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개의 일기를 쓴 소감
마흔까지 천일 간의 기록을 시작하고 벌써 남은 일기가 100일.
그 중에 8일은 빼먹어서 밀렸으니, 실제 내 생일 +8일 후에 천일의 기록이 끝난다.
꽤 오래 써온 것 같은데
20대 때 싸이월드에 매일 일기를 쓰다가 어느 순간 현타가 온 것이,
늘 같은 생각을 반복하고,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어제 운동을 하며 트레이너 선생님께는 아홉수라서 이렇게 여러가지 일들이 연초부터 일정한 간격으로 도미노처럼 오는것 같다고 말씀 드렸다.
어서 빨리 마흔이 되어버려야한다며
그런데 그 모든 것들에서 나는 배우고 있다.
아무런 변화도 사건도, 실수도, 실패 없이
온전히 평온하게 마흔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
어제 운동을 마치고 행복하게 거꾸리에 매달리며
연초에 다친 발목을 생각했다.
그땐 거꾸리도 할 수 없을 지경으로 4개월 넘게 고생했는데, 발목에게 감사하며 행복감이 밀려왔다.
틀어진(어쩌면 깨어진) 친구들 사이도 '그러려니' 넘겼어야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 아픔과 괴로움이 어쩌면 마흔을 맞이 하기에 응당 느껴야 했던 아픔이려니
뭐 깨어진 썸남들과 부쩍 많아졌었던 옛인연들의 연락과
그것들 또한 그렇다.
사람과 삶과 감정에 대해
내가 대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물론 앞으로도 나는 나를 생각하겠지만
어떤 면에서 이건 자의식 과잉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불안함을 줄이기 위해서 특정짓기와 판단하기를 감행한다고 한다.
900일간 일기를 쓰면서 느꼈다.
어차피 내 자신도 특정지을 수 없고, 상황도 사람도 감정도 모든 것이 다 흘러갈 뿐인데
뭔가에 대해 판단하는 건 너무나도 섣부르다.
관계를 특정짓는다는 것 역시
얼마전 가다실 3차 접종을 마치고 사흘 내내 미역 처럼 늘어져있으며 본 '에밀리 파리에 가다 시즌4'에서 '회색지대'라는 표현이 나온다.
어차피, 이러기도 하고, 저러기도 하다.
10대와 20대에는 누군가가 나를 어떤 사람으로 규정하고, 판단하는 것에 혐오감까지 느겼을 지경인데
이제는 내가 나에게 그런 짓을 하고 있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