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뒤에 집요함
고등학생 때부터인가
미소를 연습했다.
인사를 잘 하긴 했지만
10대에는 엄마의 표현에 따르자면
워낙 무뚝뚝하고, 쌀쌀 맞았다고 한다.
그걸 알았는지, 언젠가부터 거울을 보고 미소짓는 연습을 했었다.
그이후 친구로써 내게 호감을 표하며 편지를 주거나 하는 동성 친구들이 많았다.
그러나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라
인사와 미소까지였다.
20대 중반부터는 사회에서 만난 동성의 분들은
“귀여운 미소로 인사를 해주었다.”하시며 나의 첫인상에 그저 나를 좋아해주셨다.
참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이성들에게는 그다지 미소를 짓지 않았던 것 같다.
그건 세심한 분들을 대하는 나의 페르소나였을지도 모른다.
요즘엔 일을 하면서도 그 표정을 탑재할 수 있게 됐다.
그냥 혼자 미소를 지으면 한결, 편하게 어짢은 일들을 대할 수 있어졌다.
이건 마치 온갖 걱정과 고뇌를 가득 안고 산에 올랐다가 내려왔을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소시오패스가 되는거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지하되 지나치게 이입하지 않을 수 있는 치키트이기도 하다.
행복해서 웃는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해지기도 한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오늘 오랜만에 강기술사님을 만나 이야기하다가 새삼 나의 집요함을 과거에서 다시 깨달았다.
그당시 대표님은 나를 두고, 목표가 주어지면 경주마처럼 달린다고 표현하셨다.
강기술사님 역시, 연구직을 하시면 전과 같은 이글이글 열정이 넘치는 상아기술사님으로 돌아오실텐데 하며 아깝다고 하셨다.
어쩌면 감정을 배제한다고 한더니
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싶은 욕심을 인지하지 못하고, 특유의 집요함과 천진난만함으로 누군가를 괴롭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누군가를 괴롭히고 싶은 나의 악마성과 못됨이 일의 성공적 완수라는 미명하에 먹이를 먹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생각이 많다.
나를 옆에서 오래 애정으로 지켜봐주신 분들의 말씀을 일부러라도 더 새겨들어야한다.
자기자신에게 도취되어있는 것 만큼
또, 우스운게 없으니까.
하여간 나는 못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