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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를 졸업하는 중입니다.

by 안녕나무

큰 아이 중학교 때문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동네로 이사 온 지 삼 년이 다 되어간다. 어떻게 적응할까 싶었는데 일주일이 꽉 찬 날들을 보냈다. 삼 년 전, 이사를 앞두고 불안해하던 나에게 이사 와서 어떻게 지냈는지 말해준다면 믿지 않을 것 같다. 주 4일 운동을 하게 된다고? 배드민턴과 테니스를 3년을 친다고? 그 나이에 새로운 친구가 그렇게 많이 생겼다고? 뭐? 코치가 되었다고? 다시 법문을 들어? 색수상행식이 뭐라고?


운동 신경이 없고, 사람과 친해지는데 오래 걸리고, 뭐가 다시 되기엔 아이들이 더 커야 하고 준비에 준비를 해야 한다고 여기던 예전의 나에게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상을 살고 있다. 새로운 곳이 나를 자극했고, 아이들 적응시킨다며 좌충우돌하다가 껍질을 깨고 한 걸음 나온 기분이다.


대안학교 학부모들과 일주일을 빼곡히 채워있던 일정들이 아이 졸업을 앞두고 하나둘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중학교의 대부분 친구들은 같은 고등학교로 진학했는데 우리 아이는 집 근처의 고등학교 진학을 선택했다. 학부모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무도 나를 소외시키지 않지만 소외감을 느끼는 일이 종종 생기기 시작했다. 갈림길에 서서 헤어지는 중이라고 여겨졌다.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엔 다시 공통의 관심사로 이어지겠지. 삶의 주기의 어디쯤 가고 있는 줄 아니 소외감에 빠지지 않을 수 있어 좋다. 나이 들어 좋은 점이다.


어느 날 문득 아침에 아이를 차로 데려다주는 것도 곧 끝이구나 싶었다. 열여섯, 열 살과 보내는 하루하루가 새롭게 보였다. 이 일상이 곧 끝난다니까. 지금 내가 일상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들이 찬찬히 봐졌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들이 생각보다 짧아져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면 더 짧아질 텐데. 그리고 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아들은 아침에 일어나 15분 정도 준비하고 차에 탄다. 5분에서 아침에 샤워를 하면서 15분으로 길어졌다. 차에 타선 주로 잠이 든다. 도착해 깨우면 일어나 인사 없이 내려 학교에 간다. 그 똑같아 보이는 아침이 한순간씩 길게 눈으로 귀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아들 방에서 핸드폰 알림이 두 번 울렸고, 곧이어 요란한 자명종 시계도 울렸다. 그리고도 씻는 소리가 나지 않으면 나는 아들 방을 노크를 하고 열어본다. 아들은 금방 일어나려고 했다는 듯이 몸을 살짝 세우고 눈을 마주친다. 샤워하고 나가려면 지금은 일어나야 한다고 알려주면 너무 졸려하면서도 잘 일어난다. 당연하다고 여겼는데 오늘 보니 신기한 일이다. 늦게 잔 아이가 짜증 내지 않고 일어난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큰 아이와 나가기 전에 둘째 준비를 어느 정도 시키려고 서둘렀다. 딸이 일어나는 기척을 확인하고 거실에 잠 깨며 볼 영상을 틀어놨다. 딸이 옷 갈아입는 것까지 보고 큰 아이와 집에서 나왔다. 이렇게 시간을 맞추느라 나는 종종걸음 쳐 댄다. 둘째는 시간 맞춰 집에서 나갈 줄 알고, 친구를 만나 학교에 도착하면 알림이 온다. 둘째는 돌아보면 어느새 커 있다.


오늘 차에서 먹는 아침은 없다. 어제 밤늦게 독서실을 다녀오던 아들이 배가 고프다면서 햄버거를 5개를 사 왔고 그중 4개를 먹었다. 쌓여있는 햄버거 빈 박스들을 쌓아놓고 사진을 찍었다. 내가 살면서 할 살림 규모의 최대치는 요즘일 거라 생각한다.


차에 탄 아들은 무선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기 시작한다. 소리가 이어폰 밖으로 흘러나왔다. 아들에게 말을 걸면 "어?" "어?" 하며 몸을 일으킨다. 그 자세가 꽤나 불편해 보여 지금 시간에 꼭 물어봐야 할 건지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대부분 아들은 음악 듣다 자고, 나는 즐겨 듣는 유튜브 시사채널을 들으며 간다. 지각하지 않을 지름길로 들어서면 어느새 아들 잠든 숨소리가 들린다.


마지막 신호등 앞에서 아이의 무릎을 가만히 흔들어 깨운다. 아들은 잠이 그득한 눈으로 뒷자리에 둔 가방을 챙긴다. 차에서 내리며 학교 끝나는 시간을 얘기해 주고 간다. 학교 가는 모습을 찍었다. 많이 컸다.


요새 대수롭지 않은 말들도 지금 이 시기의 아이들과만 나누는 특별한 말인 게 새삼 느껴진다.


중3의 졸업 한 달 남짓 남은 날 아침의 풍경의

대화는 이렇다.


"일어나야지"

"아직도 안 일어났어?"

"식탁 위에 먹을 거 있다"

"차에 먼저 가 있을게"

......

"다 왔어"

“엄마, 나 교과 위 회의 있어서 일곱 시 반에 데리러 와줘 “


아기를 내 무릎 위에 마주 앉혀 혼자 얘기하던 때도 있었고, 같이 손잡고 걸어가며 끊임없이 얘기하던 시절도 있었다. 눈 내린 땅에 공룡발자국을 찍으며 가겠다고 코 앞의 거리를 이십 분이 걸려 갈 때부터 내 위치가 아이 뒤가 되었던 것 같다. 친구들을 데려와 놀던 초등학교 시절엔 좀 더 떨어져 지켜보는 곳이 내 자리였다. 이제는 하루 중 잠깐의 시간을 스쳐 지나가고 있다. 청소년기 아들과 그런 시기를 지나고 있다.


하루 종일 각자 지내다 저녁에 만나하는 대화는

"밥은 언제 돼?" 정도다.

“일찍 자라" 한마디 정도 더 있을 수 있겠다.


아들과 필요한 얘기는 시공간이 맞을 때 한꺼번에 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에는 고등학교 선택하는 문제로 크게 갈등하기도 하고, 정보를 나누기도 하고, 같이 입학설명회를 가보기도 했다. 그리고는 다시 말 없는 일상이다.


왜 이렇게 대화가 없나 보면 대부분의 일상은 행동의 합이 맞춰져 있어 서로 말없이 흘러가고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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