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474 왜 이토록 부끄러울까

근본적 수치심

by Noname

사람은 모두 늙고, 죽는다.

이미 죽어가는 사람처럼 살았는데


측근분들의 노화에 대한 증언을 적나라하게 듣고 깨달은 바,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생산성과 효율성을 '나'라는 존재에게서 착취해야 하는 자원이라는 전제는

자궁을 가진 여성이 할 수 있는 창조와 생산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비관에서 비롯된 걸까.


나는 데카르트보다 더 악독한 기계론적 인간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사후장기기증뿐이었달까


근데 세상에 기여할 필요가 있을까?


금수와 같은 인간들도 떳떳하게 살아가는데

나는 왜 나의 삶이 이토록 부끄러울 수밖에 없을까.


지구상의 존재들과 숭고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

그 모든 것을 생각하면 나는 이토록 편안하게 이토록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 참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무엇하나 세상에 기여하지 못하고,

지구를 축내고 있다는 부끄러움을 견뎌내기가 어렵다.


그리하여 스스로를 통제하고, 스토아학파라도 된 마냥 굴지만

세상에 기여하겠다는 나의 어떤 소소한 계획마저 틀어지기 시작하면


그 모든 불안감과 공포감에 심장이 답답해지곤 한다.

그러면 다시 수치심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괴로워하다가

스스로에게 행복을 주는 몇몇 활동들을 끊어냄으로써 자기 처벌을 가한다.


그러면 한결 숨이 쉬어지는 것이다.


그냥 이대로 존재해도 괜찮다고, 그냥 이렇게 평범하게 스스로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살아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몇천 번을 말해야 괜찮아지는 걸까.


그러나 그냥 살기에 나의 편안함이 가져오는 반대급부가 너무나도 눈에 선명하다.

괴롭지 않기 위해서는 모든 생각과 추상적 사고와 망상을 끊어내야 한다.


그러나 이 괴로움이 없다면 나는, 나는 무엇이란 말인가.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마흔-477 긍정에너지가 뿜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