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스스로에게 사과하자
환경에 관심이 많은 나는 버스정류장에서 미련 곰탱이를 보면 마음이 매우 아팠다.
가슴팍이 아리고 쓰리다. 지금도 그렇다.
그 당시에는 그저 환경에 관심이 많고,
동물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가 행복하기를 바라고,
존중받길 바라는 마음이 가득했기 때문이었지만,
오늘 드디어 깨달았다.
지금은 내가 그 미련 곰탱이다.
얼마 전에 사랑으로 일을 할 때, 일이 잘 됐고, 그저 기쁨이었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정말 그랬다.
나는 내가 만든 서비스를 사람들이 편리하고, 쉽게 이용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서비스 기획을 했었고,
컨설팅이나 감리를 하면서도, 내가 제시한 방향과, 대안, 그리고 꼼꼼하게 체크한 시정조치 내용들이
보다 많은 사람과 지구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교육사업 역시 마찬가지다.
회사에서 차장 직급인 나에게 사원 한 명 투입해주지 않고,
직접 과자를 진열하고, 열체크를 하면서 부대표님 커피를 사 오라고 시켜도
나는 그저 낮은 자세에서 겸허하게 일을 받아들이고,
이런 사소한 것들을 직접 해봐야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거라며
과자 하나도 정성스럽게 진열했다.
다른 분들께서 안쓰러워하면
나는 정말 좋은 팀장, 나중에는 정말 좋은 사장님이 될 거라며 사람들에게 씩씩하게 웃어 보였다.
틈틈이 교육생들 상태를 살펴가며 지쳐 보일 땐, 초콜릿 과자, 사탕을 추가 배치하고,
늘 열을 맞춰서 보기 좋게, 먹기 좋게, 손 닿기 좋게 해두었다.
결과보고서를 쓰고, 장표를 만들어 결과보고 발표를 할 때는 온 정성을 다해서
그들이 윗선에 보고하기 좋게 성과 위주로 혹여나 놓치는 부분이 없게 꼼꼼하게 작업했다.
공공기관에서 데이터 기반 행정이 이슈이고, 데이터 기반 역량진단이 필요한 것을 알고는
교육 전후 설문 조사를 통해 모두 분석해서 추가 자료로도 전달하고,
다음 사업을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 지에 대한 담당자의 인터뷰 요청에도
한 시간이 넘도록 상세하게 가이드해드렸었다.
나는 정말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하루 종일 화장실을 두 번 간 적도 있다.
일하느라고.
그저 일만 재밌게 할 수 있으면 되는 사람이다.
필요한 언쟁과 비판은 얼마든지 수용하고,
개선하여 최고의 합의점을 찾는 걸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올해 초부터
출근길에 차 안에서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도, 나의 부족한 그릇과,
나의 부족한 능력을 탓하며
다독이고 마음을 잡길 여러 번 반복,
정신이 점점 피폐해지기 시작했다.
사무실 사람들은
여러 프로젝트를 한 번에 진행하다 보니 일이 많고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정말 많아서
늘 허덕이는 나를 보고
'예민하다'면서 비난하기도 했다.
그들은 정말 일이 없었다. 내가 일하고 있을 때, 오전 오후 2시간씩 티타임을 하며
일하느라 정신없는 나를 삭막하다고 했다.
그뿐인가, 윗 직급 들은 주말에 회사에 불러놓고 몇 시간 동안 연락이 없다가 돌연 취소를 하는 일도 여러 번,
내 파트가 아닌 부분에서 터진 일에 나에게 책임을 물며 짜증을 내곤 했다.
그런데 그런 것보다 더 힘든 건, 윗분의 나의 신변 비난이었다.
차라리 일을 못해서 지적을 당하면 고치기라도 하지...
제발 일만 하자...
은근히 단순한 구석이 있어서, 그냥 일만 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지금도 소처럼 일만 했을 텐데
그런데 그 사람들보다 더 못 된 건
그들이 내게 성희롱 발언을 하고 가스 라이팅을 하는 중에도
그 사실을 하나 알아차리지 못하고, 되려 스스로를 탓한 나 자신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집에 와서
엄마에게 말하면 엄마는 말했다.
네가 그럴만하니까 그러겠지.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가, 그럴만했어도 그렇게 말하지 말지.
이제 그 알고리즘을 깨부수어야 할 때가 왔다.
주변 많은 기술사님들께서는 내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부터,
'왜 여기서 이러고 계세요...'라며 매우 안타까워했었다.
아마, 기술사 씩이나 돼서, 아르바이트생이 할 법한 일까지 혼자 다 하고,
급에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있으니 그러셨을 거라는 건 대충 짐작한다.
하지만 나에겐 모두 일이었기에, 괜찮았다.
며칠 전에도 기술사님들께서 괜찮냐고 하시길래
'인격 수양하는거죠!' 하면서 웃어보이는 나에게
'대체 인격수양을 어디까지 해야 하는 거냐'라고 내게 물으셨다.
그때도 몰랐다.
지인이 너 지금 가스 라이팅 당하고 있어!라고 했을 때도, 정말일까 했지
이토록 확실하게 이상한 건 줄 몰랐다.
진심으로 나는 내게 너무 했다.
미안하다.
마흔-1,000일에 썼던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글은 아마
눈치는 못 채도 이상하다는 걸 알고, 피폐해진 정신 상태에서
살고자 쓴 글인 것 같다.
나는 잘해왔다. 존중 받지 못할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