마지막엔 겨우 한번 넘었던 적도 있다.
시도 많이 썼고, 그림도 많이 그렸다.
책도 많이 읽었고, 공부도 열심히 했었다.
그대로 자랄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중고등학생 때의 방황이란, 특히나 같은 아이에겐 더더욱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래도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이쯤되면 사주는 신빙성이 있다.
나는 이런 특질을 그냥 가지고 태어난 사람일 뿐이라는 증거랄까.
2년 가까이 운동을 가르쳐주고 계신 트레이너선생님께서 보시더니 '어릴 때도 똑같으셨군요'라며 공감을 해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