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구간 권포리~복성이재 15.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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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삿짐을 다 풀지 못했는데 두 번째 산행이 돌아왔다. 이사 온 날부터 하루하루가 빨리 갔다. 초행길을 더듬어가며 첫째를 20분 걸려 학교에 내려주고 다시 그만큼 시간이 걸려 돌아오면 둘째 학교 갈 시간이 빠듯했다. 서둘러 깨우고 옷 입히고 아침을 먹여 10분을 걸어가야 하는 학교에 데려다줬다. 세탁기와 냉장고가 아직 오직 않아 빨랫감을 들고 빨래방에 다녀와야 했다. 오늘 아들의 검도복을 빨아놔야 저녁에 입고 갈 수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은 점심을 먹고 오는데도 열두 시 반이면 끝났다. 하교시간이었다. 놀이터로 빠졌다. 엄마와 할머니들 사이에 서서 시린 봄바람맞으며 엉거주춤 한 시간씩 서있어야 했다. 그중 한 녀석이 두시에 학원차를 타야 해서 겨우 파했다. 아이와 집에 들어서면 거실이 횅했다. 둘째 낳고 수유소파로 쓰던 게 쿠션이 다 꺼져 버리고 왔다. 티브이도 벽 한편 바닥에 세워져 있다. 살면서 사는 곳에 맞게 천천히 필요한 걸 마련해 가며 왔는데 뭘 알아볼 시간이 없다. 초등학교 1학년이 이렇게 집에 빨리 오는 줄 몰랐다. 놀이터에서 돌아와 조금 있으면 첫째를 데려갈 시간이 되었다. 오빠 데리러 가는 차 뒷자리에서 둘째 딸이 까무룩 잠이 들면 저녁에 자는 시간이 늦어지기 일쑤였다. 그러는 사이 두 번째 산행도 다가왔다. 이삿짐을 좀 정리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이삿짐은 어떻게든 정리되어 있을 텐데 백두대간 산행은 다시없을 터였다. 저번 산행 후 등산 짐들이 현관 앞에 그대로 있어 짐을 다시 쌀 것도 없다. 그래, 일단 다 놓고 백두를 다녀오자.
첫 산행 때 둘째를 먼저 살던 동네에 맡기고 다녀왔었다. 토요일 새벽에 출발해야 해서 금요일에 학교 끝난 아이를 태워 두 시간이 걸려 친구집에 데려다줬다. 산에 다녀온 날은 밤늦게 도착해 다음날 일찍 데리고 왔었다. 친구 엄마는 이틀 동안 제일 친했던 친구와 새로 간 학교 얘기를 서로 나누며 잘 자고 잘 지냈다고 했다. 동네 놀이터를 오가며 이웃들의 환대도 잔뜩 받은 모양이다. 일요일 밤에 누워 잠을 청하다 딸이 다시 이사 온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펑펑 울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같이 학교 다니고 싶은데 나는 왜 이사 왔냐며 울었다. 첫째 따라 이동할 수밖에 없는 둘째의 숙명 같은 걸 아이가 알 턱이 없다. 내일 새 동네의 새 학교로 등교해야 하는 딸의 작은 어깨가 안쓰러웠다. 그래서 이번엔 딸을 어디 맡기고 갈 수 없게 됐다. 어찌할까 싶은데 산에서 본 설아의 모습이 떠올랐다. 까만 긴 생머리를 하고 초록색 잠바를 입고 깡충깡충 뛰어다니던 설아는 우리 딸과 같은 1학년이라고 했다. 설아도 했는데 우리 딸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여덟 살 아이와 가기엔 15km는 너무 길고 8시간을 걷는 것은 할 수 없다고 단정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산해서 마을회관 마당에서 본 초등학생들 중에 힘들어 앉아 있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다들 처음 본 또래와 몰려다니며 놀았고 운동기구에 올라 허리를 돌리고 다리를 굴려댔다. 데려가도 되지 않을까?
2차 산행 공지가 나왔다. 1차와 같은 거리인 15km고, 저번에 다녀온 4구간 고기리~권포리 구간을 이어서 5구간 권포리~복성이재를 간다고 했다. 현실성을 타진해 보기 위해 산행 준비 회의에 참가했다. 입학식 전에 예비산행을 참가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산행, 기획, 보급, 안전, 의료 대장 등으로 역할이 나눠져 있었다. 회의는 대장단이 아니어도 누구라도 참석할 수 있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회의에서 가서 슬쩍 앉았다. 조금 늦게 들어갔는데도 아무도 나를 낯설어하지 않았다. 가만히 보니 참가한 사람들끼리도 아직 서로 다 모르는 눈치였다. 나를 특별히 더 낯설어하지 않은 이유였다. 산행대장과 기획대장이 서로 하는 얘기를 들으니 초반에 쉬운 코스들을 배치해 많은 사람이 가도록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둘째를 데려가려면 지금이 나았다. 한 가지 걱정되는 건 아이들을 데리고 갔던 산행기억이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코로나 때 아들과 딸을 데리고 집 뒤에 산을 갔었다. 주차장에서 한 시간이면 올라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 짧은 사이에 열 살이었던 아들은 빨리 가고 싶어 했고, 4살이던 딸은 개미나 꽃을 보느라 주저앉았다. 아들은 엄마와 동생이 빨리 안 온다고 답답해서 울고, 딸은 오빠가 화낸다고 울었다. 좀 컸으니 괜찮을까? 아빠도 같이 갔던 산에서는 딸이 아빠에게 안아달라 업어달라 하는 통에 둘은 다시 내려가고 아들만 정상까지 다녀오기도 했었다. 그래도 이번엔 여럿이 가니 다룰 수 있지 않을까? 희망적인 건 어린이집 갔던 가을산행에서 2시간 동안 앞대장 자리를 지켜가며 북한산 대동문까지 다녀온 적이 있다는 거다. 친구네 가족과 함께 갔던 속리산에서는 둘이 뛰고 놀며 가다 거의 정상까지 갔었다. 딸은 가족과는 못 가지만 또래와는 잘 가는 아이가 아닐까? 남편과 의논 끝에 네 가족 모두 참가 신청을 했다. 1차 산행 때 너무 더웠기에 생수를 미리 얼렸다. 이번엔 점심을 가져오라고 했으니 보온병이 무거워도 특별히 딸이 좋아하는 라면으로 챙기기로 했다. 한낮에 뜨거운 태양을 대비할 선글라스도 챙겼다. 선글라스는 무게가 거의 안 나가니까.
등산 날, 새벽 두 시 반에 아이들을 깨우니 못 일어난다. 그래도 큰 아이는 한 번 가봤다고 오만상을 쓰면서도 가방 메고 현관에 나가 신발을 신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등산화가 아닌 운동화를 신고 갔다. 다음번엔 비몽사몽간에 등산화만 신게 다른 신발들을 싹 치워놔야겠다고 다짐했다. 둘째는 미리 등산복을 입혀 재웠다. 잠든 채 안고 나와 차에 태웠다. 집합지에 도착하니 관광버스 앞 뒤로 데려다주는 차량들이 줄지어 있다. 배정된 버스에 짐을 싣는 동안 잠이 덜 깬 딸이 새벽바람에 움츠리고 서 있다. 사람들이 작은 아이가 한 명 더 왔다며 알아보고 인사해 준다. 설아를 불러 소개해준다. 중학교 1학년인 아들의 키가 갑자기 커서 170가 넘었다. 친구들이 아들에게 이런 작은 여동생이 있다는 걸 알고 몰려든다. 만져주고 안아주는 언니들과도 수줍게 인사하고 차에 올랐다. 잘 부탁한다, 얘들아. 세 시가 되자 참석자들이 다 탄 것을 확인한 버스가 출발했다. 3시간 10분이 걸려 지난번 종착지였던 권포리에 도착했다. 이번코스는 저번보다 쉽다고 했다. 한 시간 정도 시간이 단축될 거라고 했다. 그런데 이것이 연속 참가하는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차이라 아쉽다. 이번 코스가 저번보다 쉽다는 걸 딸이 알면 좋을 텐데. '딸아, 잘할 수 있겠지?' 딸은 버스에 타서 한 번도 깨지 않았다.
아침 6시 20분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침보급으로 김밥을 나눠줘 차에서 먹었다. 마을 회관 마당에 동그랗게 서서 체조를 했다. 회관 주변에 노란 생강꽃이 활짝 피어있다. 루틴처럼 단체사진 찍고 7시가 되어 출발했다. 단체사진을 찍고 나서 어린이와 청소년만 따로 찍었다. 아이들이 꽤나 많이 참가했다. 그중 우리 딸과 설아가 8살로 최연소 참가자다. 전체 참석 인원은 1차 때 124명에서 인원이 줄어 97명이다. 저번 산행 후 놀래서 다시 못 온 가족들의 숫자만큼 빠졌고 오늘 놀랠 가족들 수만큼 더해진 숫자였다.
하. 날씨가 심상치 않다. 흐리고 바람이 분다. 배낭 안에 얼려온 생수 때문인지 더 춥다. 아들은 벌써 친구들과 사라졌고 앞사람을 따라 딸의 손을 잡고 걷는데 딸아이가 간지럽다고 했다. 딸은 갑자기 추워지면 두드러기가 생기는 한랭알레르기가 있다. 한 여름에 차가운 계곡에 들어가면 갑작스러운 온도차로 얼굴까지 불긋하게 올라왔다. 다행히 약을 먹지 않아도 햇볕에 가서 시간을 보내면 금방 가라앉았다. 딸이 허벅지를 긁는다. 저번 산행에서 고생해서 한낮의 더위만 대비했지 추위는 생각 못했다. 걸으면 열나서 금방 더워지니 홑바지만 입혔다. 다행해 윗도리는 긴팔과 바람막이 잠바 사이에 차에서 입고 자던 패딩을 아직 입고 있다. 바지가 문제였다. 컵라면에 부으려 가져온 따뜻한 물을 먹였다. 몸을 데워놓으면 찬 바람이 불어 금세 식혔다. 언니들과 설아와 즐겁게 걷던 아이가 집에 가자, 더 못 가겠고 하기 시작한다. 급기야는 점점 뒤처지더니 “엄마, 집에서 유튜브 보고 편하게 있고 싶어”라고 속삭였다. 뒤따라 오시던 분이 내 배낭을 받아 가며 아이만 신경 쓰라고 하고 앞서 가버렸다. 가방에 달린 명찰에 수색대장이 쓰여 있다. 저분도 힘드실 텐데 죄송스럽고, 고마웠다. 아이와 나는 점점 뒤처져 꽁지 그룹이 되었다. 산행의 맨 뒤엔 후미대장님들이 있었다. 전체 산행에서 그분들 보다 뒤로 갈 수는 없는 것 같았다. 우리가 쉬면 후미대장님들 세 분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아이가 오르막을 다시 만나더니 등을 밀어 달라해서 아이를 밀어주며 오르고 있는데 중턱쯤에서 뒤를 돌았다. 아이가 선 곳이 뒤따라가던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는 무대가 되었다. 딸이 “이건 신기한 거야. 재밌는 거야” 하더니 두 검지 손가락을 양 콧볼에 ‘X’ 자 교차한다. 손가락을 풀었더니 두 검지가 'X'자에서 '11'가 되며 제자리로 돌아왔다. 좀 싱거운데, 하고 보고 있는데 딸은 이게 마술이라고 했다. 후미 대장님들이 자비롭게도 박수로 화답해 주었다. 다들 쉬울 줄 알고 따라 했는데 손가락이 꼬였다. '오, 학교에서 이런 것도 배우나?' 마술 얘기를 계속하며 딸이 힘들다고 하지 않으니 좋았다. 쉬지 않고 걸어가니 시작할 때 같이 갔던 언니들과 만났다. '너희들도 많이 뒤처졌구나, 반갑다!' 버스 타기 전부터 둘째를 꼭 안아주었던 중학교 언니 한 명이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힘들었지?”하고 다정한 말을 건넨다. 엄마한테서 전해지는 것과 다른 것이 아이에게 전해졌다. 가만히 지켜보니 딸의 투정은 언니들과 멀어지면 시작되고 언니들이 시야에 보이면 달려가며 사라졌다. 다시 언니들과 만난 김에 아까 내 가방을 가져간 아저씨한테 가서 배낭을 받아오겠다며 떨어졌다. 후미 대장님들도 엄마가 아이와 조금 떨어져 가는 게 낫겠다 했다. 어느새 한 낮이다. 12시 넘어가면서 찬 기운이 좀 가셨다. 숲 속에 진달래가 간간이 한 두 송이 씩 보였다.
점심 먹는 곳에 딸보다 먼저 도착했다. 남편은 맨 앞에서 선두대장님보다 앞질러서 펄떡펄떡 나아가려는 아이들을 자재시키며 함께 왔다고 했다. 아들도 그 무리 중 하나였다. 조금 있으니 딸이 뛰어온다. 아빠 무릎에 자앉아 함께 라면을 먹었다. 여기까지 따라오다니 제법인걸. 선두그룹의 점심식사가 다 끝나고도 계속 도착하는 사람들이 있다. 선두와 후미의 시간은 이제부터 더 벌어질 것이다. 아빠가 오늘은 선두대장 역할이라 먼저 가야 한다니까 딸이 쉽게 아빠를 놓아준다. 산에서 아빠만 보면 업어 달라, 못 가겠다 매달리던 딸이 이 큰 무리의 일원이 되어 아빠의 체면을 존중해주고 있다. 자기 체면을 차린 건가? 다시 시작된 길은 좁은 오르막 계단이다. 남편과 아들이 먼저 갔다. 나도 딸과 떨어져 먼저 가야겠길래 서둘러 일어났다. 딸도 곧 출발할 때가 되어 줄 맨 뒤에 서지 않고 앞에서 서성이니 “어머니, 여기서 이러시면 안 돼요!” 소리가 들려 “딸이랑 좀 멀어져야 해서요”하니 “특수 상황이니 어서 앞으로 가세요”라며 사람들 사이에 나를 넣어준다. 아마 이 분도 오늘 참가한 학생의 부모일 것이다. 낯선 이들을 믿고 딸을 남겨두고 앞으로 가려하고 있다니. 우리 딸은 후미대장님들이 잘 챙겨서 오겠지?
헤어졌던 딸을 다시 만났으니 딸이 내 뒤를 잘 따라올 수 올 수 있다는 건 확인되었다. 이제 내가 잘 가는 일만 남았다. 이사 이후로 체력이 회복되지 않고 있다. 더 힘들기 전에 오늘 가야 할 길을 빨리 가야 했다. 길이 넓어지면 양해를 구하고 앞사람을 추월했다. 아이들끼리 가는 그룹 사이가 너무 벌어져 있으면 속도를 조절해 뒷 그룹을 앞 그룹까지 붙였다. 내가 조금 앞서 보이는 데서 빨리 걸으면 아이들이 잘 따라붙었다. 산 길을 오래 걷다 보면 무의식에 있는 것들이 올라온다. 아들과 산행을 계속하다가 어느 순간 느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를 꼬셔 둘레길로 걸어 같이 등교했다. 동생이 생긴 아들과 따로 시간을 갖고 아이 마음을 좀 보살피고 싶었다. 조용한 아침 산 길을 둘이 걷다 보면 아이 속에 담긴 것들이 흘러나왔다. 처음엔 호랑이가 나올 것 같다며 무서워하다 30분 남짓 같은 풍경이 이어지는 산길을 걷다 보면 평소에 말이 없던 녀석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다 알 수 있었다. 내가 함께 있는 시간과 함께 없는 시간에 아이 귀로 들었던 것, 머리로 생각한 것, 눈으로 봤던 것, 지금 생각난 것들이 거리낌 없이 흘러나왔다. 아이 속 얘기를 듣는 재미에 나중에는 긴 산길을 찾아다니기도 했었다. 백두대간 길이 지루하게 계속되자 오늘 참가한 학생들 중에서도 끝없이 노래를 부르는 학생이 나타났다. 함께 걸으며 속얘기를 나누는 이들도 보였다. 홀로 자기 안에 있는 것들과 만나며 걷는 이들 곁을 지나기도 했다. 조금 큰 아들은 엄마와 걷는 긴 등산이 지루하다며 산을 꼭 가야 한다면 최단거리로 다녀오고 싶어 했다. 그 마저도 나중엔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갔다. 산에선 내가 앞서가며 아들을 끌고 갔는데 언젠가부턴 아들이 저만치 먼저 가서 나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중학생이 되니 이제는 그마저도 출발할 때 얼굴 한번 보고 끝나야 보게 되었다. 이제 오르막길은 거의 끝난 것 같다. 어디가 길인지 어디가 산인지 길이 잘 구분되지 않는다. 앞서 간 사람들이 발로 다져 놓은 길을 살펴 따라갔다. 반대방향에서 오고 있는 분들이 저번 구간에서 만났었다며 반가워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팀이라며 대견하고 엄지를 치켜세우며 지나갔다.
길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좁은 길에서 만났다 길이 넓어지면 간격이 벌어졌다. 혼자 걷는 길이 참 좋았다. 구불구불한 숲 속 오솔길은 끝이 없이 걷다 고개 들어 보면 사방엔 나무뿐이었다. 가지마다 새끼손톱만 한 초록 잎들이 달려있다. 바닥에는 낙엽카펫이 두텁게 깔려 푹신했다. 뒤 따라붙은 초등학생 남자아이 둘의 대화소리가 들렸다. “등산이 좋은 게 뭔지 알아? 등산이 끝나면 우리 엄마가 과자를 마음껏 사주는 거야” 집집마다 애쓰고 있구나. 산에 가는 재미를 알게 될 때까지 아이에 맞춰 다른 재미라도 주면서 데리고 가는 것도 좋겠다. 이번 산행을 마치고 나면 딸아이가 좋아하는 걸로 선물하고 싶어졌다.
능선길이 많아 첫 산행보다 확실히 쉽다. 촉촉이 젖어 숲 향이 가득하다. 숨이 깊게 들이마셔진다. 마지막 고비인 아막성에 도착했다.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 사이에 격렬한 영토쟁탈전이 벌어진 곳이라는 팻말이 있다. 여기부터 내리막이 심해졌다. 바위마다 이끼가 잔뜩 해 미끄러질까 봐 밟기 조심스러웠다. 덜겅덜겅 하는 바위도 있어 걸음마다 힘이 들어간다. 내 남은 체력을 다 소진시키는 구간이었다. 흔들리는 바위를 밟으면 뒷사람에게 여기가 흔들린다고 알리며 내려갔다. 등산로 끝에서 먼저 도착한 선두대장님들이 하이파이브를 해주고 있다. 누군가는 한 명 한 명의 도착순간을 영상으로 찍고 있다. 아들과 다닌 산에서 내가 제대로 나온 사진이 한 장 없는데 영상이라니! 산행하는 나를 누가 찍어주고 있다는 게 너무 감격스럽다.
도착하는 대로 버스에 탑승해 식당으로 이동했다. 아들은 이미 출발했고, 남편은 딸이 도착하는 것을 보고 함께 오기로 해서 식당으로 먼저 이동했다. 날은 추워 나는 서서 기다리기 힘들었다. 먼저 온 아이들 식사를 도와주며 밥을 먹는데 딸이 잘 내려올까 싶어 밥맛이 잘 느껴지질 않는다. 밥을 먹고 나와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를 타자마자 기절하듯 잠이 들어 버스가 어느 쪽에서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뜨뜻한 버섯전골을 먹고 나니 몸에서 온기가 들어 밖에 서있을 만했다. 드디어 버스가 보인다. 식사를 마치고 마당에서 쉬던 사람들이 모여든다. 버스에서 내리는 이들을 박수와 환호로 맞이했다. 선두보다 한 시간 이상 더 산을 탄 사람들이다. 빨간 잠바를 입은 딸이 내린다. 표정이 좋다. 나에게 와서 안기며 “엄마, 나 한 번도 안 업히고 내려왔어!”라고 속삭인다. 함께 온 남편도 산에서 내려오는데 에너지가 남아 보였다고 전해준다. 딸 밥 먹는 걸 봐주고 후미대장님에게 가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저 위까지 가서 야호 부르면 엄마에게 들릴 거야"라고 하면 쉬었다가도 다시 잘 갔다고 했다. 내가 아들 데리고 다니며 매번 하던 일 아닌가. 아이 어르고 달래며 산행하는 게 어떤 건지 잘 알아서 마음이 저절로 숙여진다. 잘 가고, 잘 쉬기도 하며 왔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해준다. 부드러운 인상에 반짝이는 눈빛을 지닌 후미대장님이 작은 거인으로 보였다.
출발 전에 마당에 모여 첫 산행부터 오늘 산행까지 함께 해준 선배들에게 감사하는 자리가 있었다. 다음부터는 19기끼리 등산을 해야 하나 보다. 과자 박스 안쪽에 감사의 문구들을 써서 들고 흔들며 환호했다. 두 번 해봤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새로 산 등산복과 가방들이 빛을 잃어갈 때 즈음 우리도 신입생들의 등산을 도와야 할 때가 올 것이다. 아직은 반짝이는 등산복을 입고 겨우겨우 넘고 있지만.
저번 산행 후에 봤던 설아처럼, 밥을 다 먹은 딸도 마당을 뛰어다녔다. 언니들 틈을 누비고 다니며 오늘 처음 만난 또래들과 어울려 다녔다. 데려오길 잘했다. 버스에 타서 눈을 감았다 뜨니 아침에 버스 탔던 곳에 도착해 있다. 고된 산행과 따뜻한 전골이 그 어떤 수면제보다 효과가 좋다. 벌써 도착했냐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집에 돌아와 아들은 동생이 오늘 백두대간 구간을 완주하였다는 소식에 깜짝 놀란다. 동생도 데려갈까 했을 때 절대 못할 거라고 했던 오빠다. 6살 차이의 남매라 동생이 어릴 때는 한창 예뻐하더니 동생이 아빠를 차지하고부터는 관계가 달라졌다. 동생과는 늘 멀찌감치 서서 입 내밀고 바라만 보던 아들이 동생과 식탁에서 마주 앉아있다. 동생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15.5km 구간 두 번, 백두대간을 다녀와 가장 인상 깊은 순간이 우리 집 식탁에서 펼쳐졌다.
아들은 진심으로 궁금해하며 동생에게 물었다.
“누구랑 갔어?”
“힘들진 않았어?”
“대단하다.”
마루금 14.0km, 구간 외 1.5km. 백두대간 5구간을 걷고 남매 사이에 대화의 다리가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