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식 5일 차
단식 5일 차 아침, 컨디션은 괜찮았다. 평소 단식 때라면, 몸을 살피고 보식 계획을 세우며 보냈을 텐데 여의도 탄핵집회에 다녀왔다. 집회시간 때에 먹여야 할 것을 미리 먹어두고, 화장실을 가지 않기 위해 출발하면서부터는 물을 마시지 않았다. 산야초를 가져가 입을 축였고, 저녁시간에 먹기 위해 미음에 죽염을 타서 싸갔다.
탄핵집회를 또 하게 되다니. 박근혜 탄핵 때는 둘째가 유모차에 누워있을 때라 광화문 집회에 갈 때는 숙소를 잡았었다. 어린이집 부모들과 공유해 함께 시위에 왔던 아이들이 쉬고 갔었다. 다시 겨울에 탄핵 시위라니. 체지방이 많이 줄어 추위에 더 취약한 상태라 핫팩과 동계 등산용품들로 방한을 단단히 했다.
단식할 땐 주로 내 습관을 돌아보고, 살고 싶은 삶을 그려보며 보냈다. 산책하며 내 안에서 나오는 소리들에 귀를 기울인다. 마이너스 방향으로 가는 습관들을 끊고, 살도 빠지고 건강해져 단식을 정기적으로 하지만, 일상을 잠시 멈추고 나에게 집중하며 보내는 시간이 좋은 것도 단식을 꾸준히 하는 이유다. 그러나 이번 단식은 나라의 앞날에 대해 생각하고, 법치주의와 민주주의가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단식이 되어버렸다. 유튜브로 계엄이 선포되고, 국회에서 해제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며 손에 땀을 쥔 순간부터 내 일상이 모두 바뀌어 버렸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남편과 둘째 딸과 함께 출발해서 여의도 입구의 이마트에 주차했다. 집회에서 만나기로 한 둘째 친구네는 신길에서 지하철을 갈아타고 있는데 줄이 너무 길다고 연락이 왔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 국회로 걸어가는 행렬이 길을 가득 메웠다. 신호등을 건너 국회 방향으로 가는 대열에 합류했다. 에메랄드 녹색의 동그란 국회의사당지붕이 보였다. 지나가던 젊은 여성이 아이에게 보라색 포장지에 든 핫팩을 주었다.
3시 넘어서 도착했더니 여의도공원까지 사람들로 가득 차서 더 들어갈 수가 없었다. 마이크를 든 진행요원들이 제 자리에 앉거나 돌아나가야 한다고 알려주며 다녔다. 자리를 잡고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탄핵표결에 들어갔다. 각자 핸드폰화면을 보며 숨죽여 결과를 기다렸다. 그 와중에 둘째가 친구를 찾고 싶다고 해서 정신이 없었다. 드디어 탄핵이 가결되었다는 소식에 환호성을 질렀다. 가결 표 204. 역사의 방향을 조금씩 조금씩 시민들이 밀고 가고 있다고 느껴졌다. 이번엔 우리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윤석렬을 체포하라"는 구호들이 광장에 울려 퍼졌다. 통화연결이 되지 않아 문자로만 서로 위치를 알려주다 드디어 딸아이 친구네 집과 만났다. 아이들을 번쩍 들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왔는지 보여주었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만큼 왜 왔는지도 알려줬는데 친구 만난 게 그저 좋다. 사람들이 좀 빠질 때까지 저녁을 먹기로 했다. 혼잡한 중앙도로를 피해 주변길에서 식당을 찾았더니 금세 꽉 차고 줄이 길다. 기다렸다 겨우 저녁을 먹었다. 사람들로 가득했던 길에 차들이 다시 다니고 있다. 아이들과 국회의사당 앞까지 걸었다. 학부모들이 선결제해 놓은 카페가 있어 차도 한잔 마시고 돌아왔다.
돌아오며 보니 저녁 먹는 시간에 미음 꺼내 먹는 것을 잊은 게 생각났다. 다른 이들이 돈가스와 면을 먹는 동안 먹을 게 없다는 생각에 물만 마셨다. 집에 오니 허기가 많이 지고 몸도 피곤했다. 보식준비를 좀 해 놓고 자야 했지만 밀린 것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 쉬었다. 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