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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아, 너 나랑 오늘 같이 갈 수 있어?

열 살의 일상

by 안녕나무

엄마, 오늘 준비가 너무 빨리 끝났어


(라엘이랑 같이 커플옷, 커플 양갈래 머리를 하기로 해서 평소보다 삼십 분 빨리 일어났다)


제인아, 너 나랑 오늘 같이 갈 수 있어?

(학교 바로 옆 동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너는 오늘 몇 시에 일어났어?

나 지금 나갈 건데 삼십 분이 되면 내려와


엄마 오늘은 가방이 가벼워

채색도구가 뭐야? 색연필 같은 거야?

준비물이 다 학교에 있으니까 가방이 가볍나 봐


아리아- 오늘 날씨 알려줘

리모컨에 마이크 버튼 누르고 말하면 잘 듣더라


“오늘 여기 동의 날씨는 최고기온은 23도 최저 기온 13도로 아침엔 어제보다 낮고 낮 기온은 어제보다 따뜻할 거예요. 자외선 차단제 바르는 거 잊지 마세요.”


엄마 나 이따가 오면 아이스크림 먹는 거 잊지 마

(밤 열 시 넘어서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고 와서 물어보길래 내 대답은 다음날 학교 갔다 와서 먹는 것을 추천한다고 의견을 말했다. 매우 아쉬워하다 그러겠다고 했다)


나 오늘은 일찍 갈 거라서 혼자갈래

엄마는 따라오지 마


잘 다녀와

이따 봐


친구와 아침에 만날 약속 잡는 게 큰 일이고 새로 친해진 친구와 커플티에 커플머리까지 하기로 한건 더더 엄청 큰일인 나이. 아이스크림 먹어도 되냐고 물어보는 나이. 학교 갔다 와서 할 일을 엄마에게 말해놓고 싶은 나이.


머리를 혼자 묶을 수 있고, 아직 정리 못한 물려받은 옷 더미에서 자기에게 맞는 옷을 찾아 입을 줄 알지만, 채색은 뭔지 확실히 모르는 나이.


그때가 열 살이구나.


나의 열 살은 어땠지? 학교 생활이 익숙해 세상을 좀 알겠다 싶은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다. 선생님도 좋은 분이셔서 든든했다. 선생님의 시원한 입매와 눈매가 떠오른다.


너네 집은 작지? 가난하지? 같은 판단이나 편견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순간들도 떠오른다. 잘 사는 게 좋은 거, 작은 집에 사는 건 부끄러운 거라는 생각을 부모님이 하셨던 것 같다. 그런 말로 내가 선 자리가 오그라드는 느낌이 들 때마다 ‘나 사는데 불편함이 없는데’라는 속말을 하곤 했었다.


외갓집에 갔다가 초저녁에 집 앞에 나와있었다. 옆 집 은 사과를 키워 과수원집이라 불었는데 그 집 아들 둘이 나와있었다. 자주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서 그 오빠들은 도시에 나가 살다 고향집에 온 것일 테다.


무슨 얘기 끝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느 동네 사느냐고 묻더니 ”너네 동네는 가난하지? 너네 집은 작디?”라고 하더니 기분 나쁜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아닌데, 우리 부모님도 그렇게 말하던데 그게 다가 아닌데라는 생각만 맴돌고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서있었다.


엄마의 잘 사는 것에 대한 압박은 고향에서 오는 것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외갓집까지 걸어가는 길에 정자나무가 한 그루 있다. 큰 그늘을 만들어 주어 동네잔치도 그 아래서 열리고, 평소에는 일없는 동네 분들이 그늘아래 모여 앉아 있었다. 버스에서 누가 내릴 때마다 누구네 누가 어디 갔다 오는지 알았다. 특히 외지로 시집간 자식들이 돌아올 때는 자가용을 타고 오는지 버스 타고 오는지가 관심거리였다.


집안의 유망주(?)였던 엄마가 아이 셋을 데리고 버스를 내려 그리웠던 친정에 오는데 정자나무 앞을 지나기가 그렇게 싫었다고 했다. 옆 집 오빠의 너 어느 동네 살지? 거기 가난한 동네인데 라는 말은 아마도 엄마가 그렇게도 듣기 싫어했던 정자나무 아래서 수군거리던 말이었을 것이다.


열 살은 그런 편견과 수군거리는 말들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나이다. 엄마가 속상해하면 속절없이 같이 속상해지는 나이다. 나의 열 살은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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