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초보, 아이도 처음

- 아들 중학교 졸업식은 처음입니다.

by 안녕나무


아들 중학교 졸업식에 친정어머니를 초대했다. 아들이 어릴 때 도움을 많이 주셨던 터라, 특별히 함께하고 싶었다. 학교는 산 중턱에 있고 졸업식은 이른 시간이라, 전날 집에 오셔서 하루 주무시고 아침에 같이 출발했다.

졸업식 전날, 아들은 졸업식이 끝나고 친구들과 놀러 가는데 자기 가방을 학원에 가져다 달라며 나와 실랑이를 벌였다. 졸업식이 끝나면 남편이 차를 써야 해서, 나는 친정어머니와 딸과 식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거기에 가방까지 학원에 가져다 달라니 난감했다. 아들은 “내가 알아서 할게”라며 무뚝뚝하게 말하고는 화가 난 얼굴로 가버렸다.

뒤늦게 아차 싶었다. 졸업식 날, 친구들과 진로가 달라 학원에 간다는 사실을 밝히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졸업식이 끝난 뒤 아들은 책가방을 들고 친구들과 놀러 갔고, 나는 친정어머니와 딸과 식사하러 갔다. 남편은 지하철로 회의에 가게 되어 차는 내가 쓰게 되었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딸이 다이소에 먼저 들리면 안 되냐고 물었다. 딸이 말한 다이소는 주차가 어려운 곳이라 식당 근처로 가자고 했더니 싫다고 했다. 오랜만에 친정어머니가 오셨는데 아이들이 제각각인 모습이 유난히 신경 쓰였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뒷자리에서 딸이 “외할머니 오늘도 자고 가셔?”라고 묻는 말투마저, 안 잤으면 좋겠다는 뉘앙스로 들려 마음이 불편해졌다. 어머니를 오시라고 한 건 나였는데, 상황은 자꾸 나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글을 쓰다 보니 알아진다. 친정어머니를 초대한 게 나였으니 나는 어머니를 중심에 두고 상황을 보느라 더 불편해졌던 거였다. 다들 제각각인 게 당연한데 말이다.

스타필드에 들어가니 다이소 옆에 식당이 있었다. 딸도 만족했고 걸음이 불편한 어머니도 이런 곳이 있냐며 좋아하셨다. 혼자 다이소에 가보고 싶다는 딸을 들여보내고, 식당에 대기를 걸었다. 딸 쇼핑시간과 대기시간이 얼추 맞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어머니와 커피숍에 앉았다.

전날 밤 아들과 있었던 일을 털어놓으며 어렵다고 하소연했더니 어머니가 말했다.
“너도 초보 엄마고, 얘도 열일곱 살이 처음이잖니.”

그 말을 듣는 순간, 시끄럽던 속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그렇지. 나는 자식의 중학교 졸업식이 처음이고, 아들은 중학교 졸업이 처음이다. 오늘을 매끄럽게 잘 보내는 게 애초에 가능한 일이었을까. 그러고 보니 내가 사는 매일매일이 다 처음처럼 보였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대안학교에서 다니던 아들이 일반학교로 진로를 정하면서,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엄마가 알아봤어야 한다”, “다들 미리 선행을 해놔서 앞서가 있다”였다. 말로만 듣던 엄마의 정보력이 내 삶 속으로 들어왔고, 나는 꽤 위축되었다. 어제까지 우리는 하나하나 빛나는 별이라고 얘기하며 지냈는데, 오늘은 갑자기 부족하고 뒤처진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 문득 ‘흥’ 하고 콧방귀가 나왔다. 이제껏 그래왔듯, 내 길은 내가 만들어 가는 거다. 아이는 아이대로 자기 삶의 길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무엇이 만들어질지 모르기에, 그래서 만들어가는 과정인 오늘이 귀하고 궁금한 것이다. 그런데 뭐가 그렇게 늦었다는 걸까. 우리는 정말 같은 경주를 하고 있는 걸까.

내가 미리 학원을 알아보지 않아서 아이가 성적이 좋지 못하고 그래서 원하는 대학에 못 가게 될 거라는 생각으로 한 없이 땅을 파고 들어가다가 오랜만에 고개가 들렸다. 어깨도 활짝 펴졌다. 그리고 다시, 매일이 처음인 내 인생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 바로 다음에 무엇이 올지 기다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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