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트키
출근하는 지하철,
내가 타는 다음 정거장에서 타신 청장년 남성 분께서 지하철 문에 바짝 끼여 요리조리 큐브를 맞추셨다.
큐브를 맞추는 모습을 초등학생 이후로 처음 보는지라, 신기해서 쳐다봤다.
주황색, 노란색 칸칸마다 예쁘다고 생각했다.
치매 예방용일까, 취미용일까,
저걸 지하철에서까지 맞추시다니 여간 재미있으신 게 아닌가 보다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막힌 거 같았다.
손동작이 멈춘 지 5초도 지나지 않아 바로 휴대전화 인터넷 창에 이미 검색되어 있던
'큐브 맞추는 방법' 페이지를 여시고 읽으셨다.
'치트키'
'스타크래프트'는 내가 중학생 때 처음 나왔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던 나는 친구들에게서 치트키 몇 문장을 외워 그대로 친 후 게임을 했다.
'black sheep wall'
'show me the money'
미네랄(돈)이 불어나고, 미개척지 지도가 순식간에 밝혀졌다.
'날로 먹고 싶다.'
치트키를 사용할 수 없는 경우에는 손수 발로 뛰며 지도를 밝혀야 했고, 돈을 한 땀 한 땀 모으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느 정도 임계치가 넘어가면 돈은 로그 증가하지만, 그전까진 유닛을 뽑으려면 숫자에 주시했다가 즉시 뽑아내야 했다.
더 어린 시절이었던 초등학생 때에는
산수 문제를 푸는 걸 좋아했다.
나는 한 문제를 가지고 오래 고민하는 편이었다.
풀이 방법을 알려주는 건 기분이 상했다. 문제가 풀리지 않아 분해서 우는 경우도 많았다.
다들 그냥 답안지를 보라고 했다.
선생님은 그런 내가 답답하셨던 나머지 '너는 그런 성향 때문에 경시대회는 내보낼 수 없다'며 풀리지 않는 문제는 포기하라며 나를 달래셨다.
'치트키'
대학생 때 와우라는 게임을 할 때도 게임웹사이트에 나와있는 퀘스트 전략을 보고 했었다.
어느 순간부터 쉽게 쉽게, 날로 먹는 버릇이 생겼다.
일명 치트키
그런데, 어떤 부분에서는 그런 게 전혀 되지 않았다.
웹디자인을 배울 때도, 다른 사람들이 이미 해놓은 걸 가지고 와서 조금씩 변경하면 쉬운데
나는 맨 도화지에서부터 생각하다 보니 그 막연함에 어안이 벙벙해져서 어느 순간 포기했다.
취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교수님이나 이모가 소개해준다는 대기업의 높으신 분들을 통해 취업을 하면 됐는데,
나는 굳이 굳이 내 실력대로 바닥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이상한 고집이 있었다.
종종 생각한다. 내가 왜 치트키를 쓰지 않았을까.
그럼 좀 더 편하게 인생이 펼쳐졌을 텐데.
어떤 책에서 그런 말을 했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잘 써진 '자기소개서'하나로 바로 리더자리에 오르면 연봉도, 명예도 다른 사람들과 출발점부터 다르게 된다고. 물론 응당 거쳐야 할 과정을 거치지 않은 과정을 메우는 건 자신의 몫이 될 테지만.
그렇게 인생이 쉽게 풀리는 방법이 있다고.
그런데, 나라는 사람의 이야기는 어떻게 되는 걸까.
내가 쌓아 올린 나의 이야기, 나의 자부심이 되는 이야기
내가 만든 길의 이야기
지금 나에게 누군가 '날로 먹을 기회'를 준다면 덥석 물을지 모르겠다.
결국 '치트키'를 잘 이용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니까. 그걸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실력 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