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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name Feb 15. 2024

마흔-298 어제 잠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대학 동기들 중 정말 나만?

작년 말 링트인에서 대학동기, 그러니까 대학교 OT에서 같은 조였던 친구가 나타났다.


가만있자 우리가 본게 언제더라…

대학교 2학년 초반까지였던가, 군대가고 못 본듯


“우와 기술사에 금융쪽 다니네. 멋지다.”


멋진거 같기도 하고, 너도 외국계에 국제인증해주는 회사던데요? 라고 하기엔 오랜만에 닿은 대학 동기와의 연락에 그 시절 아기분장을 했던 그때만 상기시키고 싶었다.


친구는 결혼을 한다고 했다. 반가운 마음에 청첩장이 나오면 달라고 했다. OT조는 학과 특성상 남녀비율이 3:1이라 나 외에 모두 남자였는데 사실상 그당시 나는 “상돌이”로 칭해졌기에 모두 남자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여고에서 살아남으려 선택한 제2의 성이라 그 이야긴 나중에 하고. 전에 한번 했던것같다. 그편이 여초사회에서 살아남기 쉽다.


어쨌거나 오후에 온 연락에 의하면 그당시 같은 조였던 형들과 이미 만났으며 모바일 청첩장을 전달한다는 뜻이었다.


원래도 잘생겼는데 결혼한다더니 더 잘생겨졌네. 했더니 머쓱했는지 대학 동기 남자 중 본인이 꼴찌로 간다고 했다.


그러고보니 남녀 통틀어 내가 꼴찌인거 같은데?


아니 진짜, 나만 결혼이라는 것에 발가락 하나도 담궈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어쩐지 기분이 묘했다.

저녁엔 병원을 갔는데 예약이 많으니 18:20까지 오래서 부랴부랴 아픈 발목으로 갔더니 38분에야 진료를 볼 수 있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기분이 좋지 않아. 기분이 좋지 않다고!!!



이런때 나는 크리슈나무르티를 생각하며 위안을 삼는다.


형들은 다 결혼하고 아이들도 있다.

가서 혼자 밥먹게 생겼네.

질투가 나서 못가겠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마음씨 따뜻했던 형에게 연락해 축의금만 전달해야겠다.



아니 그냥 다 말아버릴까보다.


그런데 사실은 알고 있다.

내가 원하지 않은 일이라는 걸

그럼에도 사람들에게 내보일 가장 강력한 열등감의 껀덕지가 결혼이라는 것도.


나는 이걸 이용하고 있는거야.

늘 뭔가 열등한 모습을 보여야만 공격받지 않는다고 느껴왔던 듯 하다.


그런데 결혼을 못했다고 말하는 것도 조금은 뻔뻔한 처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합리화 끝에 기분이 괜찮아졌다.


나는 아직 서로 온전히 존재하며 사랑을 마음껏 주고 받을 인연을 만나지 못한 것 뿐이니까


그런 복이 이번 생에 주어지리라는 것도 지나친 바람일 수 있다는 것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적당히가 아니라 완벽한 걸 바라기 때문이다.


아빠가 너무 좋은 분이셨던 딸들은 오히려 결혼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아빠처럼 극진한 사랑을 다정함을 유머러스함을 성실함을 똑똑함을 다재다능함을


그 높은 기준을 채워줄 사람이 많을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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