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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나무 May 26. 2023

백두대간 대신 걸은 둘레길

- 아이를 업어주고, 안아주며 걸었던 북한산 둘레길 19구간 방학동길

#백두대간 5 산행을 안 갔다

5 산행은 경북 상주시 공성면에서 모서면에 걸쳐있는 17구간으로 정해졌다큰재에서 시작해 지기재에서 끝나는 길로 기존 산행보다 3km 늘어난  18.7km 걸을 예정이었다그러나 우리에겐 작년부터 약속된 일이 있었다인해가 졸업한 어린이집 1 2 들살이가 5차 산행 날짜와 겹쳤다선생님친구동생들을 모두 만날  있어 이사  인해가 손꼽아 기다리던 날이다인수만 산행에 참가할까 의논하다 새벽에 버스 타러 가는 것과 돌아와서 밤늦게 집으로 오는  때문에 결국 모두 안 가고 나중에 보충산행 하기로 했다

 

#옛날 동네에 가다

어린이집은 북한산 자락에 있다우리가   7년을 공사 중이었던 우이경전철역이 개통했는데 우이신설 경전철의 종점인 북한산우이역에서 가깝다어린이집은 144, 109, 120 버스의 종점 근처기도 하다인수가 어린이집에 다닐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경전철이 개통되기 전에 어린이집 앞으로 이사 왔다. 그래서 인해는 어린이집을 걸어 다녔다거실 창문에서 길 건너 등산복집 뒤로 어린이집 지붕 귀퉁이가 보이는 거리에 살았다우리 집은 북한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마지막 빌라였다빌라를 지나면 우리가   개장한 만남의 광장이 있고조금  올라가면 북한산국립공원 백운대 탐방 지원센터가 나온다북한산에서 내려오는 계곡이 빌라 텃밭에서 내려다 보였다여름에는  계곡이 아이들 물놀이장이 되었다어린이집에서 골목 하나 뒤로 북한산과 도봉산의 둘레를 이어 만든 북한산 둘레길 21코스  1코스 시작문이 있었다들살이 장소가 YMCA다락원캠프였다둘레길 18구간과 닿아 있었다

 

#백두대간은 못 가도 둘레길은 걷자.

먼저 살던 곳에서 시작해 둘레길로 들살이장소까지 걸어가기로 했다인해도 대수롭지 않게 “그래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뒤에는 둘레길 1코스가 시작하지만 전철역이 있는 4차로를 건너 2차로 언덕길 따라 올라가면 20구간 아치문이 나온다. “왕실묘역길인데 근처에 연산군 묘와 세종대왕의  정의공주 묘가 있어 붙인 이름일  같다정의공주  뒤편에 쌀국숫집 앞에서 시작하는 19구간부터 걷기로 했다방학동길로 불리는 3.1km 길이다 방학동길이 18구간 도봉옛길과 이어지고 17구간 끝에 다락원캠프가 있다. 18구간의 이름 “다락원길이다.  

 

새벽 두 시 반에 일어나 관광버스 타러   늦지 않았는데 가족끼리 준비는 한이 없다. 혼자 있을 아들까지 살펴주고 나니 하고 나니 7시에는 나가자 했는데 출발한 시간이 아침 9시  경이다늦었지만 그냥 가기 아쉬워   커피숍에서 커피도 한잔씩 사서 출발했다 시간을 넘게 차로 달려 정의공주 묘에 도착했는데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하룻밤 사이에  빼달라는 전화가 오면 곤란했기에 남편만 먼저 살던 빌라에 주차하고 버스로  정거장을 돌아오기로 했다인해와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기다렸다남편에게 버스에서 내렸다는 전화가 왔다큰길에서 남편과 만나 길을 건너 정의공주묘와 영희네 꽃집 사잇길로 들어섰다골목 안에 둘레길 지도가 커다란 목판에 새겨져 세워져 있다 걸음 걷지 않아 쌀국숫집 맞은편 둘레길 시작점 앞에 섰다. 11 40 되었다계단을 올랐다둘레길이라 가파른 곳은 없을 터였다. 지도로 보면 높아야 등고선   정도였다. 


#하고 싶은 거  하는 산행

백두대간   드는 배낭을 메었다. 명찰도 달려있고 백두대간 종주 띠지도 떼지 않았다. 1  여벌옷과 세면도구 등의 짐은 48L 남편 배낭에 실었다물과 간식도 남편 배낭에 넣었다 20L 배낭엔 DSLR 카메라 가방을 넣으니 꽉 찼다. 우이동  때도 인해와 한 번도  왔던 길인데 배낭을 각자 매고도 둘레길  코스는 쉽게 느껴졌다그런데 웬걸단체로 산에 갔을 때는 의젓하던 아이가 초입부터 주저앉는다. 함께 산행하던 언니들이후미대장님이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목적지까지 얼마큼 남았다는 설명에 아이 답은 하나다. “그럴 거면 업어주던지!” 남편이 아이를 업고 가기 시작한다. 예전 같으면 이 모습에 “이럴 거면 왜 가냐?” “뭐 하는 거냐?” 티격태격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오늘은 고작 둘레길 아닌가? 마음껏 업고 가라 싶었다. 지나가던 커플끼리 ‘엄마 힘들겠다’ 말했다. 남편의 배낭을 내 배낭 위로 겹쳐 매었더니 옷가지만 든 가방이지만 머리 위까지 올라와 있으니 무거워 보였나 보다. 

“백두대간 종주 중이에요. 오늘은 못 갔어요” 

“원래 잘 걸어요. 오늘은 떼 받아주는 날이네요.” 

말을 이어가고 있는데 “언제까지 가야 해?” 인해의 투정이 이어졌다. 오늘 산행에선 채면은 없구나. 

아이는 오르막이 나오면 아빠 등에 업혔다가 평지가 나와도 업힌 채 가길래 평지가 나오면 내려서 걸으라 하니 순순히 따른다. 평지에서 걷다 보면 대화가 시작됐다. 산길의 마법이다. 


아이가 업어달라면 업고, 안아달라면 안고가다 평지에선 손잡고 걸어서 갔다.



#여기 올라가도 돼?

한 시간쯤 가니 쌍둥이 전망대가 나왔다. 달팽이 계단이 가파른데 인해는 보자마자 올라도 되냐고 물었다. 철계단을 앞장서 올라간다. 저렇게 잘 가는 아이를 떼쟁이로 만들고 있다 싶어 남편을 흘겨보게 된다. 남편이 아이 뒤를 따른다. 나도 배낭 두 개를 벗어두고 따라 올라갔다. 높지 않은 전망대인데 동네가 한 눈이 들어왔다. 도봉산의 전경도 한눈에 보였다. 나는 남편이 힘들다는 아이를 바로 업어 주는 게 싫다. 그러고는 힘들어서 아이와 등산은 못하겠다고 해서다. 남편은 배낭을 무겁게 싸는 걸 싫어했다. 내가 산을 안 다녀봐서 그렇다고 했다. 오늘은 서로가 싫어하는 걸 실컷 하는 날이다. 아이도 마음껏 떼썼다. 이럴 수 있는 건 백두대간을 걷고 있는 덕이다. 이 정도의 둘레길 걷는 게 쉬워졌듯이 서로의 “이 정도”는 쉽게 봐줄 수 있게 되었다. 

북한산 둘레길 19구간에 있는 쌍둥이 전망대. 아이에게 산길은 힘들기만 한 곳이고 여기는 올라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표지판이 없는 갈림길이 나왔다. 도봉산 정상 방향과 둘레길로 나뉘는 곳이다. 트랭글 앱의 지도를 확대해 보니 내가 바꿔서는 방향대로 화살표가 같이 움직였다. 방향을 잡고 두 손가락으로 화면을 모아 지도를 축소하니 이 길이 어디로 이어졌나 알 수 있었다. 가려는 길에서 나오는 사람한테까지 확인까지 하고 갔다. 한참 가다 다시 아이가 주저앉았다. 백두대간 걸을 때는 앞 뒤에 사람들이 가고 있어 안 보이던 모습이다. 길 옆에 바위에 걸터앉더니 낙엽을 주워 찢는다. 널린 게 낙엽이다.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재밌어? 인해야 걷는 재미도 있지 않니?

“걷는 재미는 없어. 힘들기만 해”

“계속 걸어가서 끝나는 재미가 있잖아”

아이는 대답 없이 하는 일에 집중했다. 둘이 비켜서서 아이 하는 걸 한참 보고 있었다. 라면 먹으러 출발하자고 이번에 우리가 아이에게 보챘다. 등산객이 무수골에 국수 잘하는 집 있다고 한마디 보태고 간다. 아이는 충분한 시간을 보냈는지 일어섰다. 


무수골까지 0.3km가 남았다는 표지가 보였다. 아이가 노래를 시작했다. 

“1 더하기 1은 귀요미” 

“2 더하기 2는 인해 귀요미”

“3 더하기 3은 인해 귀여워요”

귀엽기도 하지만 산수 잘하긴 틀렸구나 싶다. 노래는 계속 이어졌다. 

“1 더하기 1은 핑크오빠”

“2 더하기 2는 핑코 오빠”

“3 더하기 3은 나쁜 오빠”

“4 더하기 4는 나한테 화내는 오빠”

“5 더하기 5는 인수 못생긴 오빠”

갑자기 둘레길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 외치던 대나무숲이 된다. 숲은 모든 것을 품어 주었다. 큰 아이를 3학년 때 처음 산에 데리고 갔었으니 이제 1학년인 인해가 힘들어할 만하다. 첫 산행 때 큰 아이는 보이는 것마다 걸고 짜증을 냈었다. 땅이 질퍽거리는 곳을 지나면서 자기가 제일 싫어하게 이런 땅이라고 했다. 그날 아이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들이 많았다. 큰 아이가 인해만 할 때에도 가던 길에서 주저앉아 한참씩 땅을 봤던 것 같다. 첫 아이를 키울 때는 돌발상황을 고려해 시간을 충분히 두고 움직였는데 둘째는 첫째에 맞춰 가며 어서 가자고 밀고 가는 상황이 많다. 


드디어 방학동길의 끝을 알리는 문이 나왔다. 끝은 곧 시작이다. 문 안에 “도봉옛길”이라고 쓰여 있다. 이 문을 나서면 도봉옛길이 시작된다. 문 밖은 서울의 숨은 시골, 무수골이다. 예전에는 정말 시골동네 같았는데 세련된 글램핑장이 나타났다. 알고 보니 3시간씩 예약하고 이용하는 고깃집이었다. 주말농장을 지나 내려가는 길도 변했다. 초록색 인도와 빨간 자전거 길을 칠한 하천길이 이 안까지 이어졌다. 깨끗이 정비된 천변에는 햇빛에 반짝이는 노란 타일의 큰 빌라 두 채가 분양 중이다. 지인도 무수골에 공동주택을 지었다고 했다. 단층집들만 있는 동네라 금방 찾겠다 싶었는데 동네 안에 새로 지어진 빌라가 여러 채 있다. 마을 어귀에 인스타 감성의 카페도 생겼다. 예전의 정취는 사라지고 없다. 


버스 정거장 앞에 사람들이 많은 국수 가게에서 점심을 먹었다. 언제 도착하는지 묻는 문자가 오고 전화도 왔다. 곧 모여 노는 공식일정을 시작한다고 알려왔다. 앞으로 두 구간을 더 걸어야 하는데 곧 놀기 시작한다니 마음이 급해졌다. 18구간 도봉옛길 3.1km 와 17구간 다락원길 3.1km를 남겨두고 택시를 불렀다. 서울답게 택시가 금방 왔다. 국숫집부터 다락원캠프까지 3.5km 도로를 택시로 달리니 10분 만에 도착했다. 기사분께 캠프장 정문 왼쪽에 샛길로 올라가 달라고 부탁했다. 매점과 운동장을 지나지 않고 숙소로 바로 가는 길이다. 주차장 철문이 잠겨있다. 택시를 보내고 울타리가 부서진 사이를 찾았다. 남편이 먼저 넘어가 틈새로 가방을 받고 아이를 통과시켰다. 나도 뒤를 이어 들어갔다. 숙소가 저 앞에 보이고 몇 걸음 안 가 반가운 얼굴들이 나타났다.  

“우리 빨리 가서 걸어왔다고 하자!!”

시키지 않았는데 아이가 먼저 뛰기 시작한다. 그리운 사람숲에 가서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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