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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나무 Oct 17. 2023

글을 쓰고 싶었던 이유

- Dec 28. 2021

옆집에 오랜만에 인기척이 난다. 아침에 큰 아이는 차로 10분 거리의 학교에 내려주고, 둘째는 집에서 5분 걸어가는 곳에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나갈 때 1층 현관 유리문 안에 쌓여있던 짐들이 돌아오며 보니 옆집 어른의 아이보리색 모닝에 실려 있다. 작은 차의 뒷자리가 천장까지 상자로 가득했다.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보니 옆집 어른이다. 내려가 계신 학교에 닭들이 낳았다며 계란 10구와 책 두 권을 주신다. 

“오랜만에 오셨죠?”

“세 달 만에 왔어.”

“방학에나 와 계시겠어요?”

“아니야. 다음 주에 일이 있어 한번 더 와야 해. 방학이 되어도 아이들만 쉬지 동물들은 안 쉬잖아. 저이가 키우는 닭이 백 마리가 넘거든” 

오랜만에 오가는 이웃집 소식에 전하는 이도, 나도 생기가 돈다. 


새벽에 글로 만나는 옆집 분들의 삶 

현관에서 인사를 마치고 보니 옆집 어른의 두 손에 든 짐 말고도 계단에 짐이 더 있다. 번쩍 집어 들고 뒤 따라 한층 아래 현관까지 내려갔다. 

“거긴 신문도 귀하거든”

내가 든 신문더미에 설명을 얹으신다. 나머지 짐을 차 틈에 끼워 넣으며 두 분이 지내고 계신 순천 학교에 한번 놀러 오라신다. 학교 이름을 말해주는데 좀 전에 받은 얇은 책자에 표지 제목과 비슷하다. 집에 와 자세히 보니 ‘이 천년을 멋짓는 사랑 어린 마을공화국’이라 쓰여있는 얇은 소책자 한 권과 '풍경소리'라는 계간지다. 


이 집에 이사 온 지 5년이 넘었는데 책 속에 담긴 글을 통해 처음으로 옆 집 사는 분들의 삶과 만난다. 글이란 그런 거라고 새삼 알게 된다. 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나 글은 남아 그 사람을, 상황을 선명히 담아 전한다.  2년 전 즈음으로 기억한다. 산 밑인 우리 동네엔 겨울이 빨리 찾아온다. 옷을 껴입고 둘째와 동네 산책을 나가는데 빌라 1층 현관에 검은색 새끼 고양이가 찾아왔다. 눈곱이 끼었고 어미의 돌봄을 받지 못해 보였다. 허리춤이 꽤 말라있었다. 아이는 고양이가 왔다며 좋아했다.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었다. 어느 날부터 옆집 할아버지가 현관에 우유그릇을 두기 시작하셨다. 우리는 고양이가 우유 먹는 걸 지켜보다 그 곁에 고양이 간식을 두었다. 고양이는 할아버지를 만나면 할아버지 다리에 몸을 비벼왔다. 할아버지가 우리 보고 고양이를 키우라고 권하셨는데 큰 아이가 고양이털 알러지가 있었다. 큰 아이가 동네 등산복가게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예쁘다고 만지고 왔다가 그날 눈에 흰자가 흘러내려 응급실에 다녀왔었다. 사정을 말씀드리고 저희는 못 키운다고 하니 비벼오는 작은 고양이를 향해 “아이코 정들어 어쩌나” 하며 난처 해하셨다. 그 이후로 고양이가 한 참을 안 보여 궁금해했는데 할아버지 팔에 안겨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봤다. 얼마나 잘 키우셨는지 까만 털에 윤이 반들반들 나고 있었다. 목 아래만 흰털이 역삼각형 모양으로 나 있는 게 턱 시도를 입은 듯 늠름해 보였다. 외출했다 돌아와 옆집 베란다 창을 올려다보면 늠름하게 자란 청년고양이 한 마리가 유리창 안 창턱에 앉아 밖을 내려보고 있기도 했다. "풍경소리" 계간지에서 흰 옷에 턱시도를 한 듯한 고양이라는 묘사에 옆집에서 거두어 기르던 고양이라는 걸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처음 이사와 인사차 가서 언제 차 마시러 오라는 모습 뒤로 우리 집과 어떻게 다른가 하고 넘겨다 본 것이 옆집 분들에 대해  아는 것의 다이다. 책 안에는 그분들의 현관 안쪽의 삶의 담겨 있었다. 글 속에서 옆집 할아버지는 올해 팔순을 맞아 여러 사람의 축하를 받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매일 아침 시골 폐교를 가꿔 만든 대안학교의 닭사를 돌며 계란 스무 개씩을 도서관으로 올리고 오늘 주운 알의 개수, 닭과 병아리의 수를 기록하며 살고 계셨다. 그분 계서 직접 쓰신 글과 그 모습은 지켜보고 쓴 아이의 글을 읽으며 그곳의 아침 풍경이 그려졌다. 병약해 보였던 까만 새끼 고양이는 ‘우동이’라 불리며 최근 구조된 ‘율이’라는 고양이와 짝꿍이 되어 함께 다니고 있었다. 나에게 책과 계란을 건내주신 아내분이 결혼 50주년을 맞아 쓴 시도 소개되었다. 결혼 50주년 시인데 결혼 생활에 대한 얘기는 하나도 없고 얼마나 나를 더 사랑하며 살지에 대한 얘기로 가득하다. 활력 넘치고 젊게 느껴지는 에너지가 자기를 사랑하는 힘에서 나오나 싶었다. 책을 통해 부인이 남편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며 살고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이 이가 얼마나 재미있는 사람인지 사람들은 모를걸’이라는 대목에서 나와 인사할 때 만난 할아버지의 부끄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닭을 가만히 보는 것을 좋아한다는 7학년 경준이는 할아버지가 고양이에게 얼마나 잘해 주셨으면 고양이가 장로님 뒤를 따라다닌다고 알려준다. 계간지에서 두 분이 쓴 글을 읽고, 소책자에서 아이들 눈에 비친 두 분을 본다. 좋은 강의를 꾸려 공동체 어른들을 모아 함께 듣고. 서로의 일상을 오가며 밥을 함께 먹는 웃들의 이야기들이 책에 가득하다. 아이들은 학교를 오가는 길에 학교 한편에 있는 두 분의 집에 들러 동물을 보고 인사를 한다. 5년간 이웃이었던 분들의 삶을 알게 되자 순천에 한번 가보고 이야기 나누고 싶어 진다. 글이란, 이야기란 이런 것이었지 책을 덮으며 새삼 느꼈다. 


새벽에 깨서 멍 했던 날들

잠 못 자는 날들이 이어질 때가 있었다. 정확히는 새벽에 깨면 다시 잠들지 못했다. 시계가 두 시 반 가리키는 날이 많았다. 잠이 완전히 달아나 책상 앞이나 식탁 앞에 앉아 있으면 생각들이 바삐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내 머릿속은 이렇게 분주한데 밖에서 보면 흔적도 없을 꺼라 여겨지면 허탈했다. 내 머릿속 생각들은 주로 내가 ‘안’하고 있는 것들을 끊임없이 들춰댔다. 비난이 뒤따랐다. 몸이 점점 굳어가다 보면 어느새 날이 밝고 아이들 깨울 시간이었다. 힘들게 엉덩이를 떼면 언제 일어났는데 아침밥도 안 해놓고 뭐 하고 있었냐는 속말이 올라왔다. 


상담을 하러 가서 잠 못 자는 걸 털어놨다. 새벽마다 글을 쓰지만 책으로는 잘 안 엮이는 이야기가 따라 나왔다. 책을 왜 쓰려하느냐는 질문을 반복해 마주하다 내가 쓰고 싶었던 거는 맞나 헷갈렸다. 독립출판 수업을 들으며 웹페이지에 올렸던 글들을 거칠게 한 권 엮어둔 것을 다시 펼쳤다. 댓글에 두 명 정도가 내 글을 읽고 이런 이야기를 모아 책으로 내면 좋겠다고 한 게 있었다. 이 말이 씨앗이 되어 언젠가 책을 엮어야지 했다면 다른 사람들 말에 새벽마다 잠 못 자고 이게 뭔가 싶었다. 전업주부로 아이들과 함께 보낸 시간을 잘 갈무리하고 다음 할 일을 찾자고 했던 게 나를 옭아매는 일이 되고 말았다. 새벽에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대신 잠을 푹 자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책 만들기를 건너뛰고 취업을 하기로 했다. "아이들과 더할 나위 없이 충만하게 보낸 시간들이었다"를 매듭짓지 못하고 다음 장으로 가려는데 경력 단절이라는 벽을 만났다. 직장을 그만둔 지 10년이 흘러 있었다. 세상이 바뀌어서 유튜브로 코딩공부를 할 수 있었다. 여전히 필요하겠지 싶어 영어공부 사이트도 알아봤다.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나면 해야 할 일이 보일 거라고 막연히 믿고 있었는데 일을 그만둔 딱 그 자리로 돌아가 있었다. 거기다가 그전에 일했던 분야에서 받아줄 지도 불투명했다. 내 시간이 생기길, 얼마나 고대했건만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삶은 흘러 흘러가는 것 

책을 써야 그다음 길이 보일 것 같았다. 책도 안 썼는데 새로운 시작을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뭔가 체계적으로 해나가고 싶은데 한 발도 나아가질 못했다. 둘째까지 키워 어린이집에 갔으니 가족들에게 내 시간을 배려받고 싶었다. 이젠 내 차례 같았다. 그러기엔 남편 일터의 매일이 빡빡했고 아이들이 여전히 어리다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돌봄과 살림이 온전히 내 몫으로 매일 돌아오는 것에 멀미가 났다. 


계간지 속 광고란에 17-19세 청소년들을 위한 1년 과정이 소개되어 있었다. 청소년에서 성인으로의 '전환기'교육이었다. 이 과정을 마치고 파주 타이포그래피에서 공부 중인 지훈이라는 친구의 글이 실려있었다. 글의 제목은 “흘러 흘러가는 지훈이”였다. 지훈이는 도시락을 싸서 다니고 있고, 새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근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풀기 어려운 문제와 만나면 순간순간 지금으로 돌아오는 연습을 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했다. 


여느 때처럼 잠들지 못한 새벽, 옆집 어른의 선물을 다 읽고 나니 지훈이의 “흘러 흘러간다”는 표현이 마음에 남았다.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고 여겼는데 흘러 흘러가고 있는 내 삶이 보였다. 나는 지금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도 흐르고 있었다. 흘러 흘러 어디로 가는 중일지는 모르겠으나 나도 지훈이처럼 순간순간 지금, 여기로 돌아올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매 순간순간에 충실하게 살다 보면 어딘가 도착할 것 같아지면서 마음 밑바닥이 차올라왔다. 

오늘처럼 내일 새벽도 글을 쓰고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오늘 새벽은 이대로 완벽히 좋았고 충만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성인이 되기 전에 17-19세 청소년들이 자기 다운 삶을 살기 위해 돕는 오디세이, 꿈틀리, 사랑어린 마을의 전환기 교육처럼 육아에 전념하다 다시 내 일을 찾으려는 나에게도 전환기 교육이 필요했다. 당장 무엇을 정하고 해내기 보다 삶이 무엇인지, 나는 어디쯤 와 있는지를 가늠할 시간이 우선 필요했다. 이 전환기를 잘 지나가 1년쯤 후엔 나도 지훈이처럼 나에게 맞는 곳으로 흘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도착한 의 풍경을 글로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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