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열등감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그건 그냥 '저 사람에 비해 나는 열등하구나.'하면 된다.
그렇구나, 나는 저 사람에 비해 부족한게 많구나.
그렇게 인정하고 저 사람만큼 잘나보이고 싶으면 뭘 하면 될지를 생각해본다.
저 사람처럼 쉴새 없이 사람들을 챙기고,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만들어오고, 일을 하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공부하고, 애쓰면 되는가?
어떤 사람은 타고나길 그렇게 타고난 사람이 있다. 순풍에 돛을 단 듯
평탄하게 누구보아도 엘리트의 삶을 살아간다.
그들에게도 뭔가 어려운 점이 있을거라는 지레 짐작은 그저 자기 합리화일 뿐이다.
어떤 경우에도 불건전하게 자기 합리화를 하며 끝내지 말고
아주 건전하게 자기 자신을 인정하거나
그보다 더 큰 노력을 하거나.
그런데 더 큰 노력을 한다고 열등감이 없어질까?
열등감은 먹이를 먹는다.
언제고 비교대상은 사지에 널려있다.
그러니까 어떤 비교 대상이 문제가 아니라
내 안에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줄 모르는게 문제다.
키가 작은게 왜
얼굴이 못생긴게 왜
아이큐가 130이 넘지 못하는게 왜
남자친구가 없는게 왜
결혼을 하지 못한게 왜
사춘기 소녀의 볼에 난 여드름 같은 거다.
별게 아닌데, 그 당시의 나에겐 하늘이 무너질듯 너무도 크게 보이는 그런것
사실은 콤플렉스 투성이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그 모든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인생에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할 타인의 잣대와 평가를
내 안에 들여와 그들을 절대적 위치에 놓아두기 때문이다.
물론 그 타인이 가족들이 되는 경우 문제는 한층 심각해진다.
그러니 남과 비교하는 부모는 최악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정작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열등감을 숨기기 위해
타인에게 잣대를 들이대는 것 뿐이다.
너 정말 키가 작다
너 정말 못생겼다.
그냥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2차 해석이 문제다.
너 정말 못생겼다. (그래서야 사랑받을 수 있겠니?)
그냥 저 사람 기준에 내가 못생겼구나. 어쩌라고. 끝.
나는 그냥 그러한 존재일 뿐이라는 걸 인정하면 된다.
어쨌거나 자신의 우주에서 어떻게든 버텨내며 살아가고 있는 중이니
삶의 목적은 존재함에 있다.
그걸로 된거다.
박노해 시인의 '그런 사람도 있어야지'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