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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나무 May 19. 2023

온 가족 백두대간 첫 산행기

- 백두대간이 놓아준 남매 사이 오작교

2주 만에 두 번째 산행이다. 첫 산행은 엄마 아빠 둘 다 다녀와야 할 것 같아 둘째를 맡기고 참가했었다. 이번에는 두 번째 산행이니 가족이 다 같이 다녀오고 싶다. 내가 가자고 했다면 남편의 걱정과 아이의 불평이 한바탕이었을 텐데 멀기도 하고, 길기도 한 산행이 이렇게 쉽게 가능하다니, 놓치기 아까운 기회다. 


첫 산행 때는 둘째를 데려가지 않은 건 여덟 살 어린이가 가기엔 15.5km는 너무 멀고, 여덟 시간은 길어 갈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둘째와 동갑인 아이가 참가했다. 설아였다. 인해만큼 긴 머리에 초록색 등산 잠바를 입은 설아는 산행 내내 힘든 기색도 없었다. 하산 후 마을회관 마당에서 식사를 했는데 아이들은 몰려다니며 놀았고 심지어 운동기구에 올라 허리를 돌리고 다리를 굴러 대는 아이도 보였다. 첫 백두대간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늦은 밤이었다. 다음날 둘째를 데려왔다. 생에 첫 이사를 하고 태어나서부터 며칠 전까지 살았던 동네에 다녀온 밤, 아이는 먼저 살던 동네로 다시 이사 가고 싶다며 펑펑 울다 잠들었다. 익숙한 동네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만나 놀고 오가는 이웃들에게 한껏 환대를 받고 온 아이의 그리움이 터져버렸다. 다음날 새 동네의 새 학교로 등교하는 아이의 작은 어깨가 안쓰러웠다. 큰 아이의 적응만큼이나 둘째 아이의 적응도 신경 써야 했다. 산에서 본 설아의 모습이 빛처럼 떠올랐다. 백두대간에 둘째도 같이 다닐 수 있지 않을까. 


산행 준비회의에 참가하니 초반에 쉬운 코스를 배치해 여럿이 함께 완주하도록 하고 있었다. 둘째를 데리고 가려면 초반이 나을 것 같았다. 둘째와 같이 산행을 한 적이 있다. 힘들어지면 업어라 안아라 하는 통에 중간에서 둘째와 아빠는 내려오곤 했다. 힘들어서만이 아니라 개미나 꽃을 보느라 주저앉아버려 더 못 가기도 했다. 점점 아빠와 딸은 숙소 주변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와 아들만 산에 다녀오게 되었다. 둘째가 다람쥐처럼 산을 탈 때도 있었다. 또래 친구와 함께 할 때다. 어린이집 가을산행에서는 앞 대장 자리를 놓치지 않고 북한산 대동문까지 다녀왔다. 속리산에선 바위만 보이면 친구와 기어올라갔고 평평한 길이 나오면 뛰었다. 그래도 백두대간을 아이가 걷는 게 가능할지 갸웃할 때 다시 설아가 떠올랐다. 


남편과 의논 끝에 네 가족 모두 참가 신청을 했다. 곧 등산준비를 시작했다. 첫 산행에 급하게 샀던 큰 아이 신발이 무거워 바꿀 필요가 있었다. 짧은 산행에는 괜찮지만 긴 산행에는 무리가 되어 보였다. 신발 무게가 1/4로 줄어드니 가격은 네 배로 늘어났다. 둘째도 등산신발이 필요했다. 긴 산행을 하자니 갖춰야 할 것들이 생겼다. 새벽에 산행을 시작하니 아침엔 춥고, 낮엔 덥고, 산 정상에는 바람이 불었다. 경량 패딩, 스포츠 티, 바람막이 잠바가 모두 필요했다. 1차 산행이 더웠다. 저번 산행을 기준으로 생수를 얼려 준비했다. 잘 녹지 말라고 며칠에 걸쳐 얼렸다. 작은 아이 산행을 도울 간식도 종류별로 준비했다. 이번 산행부터 점심을 각자 준비해 가야 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컵라면으로 정했다. 산행하다 보면 거리가 벌어질 수 있어 아이 먹을 물과 점심은 아이 가방에 따로 싸주라는 공지가 있었다. 실제로 첫 산행에서 큰 아이가 친구들과 앞에 가버리니 만나기 쉽지 않았다. 둘째는 가방 없이 산을 타기로 해서 어쩔 수 없이 짐이 분산되었다. 아이와 벌어지는 일 없이 가면서 또래와 어울려 가게 적당히 떨어져야 하는데 어찌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채로 짐을 쌌다. 얼린 생수 2병, 생수 2병을 각각 가방에 넣었다. 한낮에 뜨거운 태양에 대비해 선글라스도 챙겼다. 


새벽에 아이들을 깨우니 못 일어난다. 큰 아이는 한 번 가봤다고 오만상을 쓰면서도 가방 메고 신 신으러 현관으로 갔다. 나중에 산에서 보니 새 등산화를 안 신고 학교 갈 때 신는 운동화를 신고 나갔다. 둘째는 깨울 생각도 안 하고 배낭을 멘 채 들쳐 안았다. 집합지에는 관광버스 앞 뒤로 데려다주는 차량들이 도착해 있었다. 출석을 확인하고 자리에 앉아 목베개를 나눴다. 버스에서 목이 꺾인 채 자면서 이동하니 몸이 여간 피곤한 게 아니었다. 주위를 보니 준비해 온 가족들도 있었다. 중고장터에 장거리 비행이 없을 것 같아 내놓는다는 것을 샀다. 우리 가족에게는 장거리 버스 여행이 자주 있을 터였다. 휴게소에서 화장실 한 번씩 들리고 다시 타서 눈감았다 뜨니 도착지다. 아이들은 화장실 갈 새도 없이 깊이 잠든 채 도착했다. 


버스 내린 곳이 낯익다. 앞 산행의 식사 자리였던 권포리 마을회관 앞이다. 거기서 체조를 시작했다. 출발 전에 단체사진을 찍고 나서 어린이 참가자만 따로 찍었다. 올해 중1, 고1 신입생과 동생들 참가자들 만으로 플래카드 뒤로 여러 줄이 만들어졌다. 인해와 설아가 초등학교 1학년으로 최연소 참가자고 그 위로 나이대별로 촘촘히 이어져 있었다. 


날씨가 심상치 않다. 흐리고 바람이 분다. 얼려온 생수 때문인지 더 춥게 느껴진다. 찬 바람 속을 걸어가던 인해피부에 한냉알레르기가 올라왔다. 갑자기 추워지면 생기는데 허벅지를 긁기 시작해서 보니 이미 벌겋다. 

산행 내내 흐리고 추웠다 

저번 산행에서 고생했던 한낮의 더위만 대비했다. 걸으면 열이나 금방 더워질 거라 여기고 홑바지만 입혔다. 다행해 위옷은 차에서 입었던 따뜻한 잠바까지 세 겹이다. 가방 속에 바람막이 잠바를 꺼내 아이 허리에 묶어 허벅지를 가려주었다. 컵라면에 부을 따뜻한 물을 먹이며 가는데도 계속 부는 바람에 역부족이다. 언니들 따라가며 무리에 엉겨 즐겁게 길을 걷던 아이가 “집에 가자”, “더 못 가겠어” 하기 시작한다. “엄마, 집에서 유튜브 보고 편하게 있고 싶어.” 뒤에 오시던 분이 내 배낭을 받아 가며 아이만 신경 쓰라고 하신다. 명찰에 수색대장이라 쓰여 있다. 저분도 힘드실 텐데 죄송스럽고, 고마웠다. 


아이와 나는 점점 뒤처져 꽁지 그룹이 되었다. 우리가 쉬면 후미대장님들도 같이 멈췄다. 그분들 보다 뒤로 처질 수는 없었다. 오르막에서 아이 등을 밀어주며 가는데 갑자기 아이가 뒤를 돌아섰다. 뒤따라가던 어른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무대가 되었다. “내가 마술 보여줄게.” “이건 신기한 거야. 재밌는 거야.” 하더니 깍지 껴 맞잡은 두 손의 검지를 교차해 양 콧볼에 댄다. 손깍지를 풀었더니 검지와 양팔이 꼬이지 않고 제자리로 온다. 후미 대장님들이 박수로 화답한다. 여기저기서 따라 해 보는데 교차했던 검지를 풀면 두 팔이 교차해 있다. 쉬워 보이지만 따라 할 수 없는 그야말로 마술이다. 언덕을 지나 시작할 때 같이 갔던 언니들과 만났다. 오빠와 같은 반인 슬혜 언니가 인해를 쓰다듬으며 “힘들었지?” 다정한 말을 건넨다. 엄마한테 전해지는 것과 다른 것이 아이에게 전해진다. 지켜보니 아이의 투정은 언니들과 멀어지면 시작되고 언니들이 보이면 달려가며 사라졌다. 다시 언니들과 만난 김에 아까 그 아저씨한테 가서 배낭을 받아오겠다 하고 앞서 나갔다. 후미 대장님들도 아이와 조금 떨어져 가는 게 낫겠다 하신 터였다. 12시 넘어가니 찬 기운은 좀 가셨다.  진달래가 간간이 한 두 송이씩 피어 있었다. 


점심 먹는 곳에 남편이 와있다. 선두에서 우리 아들처럼 펄떡펄떡 뛰어 앞으로 나아가려는 아이들을 데리고 

점점 뒤처져 후미의 앞대장이 되었다

와 있다. 남편의 보온병에 다행히 물이 남아있다. 선두의 점심식사가 끝나고도 사람들이 계속 도착한다. 얼마 후, 인해가 뛰어온다. 아빠 무릎에 자리 잡고 앉아 라면을 먹으며 재충전한다. 여기까지 온 아이가 대견하고 기특하다. 아빠가 선두대장이라 먼저 가야 한다니까 아빠 손을 놓아준다. 힘들다, 업어 달라, 못 가겠다 매달리던 아이의 태세전환이 놀랍다. 이 큰 무리 안에서 아빠의 체면을 존중해주고 있다. 좁은 오르막 계단이 시작되는 곳 앞에 자연스레 줄이 만들어진다. 아이와 떨어져 가고 싶어 줄 앞에 끼려 하니 “어머니, 여기서 이러시면 안 돼요!” 소리가 들린다. 출발하는 사람들 수를 세고 있는 분이 빙긋이 웃고 있다. “딸이랑 좀 떨어져 가야 해서요.”라고 알리니 “특수 상황이니 어서 앞으로 가세요” 라며 사이를 넓혀 끼워 보내준다. 아마 이 분도 이 중 한 학생의 부모일 것이다. 아직 서로 낯선 이들을 믿고 의지해 새로운 길을 가고 있다.


아이가 잘 따라온 것을 확인하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그래서인지 오르막길을 지나 딸보다 조금 앞서 간다는

 것이 끝없이 갔다. 길이 넓어지면 추월하고 그룹 사이가 벌어진 곳은 앞 그룹까지 따라붙기를 반복했다. 오래 걷다 보면 무의식에 있는 것들이 올라온다. 끊임없이 노래를 부르는 학생, 속얘기를 나누는 이들, 홀로 자기 안에 있는 것들과 만나며 걷는 이들 곁을 차례로 지났다. 인수와 걸을 때도 그런 게 좋았다. 아이를 꼬셔 둘레길로 등교할 때면 아이 속에 담긴 것들이 흘러나왔다. 평소에 말이 없던 녀석 안에서 귀로 들어 담긴 것, 머리로 생각해 담긴 것, 본 것, 지금 생각난 것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아이 얘기를 듣는 재미에 긴 산길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었다. 아이는 긴 등산이 지루해 꼭 가야 한다면 최단거리로 다녀오길 원했고, 최단거리는 가파른 길이기도 해 씩씩대며 오르기 바빴다. 그 마저도 나중엔 아이는 귀에 이어폰을 끼고 갔다. 마지막 오르막이 끝나간다.  


지난 산행에서 만난 분들을 다시 만났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팀으로 기억하고 계셨다. 응원을 듬뿍 받았다. 사람들과는 좁은 길에서 만나고 길이 넓어지면 멀어졌다. 혼자 걷는 길이 좋았다. 사방에 나무였다. 새끼손톱만 한 초록 입들이 나 있었다. 바닥에는 낙엽카펫이 푹신하게 깔려있다. 길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산속에 혼자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 길의 끝에서 나는 어떤 보물과 만나게 될까. 기대하고 있는 내 마음과 만난다.  


뒤에 따라붙은 남자아이 둘의 대화소리가 들렸다. “등산이 좋은 게 뭔지 알아? 등산이 끝나면 우리 엄마가 과

능선길은 안과 밖의 소리가 들리는 길이다. 

자를 마음껏 사주는 거야.” 아직 산에 가는 재미를 모르는 아이들에게는 다른 재미를 주며 기다리는 어른이 아이 뒤에 있다. 인해에게도 완주기념으로 머리핀이라도 선물해 주고 싶어 졌다.  산행 내내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버스에서 아이에게 나눠준 비상용 호루라기는 무리에서 이탈되었을 때 알리기 위해 부는 용도였는데 아이들의 흥을 표현하는 도구가 되었다. 오늘 열심히 불어 놔야 입에 붙어 필요할 때 불 수 있을 것이다. 호루라기 소리가 신경 쓰여 싫거나 산에 사는 동물들을 염려하는 소리들도 있었다. 아마도 다음 산행에서는 호루라기 사용법에 대한 공지가 있을 것 같다. 아이들은 올바른 사용법도 배울 필요가 있다. 능선길이 많아 첫 산행보다 확실히 쉽다. 촉촉이 젖은 숲 향이 내내 가득하다. 숨이 깊게 들이마셔진다. 


마지막 고비, 아막성이다삼국시대 백제와 신라 사이에 격렬한 영토쟁탈전이 벌어진 곳이라는데 한편에 쌓인 돌무더기 앞에 놓인 팻말로   있을 뿐이다내리막  바위마다 이끼가 있다. 한 걸음이 조심스럽다. 덜겅덜겅 하는 바위도 있다. 흔들리는 바위를 밟으면 뒤 사람에게 움직이는 바위를 알리며 함께 내려갔다

 

마지막 지점인가 보다선두대장님들이 차례로 서서 하이파이브를 해주고 있다도착순간 영상도 찍고 있다아들과 다닌 산에서 제대로  사진 하나 없는데 영상이라니감격스러웠다

 

젖은 길을 걸어와서 신발 골마다 흙이 가득이다누군가 에어건으로 버스 입구에서 신발을 털어 주고 있다아들은 이미 버스에 올라있다일행을 기다리지 말고 도착하는 대로 버스를 타고 식당으로 가라는 안내를 받았다나는 첫 번째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날이 추운데 다행이었다. 자리에 앉으니 반대쪽 차선 가에서 스스로 신발을 벗고 털고 있는 어른들의 모습이 보인다. 먼저 왔지만 다른 이들에게 식당가는 순서를 양보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후미를 맞이하고 있는 남편이 딸을 데려올 것만 염두했었다. 딸과 함께 왔어야 하나, 떠나온 곳만 생각하고 있는데 선두로 아이들이 대부분 왔으니 식사를 도와 달라는 소리가 들린다. 식당 안에 들어서니 엄마 오면 같이 먹겠다는 아이, 친구 오면 같이 먹는다는 아이들로 웅성웅성했다. 식당 주인은 이렇게 앉으면 뒤에 오는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다며 오는 순서대로 앉으라고 재촉했다. 몇 차례의 자리 재 배치가 있었다. 나는 초등학생 두 명과 여고생과 같이 앉게 되었다. 메뉴는 버섯전골이었다. 버섯이 싫어 밥만 먹겠다는 아이와 괜찮다는 아이로 갈린다. 잘 끓은 음식을 적당히 떠주고 내 아이에게 하듯 “산에서 내려와 잘 먹어야 한다”, “먹어야 키 큰다” 등등 먹자, 먹자 하고 있는데 마음이 바뀌었는지 안 먹겠던 아이가 전골을 달라고 한다. “버섯은 빼고 줄게!” 따뜻한 국물이 아이 뱃속에 들어가는 걸 보니 안심된다. 먹다 말고 다 먹었다며 일어서는 아이에게 곁에 있던 아이가 “우리 할머니가 먹을 것 남기지 말랬다”며 한소리 해서 웃었다. 아이들 속에 함께 하는 맛이 있다. 


드디어 기다리던 마지막 버스가 들어왔다. 식사를 마치고 마당에서 쉬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버스에서 내리는 이들을 박수와 환호로 맞았다. 내리는 사람 틈에 인해가 보였다. 아이 표정이 좋다. 나에게 번쩍 뛰어 안기며 속삭였다. “엄마, 나 한 번도 안 업히고 내려왔어!” 하산지점에서 인해를 맞이했던 남편도 후미에서 다리를 쩔뚝거리며 내려오던 어른들과 달리 에너지가 남은 듯이 쌩쌩했다고 전해준다. 인해 식사를 돕고 쉬고 계신 후미대장님들께 가서 수고하셨다는 인사를 전했다. 힘들다고 하다가도 저 위에 올라가서 “야호”하고 외치면 엄마에게 들린다고 하면 또 힘내서 오르고 하며 잘 왔다고 말해주셨다. 부드러운 인상에 반짝이는 눈빛을 지니신 작은 거인들이시다. 


두 차례의 산행을 동행해 준 선배들에게 감사하는 자리가 있었다. 물건 싸왔던 박스 안쪽에 감사 문구를 쓰고 흔들며 환호했다. 다음부터는 초보들끼리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 새로 산 등산복과 가방들이 빛을 잃어갈 때 즈음 우리도 신입생들의 등산을 도와줄 날이 올 것이다. 아직은 반짝이는 등산복으로 겨우겨우 올라야 한다. 


밥을 다 먹은 아이는 언니들 틈을 신나게 다닌다. 큰 아이는 동생이 백두대간을 완주하였다는 소식에 깜짝 놀란다. 동생을 데리고 갈 거라는 말에 말도 안 된다며 절대 못 할 거라고 장담했던 오빠다. 이번 산행의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집에 돌아와 식탁에서 남매가 나눈 대화장면이다


누구랑 갔어?”

 힘들었어?”

 진짜 대단하다


가족 내에서 코로나도  옮는다고 했던 남매다그것도 성별도 다르고 나이차도 많아 교차점이 평균보다  없는  녀석이 마주 앉았다. 남매는 백두대간을 통해 만난다권포리에서 복성이재까지 백두대간 5구간의 길이는  15.5km우리 가족의 추억이 백두대간  위로 쌓이기 시작했다 

 




초1 동생의 소감문


나는 산에 가는 날 먼저 버스를 탔다.
그리고서 산에 올라갔다.
그런데 나는 너무 다리가 아팠다.
다리가 아파서 그런 다음에 발바닥을 한번 봤더니 거기에 약간 염증이  있었다

(집에 와서 발에 물집 잡힌 것을 얘기하는 훈장처럼 붕대 감고 다니는 )
나는 그래도 괜찮다왜냐하면 나는 아주 튼튼한 아이니까.
엄마가 붕대를 감아줄 테니까. 그래서 터져도 괜찮다그러면 금방 나을 테니까.
나는 겨우 도착한 것 같아가지고 밥을 먹었다밥을 먹는데 산에 갔다 오는데 너무 배가 안고팠다 모르겠다.
그 대신 언니가 산에 가면서  놀아가지고 나는  언니가  좋다그 대신  언니만 좋은 게 아니고 다른 언니도 좋다 언니들은 정말 보답처럼 잘해준다그래가지고 나는 너무 깜짝 놀라 심장이 두근거리고 그랬다언니들 최고언니들 사랑해우리 아빠가 앞대장이라 정말 좋았다언니들 안녕!
인해의 일기 .


 

중1 오빠의 소감문


산행 전날 저녁 축구를 시청하고 10시에 잠자리에 들었다그리고 새벽 2 30분에 일어났는데 저번만큼 졸리지 않았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나도 이제 새벽에 일어나는데 적응이 되었나 보다. 버스를 타고 가던 도중 이어폰 한쪽을 잃어버렸다 열심히 찾다가 졸려서 그냥 자버렸다그리고 일어나서 뒷자리에 앉아계신 분이 찾아주셨다그리고 산행을 시작하는데 아빠가 선두대장이라서 아빠 따라 선두에 갔다산행 중 90% 선두권에 있었던  같다산행은 거의 힘들지 않았다그런데 마지막 1시간 정도가 힘들었던  같다그전까지는 땀이 하나도 나지 않았는데 그때만 땀이 폭발했던  같다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량이 너무 적었다 거의 1인분을 4명이서 나눠먹는 느낌이었다심지어 같이 먹는 친구들이 고기만 먹어서 거의 비타민만 섭취했던  같았다그리고 추가도 안되고 다른 메뉴를 선택할  없어서 굉장히 기분이 안 좋았던   같다이런 식으로 밥을 주면 계속 산에   없을  같다그리고 돌아올 때는 웬일로 안 깨고  돌아왔다총평을 하자면 산행보다 이동이  힘들었다산행코스는 좀 더 어렵고 짧으면 좋을  같다 새벽에 일어나는 게 성장기 어린이에겐 좋지 않다. 그리고 저녁식사는 정말로 최악이었던  같다아니 아침부터 김밥 한 개 주고 점심을 싸 오라고 했는데 상식적으로 산에 가는데 점심을 배부르게 싸 올 수가 있나그러면 아침과 점심모두 최소한의 배고픔을 면할 량만 먹는데 저녁이라도 많이 줘야지 추가 안되고 메뉴선택도   없으면 입맛도 다르고 먹는 량도 다른 아이들은  먹을 수가 없다당장 나랑 같이 먹은 사람만 보더라도 나머지 3명은 채소를 하나도  먹었다심지어 그중 1명은 밥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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