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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name May 25. 2024

마흔-198 절교에 대한 고찰

20년 간이 데이터

지난 20년간 인생에서 동성친구에게 절교를 6번 당했다.

친구 사이에 이럴 일인가 싶지만, 그런 일이 실제로 여러 번 벌어진 것이다.

물론 여기서 내가 그만큼 아끼거나 노력을 들이지 않은 관계의 깨짐, 상대방의 비난과 악담은 제외했다.

마음을 들이지 않은 관계에는 에너지와 비용을  쏟은 적이 없으므로 전혀 타격을 주지 못한다. 비록 상대방은 나에게 타격감을 주고 싶어 했을지라도.

그러나 사실당했다고 하기에는 '절교'라고만 표현하는 편이 더 사실에 가까울 듯하다.

그 이유는 나의 무의식 속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미필적 고의가 작용한 부분도 상당한 몫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사건 1. 19살 1건

사건 2. 20대 중후반 2건

사건 3. 30대 중반 1건

사건 4. 30대 후반 2건(사건2-2와 동일인물 1명)


공교롭게도 김 O영이라는 이름이 60퍼센트를 차지한다.


나의 성향과 그들의 성향에 어떤 어긋남이 발생하여 절교가 발생된 걸까.


사건 1에 대한 복기

사건 1건은 전적으로 나에게 잘못이 있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마음깊이 좋아하고, 믿었던 친구였다.

우리는 너무 관념적인 이야기를 편지를 통해 주고받았고, 현실적인 부분에서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임의로 판단하고, 넘겨짚어 생각함으로써 서로 간의 신뢰가 되려 무너지는 부분이 발생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너무 두려운 나머지, 너무 가벼운 태도를 취해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했고, 그 친구는 내게 "다시는 너와 친구 따윈 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그녀는 나와 같이 섬세하고, 깨지기 쉬운 사람이었다. 내가 나 자신을 깨쳐버린 것과 같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는 아무리 부인하려고 해도, 영향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그때 나는 처음 가져보았던 가까운 관계가 깨짐으로써 진실로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을 대하기 위해 투명성과 진중함, 존중과 배려를 어떻게 조심히 표현해야만 하는지 절실하게 배웠다.


사건 2에 대한 복기

우선 사건 2의 대학동기는 지독한 나르시시스트였다.

그녀는 자신의 구미대로 사람을 휘둘러야 했으며, 나에게 마음이 상해 7년이 넘도록 일부러 나와 만날 땐 30-3시간을 지각했음을 고의로 말을 해주었다. 그러고도 나는 그럴 수 있었겠다며 허허 웃었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러고 나서 1년을 더 친구로 지냈고, 언제나처럼 갑자기 그녀가 부르면 5분 대기초처럼 쪼르르 달려 나갔다. 그녀의 말, 그녀의 글, 그녀의 행동, 그녀의 눈빛, 그녀의 비난 하나하나에 상처받고, 그럼에도 반성하고, 맞춰주고, 기다리고, 그녀의 독특한 취향과 종종 보이는 다정함에 그것이 우정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라면 어떤 경우에도 그녀의 편에서 그녀에게 공감하고, 이해해 주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건 1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중도를 몰랐다.

그러나 직장인이 되면서, 나는 어떤 결박감을 느꼈다. 이 대학동기를 생각하면 속이 답답하고, 올가미에 걸려 옥죄어 오는 고통이 느껴졌다. 어느 순간, 거의 모든 대학 동기들이 이 친구를 멀리한다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약속 당일 거짓말로 나오지 않거나, 쿨하게 말하지만 교묘하게 내가 그 동기의 뜻대로 움직이게 된다는 점이 어렴풋하게 느껴졌다. 나는 미필적 고의를 저질렀다. 대학동기의 뜻에 여러 번 반하는 행동을 했다. 그러자 대학동기는 절교를 선언했다. 자아성찰을 위해서 페이스북에서 받은 메시지를 지우지 않았는데, 원문은 다음과 같다. 저 메시지를 보내고도 나에게 기회를 주고자, 뭘 물어보려고 한다며 메시지를 보내왔지만 답장하지 않았다.


SNS에 쓰는 글귀들만큼 스스로를 돌아봤으면 좋겠다. 타인한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너는 네가 상대에게 어떻게 비칠 행동을 하는지 네 기준 이상으론 생각을 못하는 것 같다. 거기에 상대가 불쾌함을 드러내면 거기에 바로 울컥해서 감정적이 되고. 네 그런 면면에 이젠 나도 더 인내하고 싶은 생각이 없네. 솔직히 지친 것도 지친 거지만 정도 떨어졌다. (2012.2.27)

이 메시지는 내가 정신 차리고, 사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20년간 매일 같이 대학생활을 하고, 만난 친구들은 나에게 혹여라도 너 스스로가 "내가 실수했나? 내가 잘못했나?" 하는 생각은 금지라고 했다.


나는 정말 그녀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을까?(그녀가 말한 엄격한 잣대 속하는 것은 약속시간이었다. 그녀가 늦을 때마다 멀리서 봤을 때, 내가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는 것)

감정적이었던 부분은 시인한다. 나는 지나치게 감성적이었고, 나의 지나친 공감에 그녀는 늘 넌덜머리를 냈으니까. 그 부분을 고치기 위해 많은 부분을 노력했다.


하지만 사실, 나는 당시 극강의 해방감을 느꼈다. 겨울이었다. 당시 나는 다세대 주택에 살고 있었다. 메시지를 읽고, 온몸의 세포들이 만세를 부르는 듯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잠시 나왔다. 흰 눈이 소복하게 쌓여 세상이 온통 하얀색으로 반짝였으며, 세포들이 깨어난 청명한 느낌이 차가운 겨울 공기에 더더욱 극대화되었다.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나는 웃었다.


"드디어 해방이다."


사건 3에 대한 복기

나의 성향은 이유 없이 그저 내 마음에 든 누군가가 아닌 이상,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데에 있다.

이 인물은 중학교 1학 때로 거슬로 올라간다. 어둡고, 염세적인 성향이 어느 정도 나와 비슷했기 때문인지 이 친구는 나를 좋아해 줬다. 다른 동급생들처럼 내게 편지도 써줬지만, 나는 그 당시 타인에게 관심을 가질 정신상태가 아니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멀어졌는데 어떤 미안한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굉장히 밝아진 이 인물은 종종 같이 이야기하고 어울리곤 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도 지방으로 대학교를 간 친구를 만나려 1년에 한 번 정도, 혹은 몇 년에 한 번 고향에서 만나기도 했다. 대학교 졸업을 앞둔 어느 겨울날에 게임회사에 취업하고 싶어 하는 나를 불러, 본인 친척언니가 게임회사에 다니니 소개해주겠다며 일주일만 같이 지내자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만약 다단계라고 하더라도 나는 이 친구와 우정을 간직하리라고 마음먹고, 친구에게 갔으며 역시나 다단계가 맞았다. 거기서 설파는 것들이 자신이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에게 돈을 벌어주자라는 의도로 포장이 되어있었고, 수익구조는 물건만 괜찮다면 나쁠 게 없었다. 거기엔 심약하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있었다. 합숙을 하는 지하의 숙소엔 그 회사의 상품들이 사용가능하도록 진열되어 있었다. 그러나 캐비어 화장품엔 캐비어 성분이 1%도 들어있지 않았다. 대학학비나 자취를 핑계 대서 돈을 만들어 시작하라고 하였으나, 당시 나는 장학금을 받고 있었고, 이모 댁에서 생활했기에 300만 원의 돈을 만들 처지가 못 되었다. 처음에는 돈을 빌려주겠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화를 내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곳이 얼마나 좋은지, 내가 지금 어떤 잘못된 선택을 하는 건지 이야기를 하며 나를 보내줬다. 중고등학교 동창들 사이에 그녀의 소문이 돌았지만 나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10년이 넘도록 몇 년에 한 번 얼굴도 보고, 메신저로 선물도 주고받으며 지냈다. 그 친구는 결혼을 했고, 생활이 바빠졌다. SNS에서는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했다.

먼저 약속을 잡으려 하지 않는 나이지만, 코로나 시국에 바쁘지만 보고 싶다는 친구에게 세 번 정도 약속을 잡기 위해 연락했고, 약속을 잡았었으나 당일 취소를 번복했다. 그러다가 사건 당일 그녀가 진짜 친구 가짜 친구에 대한 글을 올리기에 댓글로 우리의 우정을 과시하려는 목적으로 '나는 네가 다단계로 불렀을 때도, 너 믿었다.라고 글을 남겼다. 그때까지 우리는 종종 그때 일을 이야기하면서 우스갯소리를 했었기에 그 친구가 그 경험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헤아리지 않은 것 같다. 그건 명백히 내 실수이다. 그 경험이 그녀의 치부일 거라고 생각을 못한 거다. 어쩌면 이 또한 미필적 고의였으리라.

그런데 그 친구는 내게 메시지를 보내 그것과는 관련이 없는 다른 말을 했다.


"너는 왜 연락도 안 하고, 날 만나주지 않아? 왜 나만 너한테 선물을 보내는 거야?"


어안이 벙벙했다. 카카오톡에서 주고받은 선물 내역을 보내줬다. SNS에서 이야기를 주고받은 것은 그렇다 치고, 약속을 잡기 위해 주고받은 연락과 몇차례 파토난 건에 대해 언급했다.

갑자기 그 친구는 쿨하게 말했다.


"그런 게 뭐가 중요하냐."


세 번이나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비난은 끝나지 않았다.


"미안하면 너 성격 좀 고쳐. 먼저 연락 좀 하라고."


그 당시 나는 가택침입 시도 의심되는 변태의 관음행각으로 인해 심신이 쇄약 해져 있었다. 인스타에도 현장의 뜯긴 철망 사진 등을 올리고, 심리치료를 받고 있음을 올렸고, 그녀도 큰일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했다. 바로 전에 약속을 잡을 때도, 전화통화를 하면서 그 일이 얼마나 끔찍했고, 내 상태가 어떤지 이야기를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비난이 쏟아졌고, 참지 못해 나도 한마디 했다.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녀는 내게 절교하자는 의미의 어떤 말을 했는데, 역시 기억은 나지 않는다.


나는 또 해방감을 느꼈다.


사건 3에서 나는 가까운 사람들이 내가 연락하지 않는 것을 나의 특성으로 여겨주고, 먼저 연락해 주고, 약속을 소중히 여겨줌에 대한 감사를 느꼈다. 나 또한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아니 1년엔 한 번은, 아니 SNS에 댓글이라도 하나 더 남기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누군가를 만나면 그 존재에 최선을 다하는 스타일이다. 먼저 돈을 쓰는 경우도 많고, 약속시간은 늘 잘 지키며, 상대가 불편하지 않게 배려한다. 상대방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해 고민하는 스타일이라서 그런 부분들이 인정되어 주변에 사람이 많다는 걸 최근에 알았다.)



사건 3에 대한 복기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한때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못했다. 내가 변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는 편이라서 이 말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인정한다. 나 역시 조금씩 나아지고 있을 뿐이지, 나의 본성이나 기질은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상처받아도 사람을 잘 믿고, 좋아한다. 며칠 전 언니들은 너는 그래도 참 맑은 게 그렇게 관계에서 많은 일이 있었어서 잠시 힘들어해도, 늘 누군가를 믿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을 좋아하는 게 진짜 대단하다고 했다.


그렇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10년 전 내게 한 달 동안 같은 고민을 매일같이 말하기에 같이 계속 고민을 하던 찰나에 내가 했던 방식으로 해보면 어떻겠냐고 해결책을 제시하자, 너는 그냥 자신의 말을 듣기나 하면 된다며 짜증을 내고 절교를 선언했던 인간이 SNS로 자신이 많은 깨우침을 얻었으며 그때 너의 말이 맞았다고, 다시 잘 지내고 싶다고 말을 걸었다. 나는 또 믿었다. 대학생 시절 술을 좋아하는 이 친구와 같이 놀러 다니며 술값이며 뒤치닥 거리를 다해주고 다녔다. 내게 있던 어떤 똘기와 이 인간의 똘기가 맞아떨어져 맞는 구석이 있었다. 그러니 김 씨 둘과 절교한 나는 술자리를 갈 일도, 일상을 벗어날 일도 없었다. 적잖이 심심했던 면이 있었다.

그러나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코로나에 걸려 워터파크에 못 가게 되자 정확히 2주 후, 이 인간에게 끌려 워터파크에 가야 했고(생각해 보면 거절을 하지 못한 나도 멍청하긴 하다.), 코로나 후유증 약처방이 잘못되어 위궤양을 앓음에도 꾸역꾸역 그녀의 생일 파티에 가서 술을 안 먹는 내가 운전을 해서 그녀의 유흥을 도와야 했다.


"대학생 때는 내 술값 다 내주고, 내가 신발 벗고 걸을 때 내 신발 들어주더니, 이젠 차가 있어서 자가로 운전해 주는 대리운전사가 됐네! 너무 좋다! 생일 파티도 해주고!"


뭐가 좋았는지 나는 위를 부여잡고 운전을 하며 껄껄대고 웃었다. 그리고 남자친구가 생긴 그 인간과의 관계는 그 빈도가 점점 줄었고, 내 생일날 본인의 집으로 부른 이 인간은 자신이 조금 몸이 좋지 않다고 하면서 냉동 만둣국을 끓여줬다.


이 인간은 종종 내게 왜 먼저 연락하지 않나며 울먹이고, 서운함을 토로하곤 했다.

그러나 내가 먼저 연락하면 바쁘다고 뚝 끊어버렸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내 생일 이후 인스타로 소식을 주고받다가, 1월이 되었다.

직장 내 성희롱 사건으로 3주간 쉬며 정신과약을 먹고 있는 중이니 평일에 쉬는 이 인간에게 마침 나도 여유가 있으니 보자고 했다. 그러나 당시 남자친구와 시간을 보내느라 바빴던지 다른 친구를 멀리하기 위해 자신이 어떻게 했는지 내게 말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거절을 했다.


그러려니 하고 있다 보니 8월이 되었다. 8월, 그 인간의 생일 일주일 전, 카톡이 왔다. 나를 염려해 주는 듯한 카톡이었다. 괘씸한 마음을 느꼈고, 차단을 했다. 주변 사람들은 다시 내게 말했다.


"그러게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니까. 우린 대학생 때부터 그 애들을 멀리 했잖아. 네가 마음이 약해."


내가 마음이 약한 걸까. 물론 나에게도 좋은 점이 있으니 다시 어울린 거다. 순전히 나를 위해 좋으려고, 10년 전 절교한 친구도 받아주는 관대한 사람인 척하려고 한 부분도 있으나, 결론은 좋지 않았다.



사건 4에 대한 복기

시일이 얼마 되지 않았지만 누군가 본다면 해명하고 싶은 마음에 쓴다. 1월부터 나의 상황이 좋지 않은 것에 나의 모든 치부를 낱낱이 이야기해가며 양해를 구했었으나 그건 그녀에게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요즘 그런 말이 있던데,

"자신이 기쁠 때, 같이 기뻐해주지 않는 사람은 떠나보내라."

어쩌면 나는 그 친구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지 못한 사람이 되겠지.

지난겨울 내가 그들 커플을 위해서 정신과 약을 먹던 3주 내내 나 자신의 상태는 고려하지 않고, 들였던 그 모든 순간들이 헛된 것이 되겠지. 그래서 사람은 적당히 잘해주라는 건가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는 늘 서운해했고, 불만족스러움을 표출했다. 나 역시 갑작스레 여러 번 그런 메시지를 받아서 늘 심적으로 미안했고, 부채감에 쌓여있었다. 해명하고자 한 적도 있지만 그런 행동이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라며 잘라냈다. 나는 조용히 반성을 해야 했다. 이런 일들이 여러 번 반복되자 점점 내가 어디까지 그녀의 진심을 헤아리고, 니즈를 맞춰주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건지 점점 지치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단지, 내가 정말로 너무나 사랑하는 친구가 이 친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러려니 해왔지만(물론 그녀들도 나의 모난 부분에 대해서 그렇게 감싸준 덕에 유지가 됐던 관계겠지만) 명령조의 말들과 관계 자체를 두고 협박을 하는 건 도무지 참아 줄 수가 없었다. 꽤 오랜 시간이었다.

이건 내가 소심하고, 관계에 집착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전적으로 내가 예민해서 발생일일테다. 그러나 그만큼 서로 간에 결이 맞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억지로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녀들은 왜 나를 본인의 남자친구라도 된냥, 말하고 행동했을까.

(물론 이제는 가족이나 남자친구 그 누구에게도 그런 식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다.)


- 그건 내가 그들에게 적당한 선이 없이 그래도 되는 사람처럼 대했기 때문이다.

기대를 먼저 채워주려 노력하고, 웃어주면 으레 당연히 그런 애니까 더 기대심리를 갖게 되는 상대가 되어준 나의 잘못이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 법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대체로 내가 뭔가 어려운 상황에서 심리적으로 불안한 때 절교가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결국, 나의 사정이 좋지 않아 심약해져 타인에 대한 고려가 어려워지면 내게 버거운 사람들이 어떻게든 떠나간다는 것이다.



종합적으로 볼 때,

"500일의 서머"영화와 같이 나는 내가 주고 싶은 최선을 다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만족을 못하고, 늘 서운해했겠지.

그런 부분을 나 스스로도 알기에, 내가 완벽하지 못하다는 걸 알기에 늘 나를 개선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거고.


그 과정일 뿐이다.

그들에게 나는 천하에 못된 인간이겠지.


경계성 성향이 강한 나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어쩌면 내가 어린 시절 남자친구들에게 했던 짓들이 얼마나 못 되고, 생각 없는 행동이었는지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이런 일들이 벌어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내가 순순히 절교를 받아들이고, 다시 교우하지 않는 데에는

이미 나는 내가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나의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그들에게 쏟았기 때문이고,

그들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더 희생할 '나'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에서도, 나의 삶에서도 서로가 없는 편이 희망적이다.


나는 늘 선택을 할 때, 내 죽음의 순간을 떠올린다.

혹여 죽는 순간에 후회하더라도,

그들 이외에 이런 나를 받아들여주고, 여전히 사랑해 주며, 다치지 않게 소중히 여겨주는 사람들에게 들일 수 있는 기회비용을 더는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록 나는 그들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지 못한 미안함도 조금은 있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속이 좁다.


진심이 통하지 않는 관계도 있게 마련이다. 나는 어리숙하고, 멍청했으며 그들에겐 좋은 인연이 아니었다.


지금 나는 내가 피해망상을 느끼고 있는 건지,

나의 지나친 경계성 성향이 그 관계를 망치는 것인지,

나의 나르시시스트적인 면모가 너무 컸던 건 아닌지 고민하고 있다.



내 곁에 남아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법정스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진정한 인연과 스쳐가는 인연은

구분해서 맺어야 한다

진정한 인연이라면 최선을 다 해서

좋은 인연을 맺도록 노력하고

스쳐가는 인연이라면

무심코 지나쳐 버려야 한다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헤프게 인연을 맺어 놓으면

쓸만한 인연을 만나지 못하는 대신에

어설픈 인연만 만나게 되어

그들에 의해 삶이 침해되고

고통받아야 한다

옷깃을 한번 스치는 사람들까지

인연을 맺으려고 하는 것은 소모적인 일이다.

인간적인 필요에서 접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주위의 몇몇 사람들에 불과하고

그들만이라도 진실한 인연을 맺어놓으면

좋은 삶을 마련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진실은 진실한 사람에게만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좋은 일로 결실을 맺는다

우리는 인연을 맺음으로써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피해도 당하는데

대부분의 피해는 진실 없는 사람에게

진실을 쏟아부은 대가로 받는 벌이다


- 법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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