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118 못된 버릇

답습

by Noname

30대 초반, 내가 엄마에게 엄청나게 화를 낸 적이 있다.

그때 아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엄마의 편을 들었다.

차분하게 논리적으로 말씀을 드렸어야했지만,

켜켜히 쌓여온 30년 치의 두려움은 분노가 되어 폭발해버렸다.



내가 아주 작은 아이였을때부터 엄마가 자주 하는 "말"이 있었다.

그건 말씀이 아니라 "말"이나 협박에 가까웠다.


"내가 그냥 콱 죽어버려야지!!!"

"그 소리 좀 그만해. 내가 죽어버리겠다고 말하면 좋아? 나도 엄마한테 그렇게 말할까? 그러면 되겠어? 그냥 죽어버릴까 내가?"


엄마는 늘 그 말로 나를 협박했다. 엄마의 뜻대로 되지 않을때, 뭔가 속상할때.

늘 무서웠다. 어린 시절에는 그저 너무도 무서워서 엄마에게 거슬리는 행동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특히나 어느날 갑자기 엄마가 발작을 하고 쓰러졌을때, 다시는 절대로 엄마를 거역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그 30대 초반의 사건을 기점으로 다시는 그 말씀을 하시지 않으시지만,

엄마에게서 떨어져나온 그 말은 나에게로 붙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애정하는 그 누군가로부터 이해받지 못하는 마음이나 버림받은 마음이 들때마다,

서운한 마음을 건너 뛰어버리고, 아주 시니컬하고 냉정하게 그저 장난처럼 말을 하는거다.


"그냥 죽어버려야하나."


아마도 나는 그 옛날 초등학생 시절부터 마음 속에서 하루도 수십번 읊조리던 말이 엄마에게 그렇게 분통을 터뜨리고 나서 더 이상 그 누구에게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하자, 내 입으로, 내 손가락으로 흘려버리는 거다.


어차피, 아무도 나를 신경쓰지 않잖아.

아마도 그때, 남동생이 죽고 방치되었던 그 사이에 생겨난 비합리적 신념일테다.


내 정신연령은 평소 괜찮다가도 어느 순간, 마음을 다치면

늘 그때로 회귀하여 연약하고, 취약하고, 수치심과 죄책감으로 똘똘 뭉친 악귀상태가 된다.


심리학 공부를 하고, 명상을 했기에 이정도지

사실 사는게 사는게 아니었다.


늘 고통스럽지 않게,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죽을 수 있는 방법만을 떠올리는 자에게

삶이란 그저 스쳐가는 바람일 뿐이라


안정된 삶이나, 오랜 정이라는게 익숙할리가 없다.

아니 오히려, 부담스럽고 거추장스러운 그 무엇이었다.

어차피 어느날 사라질 나에게는 사치스러운 무언가.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가 된다는 건, 마치 죄를 짓는 일과 같았다.

그토록 나의 죽음을 소원했기에.



아냐. 이건 정말 잘못된 거야.


그 누구도 스스로를 소중히 여겨주지 않는다는 착각과 망상 속에서 스스로를 괴롭힌다하더라도

적어도 내가 내 자신에게 그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취소, 퉤퉤퉤"


이게 그동안 죽음을 떠올린 횟수를 상쇄시켜준다면 몇만번을 해야할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사람은 끼리끼리라고 내 죽음에 대한 의견에 대해 자신도 그렇다고 동조해주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몇몇 있었기에 더 자연스러웠던 건지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의 삶을 책임져줄게 아니기에 서로의 죽음 정도는 누군가를 잃는 슬픔을 감내하더라도 축복할 일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 '그 말이 너무 무섭다'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또 있었다니.


'아냐, 그런 말을 하는건 정말 내가 잘못한거야. 내가 정말 미안해. 진짜 그러면 안 됐어. 정말 미안해.'


겁을 잔뜩 집어 먹은 채로, 사실은 죽음이 두려우면서도 나는 말하지 못했다.


"사실은 나도 잘 살고 싶어."


내게 그럴 자격이 있긴 할까.

수치심이 몰려왔다.


아직도 그 순간.


"너 때문에 동생이 죽었다."라는 그 원망 섞인 말과 얼굴이 나의 다른 인격이 되어 스스로를 그토록 미워하고 증오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말을 할때,

특히나, 아주 어린 아이에게 말을 할때는 정말 조심해야한다.


못된 버릇이 들어버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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