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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name Feb 18. 2024

마흔-295 나이가 들수록 : 관계

흔한 생일 축하 메시지

다음 생이 있다면 끔찍하겠지만,
그래도 언니하고 함께 라고 한다면 다시 태어나도 나쁘지 않을거 같아.


샤샤언니의 생일이었다.

여러 현실적인 사정으로 올 설에는 모이지 못했기에 어제 만났다.

우리 모임에 이름이 생긴건 작년이다.

그전에는 이름의 한글자씩을 따서 "맹찐따쌍" 뭐 이런 식의 유치한 모임명이었는데,

이번에는 좀 세련되게 바꾸었다.


눕는걸 좋아하는 나와

앉아있는 걸 좋아하는 샤샤님과

서있는 걸 좋아하는 녜진이와


그래서 모임명이 눕앉서이다. 전보단 세련됐다.



거의 20년지기인 우리는 서로 뭘 노력해서 친해졌다기 보다 어쩌다보니 같이 어울려 있는 사이가 되었다.

서로를 피한 적도 있다. 진심이다.

일부러 수강신청을 따로 한다거나 전공이 달랐던 나는 늘 도서관에 있거나 알바를 하러 가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우린 같이 있었다. 졸업하고서도 토익학원을 다니며 옥상에서 도시락도 같이 먹고 20대는 언니들과 늘 함께 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샤샤언니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30대를 지나 이제 40대 언저리가 된 친구관계는 현실적인 문제들에 봉착하여 서로 간의 어떤 차이랄지, 사정이랄지, 오해와 같은 것들로 멀어지게 마련이다.


녜진이가 물었다.

"호주에 다녀와서 뭔가 상대적 박탈감이나 자격지심을 느끼지 않았어?"


안그래도 열등감에 찌질거리다가 언니들을 만난 탓에 눈물을 글썽이면서


"우잉 나 눈물 나..."


하면서 울먹울먹

"그동안 주변 사람들이 어떤 사정을 말하면 안타까운 마음에 만날 밥을 사준다거나 뭐 필요한게 있다그러면 선물로 준다거나 그랬는데..."


알고보니 나만 아무것도 없었다.

대체로 다들 결혼을 해서 다정한 남편과 금쪽같은 아이들과 어떻게 해서든 다들 집을 샀고, 차도 있고, 원하면 언제든 놀러갈 수 있다. 그들의 사정이 좋지 않은건 솔로인 나와는 다르게 사치품에 들일 돈이나 친구를 만나서 거한 밥을 살 돈을 들이고 싶은 여유가 없다는 것 뿐이다. 그러다보니 아무것도 없는 내가 그들에게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서인지 돈을 잘 쓰게 되는 입장이 된다.


그들은 그저 "혼자인 너가 부럽다."이 말 한마디면 그 모든게 정당화되는 일이다.

그럼 나는 "아, 정말 힘들겠어."라고 안쓰럽게 생각하는거다.


그렇게 남자도 없고, 집도 없고, 돈도 없고, 차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주제도 모른채 남들에게 잘하는 좋은 친구가 된다.



잘 생각해보자. 진짜 친구라고 해도 나의 빈약한 노후, 나의 무능력한 삶, 그리하여 골골대며 의지하는 입장이 된 나를 그들이 과연 신경이라도 쓸 수 있을까?


눕앉서 회원님들은 모두 통감했다.

나만 그런게 아니라 우리는 모두 가족, 친구, 주변인들에게 그런 존재였다.


그러니 오직 서로만이 가장 '안전한' 존재인거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경제적으로 물질적으로 심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범위에서 물심양면 할 수 있는한 해주려고 하는 마음이, 행동의 증거들이 20년간 축적되어 있다.


오히려 내가 거의 받기만한 관계에 가깝다.

전례없이.


"오해가 없는 관계라 좋아."


맞다. 우리는 오해가 없다.

재작년 어느 때에 새삼스럽게도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어 한바탕 눈물 바다를 만들고 나더니 더욱 그렇게 됐다.


"야 너 우리가 매너다리 해준다."

"다음부턴 투명의자에 앉아서 와라."


나는 어떻게 이렇게 키크고 예쁜 언니들 틈에 낀거지.


이런들 저런들 이렇게 사랑하고 고마워하면서 서로 어떤 측면에서든 도움을 줄 수 있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관계만이 남는다.


심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살면서 힘들 일도 많은데 심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것도 엄청난 일이라는 걸 배운 요즘이다.


무엇보다 스무살 젖살이 빠지지 않았던 그때보다 더 해맑게 "울다가 웃다가" 할 수 있으니


"아니 나는 다른 집 남편이들이 먼저 가방을 사준다거나 챙겨주고 이런거 너무 부러운거야."

"야 나는 그런건 바라지 않는데 그냥 남자가 없다. 남자가 있는 너가 부럽다 나는."


어쨌거나 어제 안국에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사람 많은 곳을 힘들어하는 내가 버텨낼 정신력을 발휘할 수 있는건

언니들이랑 있다는 안정감 덕분인 것 같다.


우리는 그날 그 사람 많은 야외에서 9시간을 내리 놀았다.


실컫 놀고도 늘 아쉽다.

진짜 초딩들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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