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 혹은 무관심
말이 갖는 힘은 생각보다 크다.
그 말에 담은 누군가의 진심 역시 사람을 살리거나, 죽일 수 있는 힘을 갖는다.
사실은 그 말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심리 상태가 더더욱 크다.
고등학생 일 때 이런 쪽지를 받은 적이 있다.
'네가 없어져버렸으면 좋겠어.'
여고를 다녔던 나는 그 당시 매우 친해진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그 친구는 1학년 때부터 그 친구와 사귄다는 소문이 돈 친구가 있었다.
그 소문의 주인공, 우리 반 반장이 나에게 써서 보낸 쪽지였다.
글씨만 봐도 대번 알아차릴 텐데
그걸 또 쪽지로 써서 보냈네
아무리 관심 없는 친구라 할지라도 어쨌든 타격감은 있게 마련이다.
세상에 내가 없어지길 바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또 한 번은 중학생 시절 받은 쪽지인데
'난 네가 그냥 싫어'라는 말이었다.
그 당시 무척 친하게 지내고 있던 2살 위 남자 친척에게서 받은 쪽지인데
그땐 꽤 타격감이 컸었다.
그럴 수 있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그런데 왜 그런지 궁금했다.
물론 그냥 싫다고는 했지만 '그냥'이 그냥은 아니니까
그렇게 친하게 지냈는데 '그냥'싫다니
그런 경험이 있기에 나는 타인에게 말을 함부로 하거나, 평가 내리지 않는다.
좋은 면을 보려고 하고, 정말 아니다 싶을 때는 정확하게 말해준다.
그건 성의이다.
미움받을 용기가 넘쳐흐르는 건 아닐까 싶을 때도 있지만
나 역시 그러하듯 개선점을 제시해주지 않는 평가는
상대방의 감정 배설일 뿐이다.
타격을 받을 가치가 없다.
하지만, 상대방이 나에게 실망을 하거나, 단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분명 존재한다.
그러 보고니 작년 여름에도 오랜 지인이 나에게 실망을 했다며 절교 선언을 한 적이 있다.
그 지인은 왜 그런지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설명을 해주면서 친절하게 절교 선언을 했다.
그래서, 나는 그 지인이 곧 다시 나와 친하게 지내게 될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때 이야기를 하여 오해를 풀고 이야기했다.
'나는 우리가 다시 친하게 지낼 거라고 믿고 있었으니, 앞으로 절교 선언하지 말고 그냥 이야기를 해달라고.'
애정이 없는 상대에게 친절하게 이유를 설명해주진 않는다.
나 역시 개선의 여지가 없는 경우와 내가 정말 애정이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내가 미움을 받을지라도 그 사람을 위해서 이야기를 해준다.
그리하여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와 멀어진다고 하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선 그게 맞다.
하지만 애정이 없고, 개선의 여지도 없고, 관심도 없는 상대라면
'저러고 살라지...'의 태도가 된다.
어차피 끊임없이 배우며 성장하는 과정이다.
사실 일목요연하게 설명을 해주지 않더라도,
나와 교류가 있는 누군가로부터 내 귀에 단어 한 가지라도 걸린다면
나는 곧바로 나를 돌아보고, 반성할 것을 찾아 행동을 수정한다.
이런 나의 면이 가스 라이팅에 최적의 조건이라는 걸, 얼마 전 알았다.
비난과 모욕
그걸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일지는 온전히 나의 선택이다.
비록,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분으로부터 들은 그 평가가
나의 어떤 헛된 행동에 의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배려심 없는 그분의 단 한마디에
긴 시간 고민을 했을 지라도
어쨌든 나의 행동 중 어느 부분은 수정이 필요했다.
순전히 일방적으로 비난과 모욕이 촉발되진 않는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
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부분도 존재한다.
하지만 애정이 남아있었다면 비난이 아닌 비판을 했겠지.
행동교정이 목적이 아니라 비난의 목적이 비난인 경우도 허다하니 조심하자.
가스 라이팅에 취약한 나 같은 사람들은 타당성부터 따져봐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자기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자존감을 잃지는 말아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