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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473 몸이 기억하는 날

아빠의 기일

by Noname

동생이 물었다.


"나 시골 갈건데, 엄마 곱창전골 가져다 줘?"


"아 맞다. 아빠 기일이었지!"


그때야 알았다. 몇달전부터 아빠의 기일이라서 동생이 시골에 간다고 했었고, 나도 잠시 시골에 갈까 고민을 하다가 굳이 내려가지 않기로 했었다. 아빠의 유언이 제사를 지내지 말라는 거였는데, 엄마는 귀찮다고 하면서도 꾸역꾸역 제사를 지냈었다.


재작년 쯤에 나는 아빠가 돌아가신지 몇년이 지나고서야 겨우 아빠의 제사에 참석했다.

작년 그날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에 없다.


그리고 올해도 역시 그랬다.

머리는 까마득하게 잊었다.


그게 바로 이틀전이었다.


토익성적이 나오는 날이라고 해도 몇개월 만에 마음 편하게 본 거라 기대할게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침부터 불안하고, 답답했다.


성적이 이전보다 훨씬 떨어져있었다고 해도 이상할게 없었다. 다들 어려웠다고 했으니까.

그런데도 주체할 수 없는 불안감과 공포감과 수치심이 가득 차올랐다.



겨우 토익 점수 하나 때문이라기에는 너무도 이상했다.

비정상적인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고, 어제 심리상담을 받으며 어쩌다 정말 이런 상태가 될 때가 있다며 선생님과 한참을 이야기 했다.

그런데도 몰랐다.


그 느낌.


세상이 나에게서 등을 돌리고, 더 이상의 희망이나 사랑의 기운이 사라져버린 그 느낌

홀로 남겨지고 버려진 그 느낌

주체할 수 없는 괴로움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지 못한 무력감에 삶의 의미를 잃고, 모든걸 다 포기하고 관둬버리고 싶어지는 그 느낌

그게 허상이라는 걸 바로 알아차리고 겨우 정신줄을 붙잡긴 했지만 괴로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빠가 돌아가시던 그날의 느낌이었다.

아침부터 유난히 기분이 나쁘고, 화가 나고, 두렵고, 불안했다.

하루 종일 언짢은 상태로 보내다가 엄마로부터 연락이 왔었다.


긴팔옷 하나 챙겨서 내려오라고.



아무리 기억에서 지우고, 또 지워도

몸이 기억하는 감정이 있다.


그리고 그 감정은 크리스마스 캐롤처럼

그 날이 되면 나의 온 몸과 정신을 울려댄다.



참 신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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