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이 씻어내기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시골 마을에 비가 오면
학교가는 길에 흙탕물이 고였다.
차가 지나다니는 길에는 더더욱 흙탕물이 고였다.
차바퀴에 밟히지 않는 가운데와 길 바깥쪽에는 무수히 많은 잡초들이 우거져있었고, 그 사이로 스르륵 뱀이 지나가 작은 심장을 콩닥거리게도 했고, 지렁이가 꿈틀거리기도 했다.
나는 그 모든 걸 사랑했다.
비는 피할 수 없었다.
학교를 가야했다.
그 모든 걸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살아있는 생명은 기쁨을 주었다.
뱀은 귀엽기도 했다.
지렁이는 그 어떤 존재보다 유익한 존재이다.
그래도 가까이 하기엔 멀었다.
우리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고, 서로 피했기에 행복했다.
비가 온 다음 지렁이들이 차바퀴가 지나가는 곳에서 꿈틀거리며 갈 길을 헤매이면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바깥쪽으로 던져버리곤 했다.
흙탕물에 떨어지는 작은 물방울이 아름다웠다.
장화를 신은 날엔 호기롭게 발을 담궜다.
모든게 아름답고 완벽했다.
나는 비오는 날 역시 사랑했고, 흙탕물도 사랑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는 길에 포장이 씌워졌다. 흙탕물은 종종 도로포장이 균일하게 되지 않은 곳에 얕게 고였다.
흙탕물은 나이가 들수록 보기 어려워졌다.
모기떼나 하루살이 떼들이,
그리고, 시멘트 포장 위 땅 속으로 숨을 곳 없어 고인물로 숨어들었던 지렁이들이 그 위에서 반쯤 혹은 일부 무언가에 밟힌채로 피를 흘리며 죽어 있었다.
메말라갔다.
흙으로 돌아갈 수 없는 흙탕물과 지렁이들의 흔적만이 남게 되었다.
요즘 흙탕물에는 담배꽁초, 매연, 알수없는 오물들이 엉켜있다.
흙탕물은 이제 조심해야한다.
장난으로라도 발을 담그지 말아야한다.
답답한 장화따위는 신지 않는 나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깨끗하게 씻어내도 악취가 날 것 같다.
시들어버렸다.
그 모든 것이
퇴색되어버렸다.
무엇을 탓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