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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나무 May 02. 2023

한바탕 울고 넘었네

백두대간 종주 38 이기령~백복령 구간

잠들려고 누울 때마다 허리가 점점 더 아팠다. 산행 전날, 정형외과에 가서 허리에 주사를 맞고 진통제를 받아왔다. 인해와 함께 가니 여차하면 내가 업어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있다. “안 아프게 놔주세요”라고 부탁하니 의사가 “산에 갈 깡이면 좀 아프게 맞아도 되지 않냐”한다. “으~ 주사는 안 아프게 맞고 싶어요!” 주사 덕인지 허리는 괜찮아졌다. 

 

새벽 알람이 울렸다. 유난히 아이들 컨디션이 안 좋다. “이럴 거면 가지 마!” 말을 여러 번 삼킨다. 대절버스에 짐을 두고 내릴 수 있으니 배낭을 더 줄여봤다. 이번엔 산에서 내려와 바다에 들리기로 해서 하산시간이 빠르다. 아침식사로 받는 빵 하나를 남겨 점심으로 먹기로 정하니 조끼형 트레일 가방에 짐이 다 들어간다. 허리가 아프니 괜히 무릎도 신경 쓰여 테이핑도 처음으로 했다. 

 

새벽에 탑승지에 도착하니 인해를 알아보고 언니, 오빠들이 다가와 인사해 준다. 잠이 덜 깨 짜증이 나던 인해도 언니 오빠들 환대에 방긋 웃는 모드로 바뀐다. 나도 몇 차례 산행에 인사할 사람들이 생겼다. 한창 떠들썩하게 있다 버스를 타는데 긴장감이 몰려온다. 심호흡을 하고 버스에 올랐다. 무릎보호대를 받아해 봤다. 다리를 접기만 하면 “뿅”하고 무릎이 펴진다. 이 탄성이 계속 유지만 된다면 훨씬 덜 힘들게 오를 것 같다. 

부수베리 계곡길

 

오늘 가는 이기령-백봉령 구간은 태백산에 있는 길이다. 백두대간 38구간 길로도 불린다. 오늘 걸을 거리는 15.6km다. 차만 타면 조금이라도 더 자 두려고 잠을 청하기 바빴는데 어째 잠이 오지 않았다. 어느새 휴게소다. 휴게소 광장 하늘에 구름이 가득하고 바람이 차다.  버스에서 내려 백두대간길까지 가기 위해 부수베리 계곡길을 지나야 했다. 아름답다는 탄성이 곳곳에서 들리는데 긴 산행을 시작하는 어린이의 컨디션을 살피느라 고개 들 여유가 없었다. 여기만 가족들과 다시 오겠다는 다짐도 들렸다. 


 이번 백두대간 종주는 8살 인해의 두 번째 참가다. 3살에 엄마 아빠에 업혀 지리산을 종주했으니 세 번째 기도 하다. 인해는 온도 차가 크게 갑자기 추워지면 피부에 붉은 반점이 생기고 가렵다. 낮 더위에 대비해 홑 겹 바지만 입혔는데 허벅지를 긁기 시작했다. 나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다닐 때는 아침이슬이 마를 때를 기다렸다 출발했었는데 중고생이 주축인 모임이라 그런지 첫출발시간이 빠르다. 나랑만 가는 산행이었으면 불만이 하늘에 닿았을 상황인데 아들도 별 군 말없이 간다. 이미 친구들과 저 앞으로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인해는 찬바람이 쌩쌩 불던 첫 산행에서 내 귀속에 “집에 가자”, “내려가자”, “등을 밀어라”, “힘들다” 속삭이기를 반복했다. 엄마가 먼저 가는 게 낫겠다는 권유에 내가 아이를 달래며 가긴 힘들겠어 앞서가기 시작했다. 친구와 함께 속리산에 갔을 때 정상까지 신나게 올랐던 아이다. 그런데 혼자 판단하고 헤어지면서 아이에게 말을 제대로 안 했나 보다. 아이는 어떻게 엄마가 없어질 수 있냐고 했다. 

 

이번에 또 같이 가보자 권하면서 인해보다 한 그룹만 앞에 가겠다고 약속했다. 가다가 만나면서 가자고 했다. 인해는 그건 괜찮다고 했다. 이번엔 뒤쳐지는 다른 어린이들을 챙기며 가보고 싶었다. 그렇게 합류한 후미에는 여유와 낭만이 있었다. 백두대간을 1년 먼저 시작한 선배 기수들과 함께 하는 산행이어서 평소보다 사람이 많았다. 이제 두 달 된 우리 팀 무전기에 선두, 중간, 후미의 상황설명만 짧게 오가는 것과 달리 선배팀의 무전기에서는 노랫가락이 오갔다. 후미의 상황도 통과시간, 선두와 시간차로 만 알리는 게 아니고 “인해라는 어린이가 끌고 가는 형국”이라고 알렸다. 이 말로 인해가 후미의 선두대장으로 등극했다. 산행이 길어지며 같이 가던 언니가 친구와 사라지고 앞서가고, 앞서간 엄마를 따라 먼저 가는 일이 생기자 자기도 언니들처럼 앞에 가고 싶다며 울었다.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없어 잠시 울게 두었는데 그 순간 이번 산행부터 의료대장님으로 새로 합류한 정현이 엄마가 인해 손을 덥석 잡고 가기 시작한다. 다시 인해가 힘을 내 잘 가기 시작한다. 오르막이 반복되자 아이 발에 열이 나기 시작하는지 발을 땅에 비빈다. 아이의 짜증 시동이 부릉부릉 걸리는 게 느껴진다. 저번에 내가 앞서 간 후, 인해 산행을 함께 하셨던 민정 아버님도 알아채시고는 “인해야~” 하며 다가오셨다. 인해는 이번엔 “여자들과 가겠다”며 곁을 내주지 않는다

 

 선두와 2시간 차까지 벌어졌다는 무전이 들린다. 산행 후미의 시간은 인해의 컨디션에 좌우되고 있다. 등산은 가장 느린 사람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 인해를 함께 돌보며 가게 되는 이유다. 함께하는 산행이 아니었으면 아이 손에 핸드폰을 쥐어 주거나 들쳐 없고 내려갔을 것이다. “인해 아저씨가 업고 갈까?”, “몸무게 몇 이니? 여기 배낭에 타고 갈래?” 어른들이 돕고 싶은 마음들이 오가는데 완주 맛을 본 인해는 거절한다. 저번 산행에서 날머리를 뛰어내려 와서 인해가 가장 먼저 한 말은 “한 번도 안 업히고 내려왔어!”였다. 힘들지만 스스로 가고 싶은 의지가 아이에게 있다. 그러나 인해는 나에게 한없이 치대 오며 나아질 기미가 없다. “그럼 엄마가 오르막 길 언제 끝나나 보고 오겠다”라고 하니 인해가 알겠다고 한다. 선배들의 조언 중에 자기 아이와 가지 말라는 게 있다. 아이는 내가 사라지면 더 잘 올 것이다. 그걸 믿고 앞서가야 하는데 발길이 쉬 떨어지진 않는다. 오르막이 다시 나오자 한바탕 울어버린 아이를 뒤에 두고 눈에서 안 보일 만큼 앞서 가 본다.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게 조절하며 가는데 언덕길이 계속된다. 여길 인해가 어떻게 올라오나 싶다. 헬기장이 나와 한숨 돌리고 있는데 후미에서 동행하던 웅태 아버님과 웅태 동생이 곧이어 도착한다. 엄마가 먼저 가고는 훨씬 잘 가기 시작했다고 인해가 잘 오고 있다고 소식을 알려주신다. 곧이어 기획대장님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도착하신다. 컨디션 난조로 힘들어하는데 도와드릴 게 없다. 웅태 아버님이 조금 더 쉬었다 가도 된다고 했는데 부스럭 거리는 소리마다 인해가 올라오는 소리 같아 일어섰다. 수경이 어머님과 앞 뒤에 서게 되어 인해 두고 먼저 온 이야기를 나눴다. “나도 그래서 수경이랑 안 가 자나” 서로 앞만 보며 얘기하지만 통한다. 인해와 같은 학년인 설아 아버지도 만났다. 설아가 잘 해내는 걸 보고 인해도 용기 내 볼 수 있었다. 


인해와 함께 뒤에서 오는 엄마들의 아이들을 차례로 만났다. 인해 손을 꼭 잡고 오는 중인 의료대장님 큰 아들 정현이는 친구와 가고 있다. 둘째 아들 정민이는 다른 의료대장님과 짝이 되어 씩씩하게 가는 중이다. 정민이의 배낭이 의료대장님에게 들려 있다. 나중에 들으니 오르막마다 스틱으로 칙칙폭폭 기차놀이 하며 인해를 끌어주셨다는 총무대장님의 큰 딸 슬혜가 발목을 다쳐다며 앉아 있다. 함께 가던 친구들과 어른이 같이 멈춰 의료대장님을 기다리고 있다. 웅태는 그 옆에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슬혜 때문에 쉬어 간다며 나에게 아는 체를 해준다. 의료대장님이 바로 뒤에 있다고 알려주고 지나갔다. 엄마와 만나 가고 있는 현진이도 잘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날다람쥐띠 설아와 수경이가 보였다. 더 이상 앞서 가지 않았다. 뒤에 오는 어른들과 거리가 좀 벌어져 있어 이 아이들과 같이 가면 좋을 듯했다. 나는 설아가 어떤 마음으로 등산하는지 궁금했다. 설아는 뒤에 엄마가 잘 오고 있는지 물었다.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설아와 수경이는 다시 앞서 갔다. 현진이와 나는 둘을 따라잡았다 멀어졌다 반복하며 갔다. 


드디어 산 아래 도로가 보인다. 저기에 닿게 내리막길이 시작되길 기대하는데 사는 우리를 한 바퀴를 돌린다. 눈에 보이던 도로도 바뀐다. 내리막길 끝에는 2차선 국도가 나타난다. 길 건너편에 아침에 헤어진 대절버스가 와 있다. 선두로 도착한 남편이 웬일로 환영을 다 해준다. 저번에는 인해가 내려올 때까지 안절부절못하며 기다리더니 살얼음 언 막걸리 때문이었는지 후미 대장님에 대한 믿음 때문인지 남편의 마음이 동해바다급으로 열려 있다. 아들은 진작에 내려와 친구들과 버스를 타고 바다로 출발하고 없다. 

 

목을 빼고 인해를 기다리는데 인해를 앞서가며 만났던 분들이 속속 도착한다. 긴 산행을 마치는 분들께 박수가 저절로 나온다. 아침 8시에 출발한 산행이 7시간을 넘어서고 있었다. 드디어 인해모습이 보인다. 내리막길에 우다다다 달려와 안긴다. 땅에 도착한 인해 표정이 날아갈 듯 가볍다. 

완주의 기쁨! 

 

앞 기수들의 산행 기록집을 보니 가는데 급급해서 자연 경치를 못 본 게 아쉽다는 소감이 많았다. 그래서 이번 대간길에 핀 꽃 이름 맞추기 게임이 밴드에 올라왔길래 인해와 열심히 했었다. 사진카드 게임에서 보았던 노랑제비꽃, 제비꽃은 산행 중에 자주 보였다. 산괴불주머니는 버스에서 내려 체조했던 곳에 많았다. 할미꽃은 누가 발견했다는 소리를 들으며 지나갔고 꽃잎이 완전히 뒤집어지며 피던 꽃을 사람들이 신기해했는데 엘레지 꽃이었다. 뻐꾹채, 노루귀, 솜나물, 은백미꽃, 참꽃마리는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무릎을 꿇고 봐야 발견할 만큼 작은 꽃들이었을까? 산행에서는 꽃이 보여도 멈추지 않고 걸어가기 급급했다. 언제쯤 그 자체로의 하늘이 보이고 자연이 들어올까. 

 

아이는 자기가 완주한 걸 알리고 싶어 한다. 새로 간 학교 친구들, 졸업한 어린이집 친구들, 학교 선생님, 어린이집 선생님들, 등하교 때 만나는 동네 엄마들, 발레학원 선생님, 이모들, 외할머니…… 소식 전할 곳을 꼽으며 힘든 기억이 뒤로 간다.  성취한 기쁨이 선명히 떠오른다. 다음 산행접수를 때 즈음엔 다리 아픈 것도 사라질 것이다. 8살의 인해 기억에 두 번째 백두대간 길이 놓였다. 16.5km, 8시간 45분, 맑고 쾌청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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