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가 필요한 이유
병원에서 누군가를 간호해 본 것은
2010년 경 외할머니께서 폐암으로 입원하셨을 때였다.
시골 병원에서 단순히 천식이라고 진단받았던 것이,
알고 보니 폐암 4기까지 발전했으며 노원구에 있는 원자력병원으로 급하게 후송되어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동작역 환승구간에서 들었다.
아직도 동작역에 가면 그 어딘가 환승 구간에 앉아 하염없이 울고 있는 내가 보인다.
외할머니께서 마지막으로 서울에 오셨을 때, 월드컵 응원을 다닌다고 철없이 놀다 늦게 들어갔던,
그 기억, 그때 늦게 다니지 말라며 타박하시던 그 모습이 건강한 외할머니의 마지막 기억이다.
주중에는 퇴근 후에 가서 밤 10시경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고,
주말에는 엄마와 이모들을 대신해서 내가 내내 외할머니 곁을 지켰다.
거기엔 아픈 사람들이 천지였다.
단 한 달, 거의 파트타임으로 간호를 했지만 하는 것 없이 힘이 들었다.
두 번째 간호의 기억은 2017년 경 아빠가 입원하셨을 때였다.
희귀 암이라서 간헐적으로 병원에 입원하셨는데,
그 당시 아빠와 많은 대화를 하고 시간을 보낸 것에 감사하면서도,
온몸을 소독하고 들어가야 했던 그 암병동에서
밤새 울부짖던 어느 환자분의 목소리와
죽음을 코앞에 둔 사람들의 눈빛과
그들을 돌보는 가족분들의 치지고 늘어진 피부
그 조그마한 침대가 세상의 전부인 양 가쁜 숨을 몰아쉬다
다음 날 아침 흔적도 없이 깨끗하게 정리되고, 새로운 누군가가 들어온 그 낯섦과 이질감은
담고 있기엔 아프고, 잊어버리기엔 무거운 기억들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아빠가 선택했던 호스피스 병동.
아빠는 서울에서 시골로 이동하는 응급차를 차며 '어차피 죽으러 가는 길'이라고 하셨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아빠가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에 꿈을 꿨다.
피범벅이 되어 침상에 누워있던 아빠와 그걸 어쩔 줄 모르는 나.
그건 정확히 5일 후에 엄마가 자릴 비운 사이 아빠를 모시고 간 화장실에서 현실화되었다.
빨갛게 흩뿌려진 피보다 비극적인 건 딸의 손에 이끌려 화장실에 가야 하는 그 어떤 수치심에 가까움이 아닐까.
물론 외할머니도 그러하셨다. 마지막에는 외손녀의 손을 빌려 화장실에 가셔서 뒷일을 맡겨야만 했다.
사람은 사람으로서 생존보다 더 중요한 뭔가가 있는 경우가 있다.
가령 누군가에게 짐이 되지 않는 것.
가령 누군가에게 최소한의 체면을 지킬 수 있는 것.
누군가에겐 그까짓 거 살아있는 게 훨씬 더 중요할 수 있겠지만,
인간은 다양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적당히 아름다울 수 있을 때,
우아하게 세상을 떠날 수 있다는 것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선택할 기회를 갖는 건 중요하다.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했다고 하는데 그런 이유가 아닐까.
죽음도 운명이니 주는 대로 받아야 한다면 자유의지라는 건 어디서 나온 헛소리인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