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381 이성의 끈을 붙잡는 법

선택

by Noname

일년에 짜증을 내는 횟수는 다섯손가락도 되지 않는다.

많지 않은데다, 이성적이니 당연히 그 순간들을 다 기억한다.

짜증을 낸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엄한 코르티솔 수치만 올릴 뿐이고

그리고 나중엔 수치심와 후회만 남기 때문이다.


지난 금요일은 몸이 좋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중요한 서류를 떼러 주민센터에 갔는데.

글쎄 내가 그 행정망사태 피해자가 되었네.


순간 이성을 잃었다.


안 좋은 몸으로 토요일에 제출할 서류가 있어

추운 바람을 뚫고 간 주민센터였다.


점심 시간을 할애하여 나왔는데, 이따가 또 나와야한다니.


오만 생각을 순식간에 해치우다가 이성의 끊을 놓쳤다.

짜증이 났다.


이건 짜증을 낸게 아니라 짜증이 난거였다.

명백히 이성을 놓친거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유지보수 업체가 실수했을게 뻔하고, 행안부 공무원분들 난리날게 뻔하고,

주민센터 공무원분들도 난감할게 뻔하다.


어차피 이 정도 사태면 수습도 쉽지 않을 거다.

중요한 서류를 떼야하는 사람이 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짜증이 나버리다니 이상하다.


몸이 좋지 않은 예민한 상태였다.

올해 들어 네번째 난 짜증이다.


짜증은 왜 가까운 사람에게 내게 될까.

안전하니까.

짜증을 내도 본인을 사랑해주리라는 걸 믿으니까.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짜증은 좋은 버릇은 아니다.

내게는 짜증을 낼 사람이 별로 없다.


편한 사람이 별로 없다는 거다.


이유없는 투정을 부려본 것도

고등학교 친구 둘 뿐인 거 같다.


어느 정도 철이 들고는 그 친구들에게도 그러지 않기 시작했고,

그러는 횟수로 몇년에 한번 꼴로 줄어들었지만


가끔씩 동생이

남자친구에게 짜증부리고, 투정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부러울때가 있다.


너는 그렇게 해도 사랑받는구나.


하긴 넌 가만히 있어도 사랑 받고, 예쁨 받았지.

질투나네.


그래서 나는 내 스스로에게 짜증과 투정을 부리는 건 이상하니

종종 온갖 비난을 퍼붓나보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건 나에게 자리를 양보해주시며 손짓까지 해주신 낯모를 분 덕분이다.


감기로 운동을 3-4일 못한 사이 살이 쪘다.

나는 정말 감기 걸릴 자격도 없다고 스스로 다그치다가도 '말이 너무 심했나.'하면서 혼자 북치고 장구를 치며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마침 자리가 나서 앉으려다가 옆에 분께서도 멈칫 하는게 보여서 마음을 접었다.


그런데, 보기 드물게 자리를 양보해주시며 손짓을 해주셨다.


그 손짓에, 나를 비난하던 목소리가 쏙 들어갔다.


정말 난 나에게 너무 심하다.


스스로에 대한 비난도, 짜증도

결국은 선택의 문제다.


어렵게 어렵게 이성의 끈을 붙잡고,

짜증을 내지 않는 것만큼

스스로에게 비난하지 않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이젠 스스로를 비난한 날도 손에 꼽을 정도로 될 수 있겠다.


교보문고에 들렀는데, 작은 전시회가 있었다.


거기엔 올해 가장 잊고 싶은 기억을 적은 후, 꾸겨서 바로 옆 휴지통에 버리라고 되어 있었다.


올해 가장 잊고 싶은 기억?


나를 미워하고

나를 원망하고

나를 질책하고

나를...


꾸깃꾸깃 툭


어쩐지 앞으로 더더욱 내 스스로에게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 혹시 나는 나를 너무 사랑해서 내 스스로에게 짜증이나 비난을 퍼부워도 괜찮다고 느낀 거였을까.


잊지마, 욕을 들어먹은 식빵엔 푸른곰팡이가 핀다고.


어떤 모습이든 무얼 하든 예뻐해줘야지. '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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