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952 실패의 단맛

by Noname

세상에는 신기할 정도로 순탄하게 탄탄대로를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실패 없는 삶이라니, 얼마나 삶이 마법 같을까?

원하는 대로 생각한 대로 이루어지는 삶 말이다.

재미있다 못해, 지루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건 모함일지도 모르지.


분명 재미있을 것 같다.

겁 없는 어린아이처럼, 이 세상 모든 것이 놀이이고, 재미일 텐데


붓다는 그래서 처음 만난 '죽음'에 충격을 받고, 오로지 탐구에만 매달려 해탈을 했다고 한다.


인생에는 수만 가지 과제들이 쌓이는 걸로 모자라, 훅 치고 들어오기도 하는데,

그래서, 오만가지 고행을 자처한 붓다는 그것이 본인에게 주어지는 과제임을 알았기에 해탈했고,

평범한 사람들은 그것이 과제인 줄도 모른 채, 이리저리 휩쓸리다 과제가 수없이 쌓인 채로, 삶을 마감하는지도 모른다. 그건 또 업보가 되어 자손에게 남겠지


여전히 나는 종교가 없다.


실패의 단맛은 정말 달콤하다.

실패해보지 않은 사람이 성공을 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난 주말 출근해서 오랜만에 멘토님과도 같은 기술사님과 식사자리를 갖게 되었다.


110회 기술사 공부를 함께 했던 정예 멤버는 4명이었다.


그리고 그중 두 분을 내가 유독 따랐다. 워낙 인품도 좋으시고, 아는 것도 많으시고, 어린 나를 대견하게 여겨주셨기에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110회 합격자 발표날 두 분은 합격하셨다. 나는 0.6점이 모자라 불합격을 했는데,

사실 합격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해서, 모의고사 보듯 어려운 문제에 손을 댔다가 X를 치고, 다른 문제를 푼다거나 뭐 그런 일을 했다.


그래서 떨어졌다. 기술사님은 말씀하셨다.

"네가 된다고 믿었으면 됐을 건데."

나는 대답했다.

"아, 근데 그때 합격했으면, 면접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을 거고, 강의를 잘하게 되지도 못했을 거고, 제 스스로 그렇게 자랑스럽지 못했을 거예요."


나는 총 2,000시간을 채우고 합격했다. 모든 토픽을 학회지, 논문, 신문, 전공서 뭐하나 빠짐없이 샅샅이 공부했다. 스터디를 리딩 하는 입장이 되고, 다른 분들께 가르쳐주는 입장이 되다 보니, 당연히 강의나 멘토링 스킬은 늘 수밖에 없었다.


일필휘지, 청산유수. 딱 그땐 그랬다. (물론 지금은 잊어버린 게 많다.)


실패의 단맛은,

1. 공감 능력 : 다른 사람의 실패를 이해할 수 있다.

2. 멘토링 능력 : 스스로를 깊이 분석한 탓에 다른 사람을 보면 왜 안 되는지 금방 찾아내서 이야기해줄 수 있다.

3. 정신적 성장 : 실패를 받아들이고, 그 고통의 순간을 극복하고, 죽을힘을 다해서 견디고, 마침내 해낸다. 그만큼 내적 성숙도가 쌓인다.

4. 지식과 경험의 성장 : 그만큼 지식과 경험이 늘어난다.

5. 인맥의 성장 : 그만큼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공부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그때 실패하지 않았다면, 나는 정예 멤버 4명 외에는 지금처럼 많은 분들과 돈독한 사이로 지내긴 힘들었을 거다.

실패는 달다.

물론 실패하고 다시 도전해서 성공해야 더 달겠지만,

성공하지 못한다고 해도 뭐, 나름 괜찮다.


가장 아쉬운 실패의 기억은

중학생 때, '컴퓨터 그래픽스 운용기능사'필기를 독학해서 단번에 합격하고, 그 뒤로 '실기'를 2년 동안 떨어져서 '그래픽 디자이너'의 꿈을 접은 일이다.


그땐 몰랐지. 산업디자인과 나온 사람들도 그 당시 1-2회 차 실기 합격이 하늘의 별따기였다는 걸


그걸 미리 알았다면, 나는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었을까?


인생에는 길이 있고, 내가 정말 가야 할 길이라면 아마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의 의지와 열망이 거기까지였을 뿐이다.


그게, 그건 실패일까. 과감한 포기일까, 새로운 선택의 기회일까


그 뒤로 이상한 버릇이 생겼는데,

시험을 일부러 한 번은 떨어져 본다는 것이다.


또래 기술사가 '이상아 시험 불합격 기만설'을 운운하며 놀리긴 하는데

사실, 교육을 하면서 내가 프로그래밍을 포기했던 경험 덕분에 그들에게 공감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좋았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멘토는 실패를 많이 해봐서,

충분히 멘티의 마음을 이해하고, 품을 수 있는 멘토가 아니겠는가


실제로도 그렇다. 실패의 경험이 없는 멘토는 멘토링을 할 수가 없다.

왜 안 되는지 모르거든.


그러니 실패는 달다. 포기하지 않는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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