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생활
프로젝트가 종료되고, 본사로 복귀를 한지 이틀 째다.
그동안 좁은 세계, 1+1이 전부인 세게에서 좁아졌던 시야가 트였다.
개체는 전체를 대표할 수 없다.
그런데 개체는 전체의 일부이다.
전체의 특성을 결정짓는 것은 개체이나 그 개체의 대체적인 특질에 의해 결정된다.
아웃라이어는 희석된다.
어떤 개체는 평균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전지적 시점은 그래서 중요하다.
아주 중요한 일도, 아주 하찮은 존재도
당장 바로 옆의 개체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할지라도 그 한 개체의 희생과 흡수로 그 개체의 특성이 희미해진다.
그리하여 전체에 미미하게 적용된다.
단지 그 쿠셔닝을 하던 존재가 나였다가, 타인이 된다는게
한 편으로는 다행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존재가 안타까워 마음이 쓰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유별난 개체를 희석시키기 위해 연대한다.
그게 전체를 지키기 위한 방법이리라.
약할수록 연대한다고 한다.
개체는 약하다. 그래서 뭉치는거구나.
"진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그렇게 어딜가든 여직원만 괴롭힌다는게 증명이 되었네요."
"그래도 장점은 있어요. 그덕에 우리가 유대감을 갖게 되었잖아요."
지나온 세대의 유산이다.
유대는 어떤 의미로든 필요하다.
단지 그 유대가 갖는 본질이 다수의 개체를 향할때, 정당성을 띈다는 것.
하여튼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