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했다. 신입 학부모 교육에서 백두대간 동아리를 소개받았다. 예전에 아들과 한번 가볼까 했던 곳이라 관심이 갔다. 어떻게 가는지 알아봤는데 도무지 그려지지 않아 한편에 밀어놨던 곳이다. 몇 년에 걸쳐 완주했다는 책도 있고, 구간 별 블로그 후기도 많았지만 지리산 2박 3일 종주를 해본 나는 산티아고 길이나 국토대장정처럼 한 번에 쭉 걷고 오는 것만 가능하다 여겨졌다. 아마도 갈 때마다 아들을 설득할 자신이 없어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동아리 소개시간에 나눠준 지도에는 지리산에 1이라 표시된 숫자가 설악산 진부령까지 이어져 48까지 쓰여있다. 앞으로 2주에 한 번씩 토요일마다 다녀와 2년 동안 완주 한다고 했다. 이번 신입생이 19기라고 했다. 동아리의 가장 큰 장점으로 산에 함께 다니는 자녀들은 부모와 사이가 좋다는 걸 꼽으며 사춘기 딸과 볼을 대고 찍은 아빠들의 사진이 화면에 흘러간다. 사람 뒤에 배경이 눈 닿는 데까지 이어지는 끝없는 산들, 하얗게 뒤덮인 설산이 나온다. 아이와 다녀본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왠지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더 이상 산에 가고 싶지 않다고 한 아들만 설득할 수 있다면!
아들 중학교 입학에 맞춰 이사를 했다. 이사 날짜가 2월 말로 정해져 이사하고 이틀 만에 중학교 입학식과 초등학교 입학식을 치르고 다음날부터 두 아이가 등교를 시작했다. 오래된 가전제품들을 버리고 와서 새 집에 는 아직 세탁기와 냉장고도 없는 채 살림을 시작했다. 크기가 안 맞을 수 있어 살면서 하나씩 장만하자 했더니 고르고 배달 오는 동안 빨래방으로 마트로 다녀야 했다. 뒤죽박죽 꽂힌 책들과 수납장 크기가 달라져 여기저기 처박혀 있는 옷들도 주말에 시간 내서 정리하기로 했다. 이 와중에 첫 산행은 입학 다음 주 토요일로 정해졌다. 이삿짐에서 등산배낭을 뽑아 짐을 꾸렸다. 아들에게 함께 가자 권하니 단칼에 거절했다. 첫 백두대간 등산이 하루하루 다가왔다. 아들 하교 시간에 맞춰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에서 산비탈 길을 내려온 아들은 차에 타면서 방금 헤어진 친구 셋이 모두 백두에 간다고 했다. 오늘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 대부분이 백두에 간다고 했다며 "쟤네들이 열 시간 걷는 게 뭔지 알고 간다고 하는 걸까?"라고 했다. 나와 둘이 아들이 열 살 때 한라산 정상까지 다녀왔었는데 열 시간이 걸렸었다. 중간 대피소 통과 제한시간을 몰라 중간에 내려오고, 너무 일찍 출발해 새벽 찬 바람 때문에 다시 돌아왔다 3번의 도전만에 성공했던 산행이었다. 결국 아들도 같이 산행을 신청해 남편과 나, 아들 셋이 가기로 했다. 딸은 이사 온 후에 그리워하고 있는 이전 동네 친구집에서 하루 지내기로 했다.
백두대간 동아리 밴드에 새벽 3시 반에 모이라는 공지에 눈을 의심했다. 중학교라 이렇게도 갈 수 있구나 감탄했다. 신청자명단을 보니 함께 오는 동생들도 꽤 있었는데 괜찮을까? 초등학교 1학년인 딸을 같이 신청하지 않은 건 잘한 일 같았다. 집합지는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었다. 주말에 문 닫는 물류센터 주변으로 차를 세워두고 다녀올 수 있었다. 버스에 타니 명찰을 나눠줬다. 124명 참가자를 버스 3대에 나눠 태우고 세 시간 반을 달려 아침 7시, 들머리인 고기리에 도착했다. 오늘 갈 구간은 백두대간 4코스로 지리산자락의 고기리에서 시작해 권포리까지다. 총길이 15.5km인 구간이다. 이 게 긴지, 짧은지, 백두대간 길이 어떤 건지 감이 전혀 없다. 학교 동아리 행사로 알고 가족이 함께 참가한 집들이 많아 보였다. 등산 15km가 뭔지 모르고 참가한 집들이 많아 보였다. 버스에 내려 보니 아들은 큰맘 먹고 사준 등산화 대신 학교 갈 때 신고 다니는 운동화를 신고 있다. 3월이라 아직 날이 찬데도 얇은 경량패딩하나 걸치고 온 아들은 백 명이 넘는 참가자들 중에 자기 반 친구를 찾아 사라졌다. 길 한편에 상을 차리고 시산제를 지냈다. 새로운 기수의 안전산행을 기원했다. 참가자들이 한눈에 들어오자 시산제를 진행하는 이들은 선배기수들로 보였다. 선배들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부유하는 신입생들과 달리 잘 섞여 들고 잘 뭉쳤다. 시산제를 마치고는 동그랗게 서서 체조를 했다. 누군가 구령을 크게 하며 움직이면 동작을 보고 따라 했다. 그리고는 플래카드를 들고 단체사진을 찍었다. 전체 사진을 찍고, 19기 단체 사진을 찍고, 그다음에 17기 단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앞사람을 따라 줄줄이 출발했다.
일반 산행이 산을 정해서 정상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이라면 백두대간은 봉우리를 3,4개 정도 넘어가는 갔다. 그것을 한 구간으로 쳤다.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물길로 끊기지 않고 이어진 산줄기를 백두대간이라고 했다. 종주는 시작하면 끝까지 가는 것이라 여겼는데 산길 주변에 식당도, 편의점도 없다. 작은 마을을 하나 지났는데 백두대간을 통과하는 유일한 마을이라는 팻말이 있었다. 물과 식량을 보급이 어려워 한번에 종주하는 건 어렵겠다. 오늘 한 코스 가는 것도 숨이 꼴딱 꼴딱 넘어갔다. 산이 하나를 넘는 게 아니니 얼마큼 갔는지, 얼마나 남았는지 감을 잡기 힘들었다. 첫 고개를 넘어 다시 두 번째 고개를 오르는 좁은 길에서였다. 길 한편에 비켜서 있는 가족이 보였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신입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서로 말이 없이 얼굴이 허옇게 되어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아들 말대로 열 시간 산행이 뭔지 모르고 온 사람들이었다. 오늘이 마지막 산행일 터였다. 힘들게 오르막을 올라가니 등산스틱으로 터널을 만들어 환영해 준다. 스틱을 부딪혀 내는 소리가 경쾌하다. 선배들이 첫 산행에서 해주는 산에서의 이벤트였다. 터널을 통과하면 가방에 백두대간 종주 중임을 알리는 노란 리본을 하나씩 매주었다. 어른과 청소년이 섞여 리본을 달아주고 스틱을 두드리며 반겨주었다. 한결 가벼워진 걸음으로 내려가니 지나가는 마을에 들러 준비된 점심을 먹었다. 커다란 가마솥에 육개장이 끓고 있었다. 방이나 툇마루 마당에 깔린 파란 돗자리에 밥과 국을 가져가 먹으면 되었다. 가방을 던져놓고 파란 돗자리에 자리 잡고 점심을 먹었다. 점심까지 싸왔으면 등산이 더 힘들었을 거라며 남편과 쉬었다. 아들은 친구들과 한 상에 둘러앉아 먹고 있다. 아무리 오늘 등산이 힘들다 해도, 아들을 혼자 데리고 산에 다니며 새벽에 운전해서 가고, 식당 알아보고, 숙소 알아보고 내려와 다시 운전해서 돌아와야 했던 시절에 비하면 이게 웬 떡인가 싶다. 게다가 산에 가자고 아들을 설득할 필요도 없고 달래 가며 갈 필요도 없는 산행이라니! 백두대간 만세다! 점심 먹고 다시 오르려니 힘들다. 오늘이 첫 산행인 반짝이던 배낭과 신발들은 점심 먹으며 여기저기 굴러 빛을 많이 잃었다. 내리막에 넓은 언덕이 나오자 다들 배낭에 머리와 등에 베고 누워 쉬었다. 팔다리를 쭉 펴고 쉬니 훨씬 나았다. 이사한 여파가 아직 가시질 않았는지 평소보다 더 힘들었다. 사람들과 인사하고 대화할 기운이 없어 한쪽에 조용히 자리 잡고 쉬며 컨디션을 회복했다. 아직 이렇게 긴 등산을 오기엔 내 체력이 따라주질 못했다.
아침 7시부터 여덟 시간이 걸려 오후 3시가 넘어서야 버스에 도착했다. 백두대간은 대간줄기의 일부를 걷는 터라 구간의 시작도 끝도 산 중간이다. 산행구간이 끝나도 버스를 타려면 차가 댈 수 있는 도로까지 더 걸어야 한다. 이 것을 구간 외 길이라고 불렀다. 날머리 도착했다고 좋아했는데 구간 외 아스팔트 길이 남아있었다. 딱딱한 길을 걸으려니 발이 아팠다. 걷고 걷고 또 걸으니 마을회관이 나왔다. 근처에 버스도 보였다. 드디어 오늘의 등산이 끝났다. 앞마당에 운동기구들이 놓여있는 마을회관으로 식사차를 불러 마당에 밥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미 도착해 있던 중학교 신입생들은 버스에 맨 뒷자리에 모여 아이엠그라운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아들도 그 틈에 껴있다. 아이가 중학교에 가면 생활하는 모습을 잘 못 볼 거라 여겼는데 여전히 친구들과 노는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니. 초등학생 동생들은 등산하고도 힘이 남았는지 운동기구에 올라가 자전거 페달을 밟거나 빙글 돌아가는 판에 올라서 허리를 돌려대고 있다. 회관 주변의 턱마다 어른들이 앉아 쉬고 있다. 앉아 있는 어른들과 배낭들 사이로 초록색 잠바를 입고 까만 긴 머리의 아이가 뛰어다닌다. 우리 딸과 같은 1학년이라고 했다. 너도 이 길을 다 걸어왔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우와, 1학년도 할 수 있구나! 단단히 세워져 있던 기준 하나가 허물어진다. 뒤 쳐 저 걸었던 사람들이 계속 내려온다. 두 다리로 걷는 게 아니고 다리를 한쪽씩 들어 올리며 한 발 한 발 어렵게 어렵게 도착하는 사람들을 박수로 맞이해 주었다. 밥 먹고 한숨 돌리니 날이 어둑해졌다. 이번달 생일자들을 불러낸다. 초코파이를 쌓아 케이크를 만들고 초를 켰다. 앞에 나온 생일자들에겐 작은 고깔도 하나씩 씌워줬다. 아들은 새 학기에 만난 친구들과 조금 더 친해진 모습이다. 나는 한 마디 더 할 기운이 없어 오늘 새로 사귄 사람은 없다. 그래도 15km를 등산한다는 게 뭔지 알게 된 사람들이 함께 박수를 치며 이번달 생일을 축하했다. 백두대간 첫 산행도 함께 축하했다. 백두대간 720km 중 15km를 걸었으니 이제 705km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