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둘째를 업고라도 갈 수 있는 마지막 해요, 다녀옵시다 여보.
# 드디어 지리산 종주를 떠나다
한 달 전에 아이들과 노고단 대피소 체험 연습을 무사히 마치고 드디어 종주를 간다. 그 사이 둘째를 업고 갈 등산 캐리어를 업그레이드했다. 캐리어의 프레임은 더 튼튼해졌으며 아이도 장시간 타고 다니기 편할 갖가지 요소가 갖춰져 있다만 남편의 짐은 안정감을 얻는 대신 2kg쯤의 무게를 추가하게 되었다. 무게는 더 나가게 되었지만 안정감이 커져 등산하기 좋을 거라 했는데 반응은 시큰둥했다. 큰 아이의 신발도 평소 신고 다니던 운동화에서 제 발에 맞는 등산화로 준비했다. 누가 이런 걸 가져오느냐고 한 소리 들었던 버너도 안정적인 뚱뚱한 사각 모형에서 손바닥만 한 불구멍만 있는 것으로 바꿨다. 이웃들에 사정을 얘기하고 물건을 빌릴 때마다 대단하다고, 잘 다녀오라고 격려해주었다.
노고단까지 2.7km의 완만한 경사를 두 시간에 걸었지만 이번에는 노고단에서 연하천까지 10km 정도를 걸어야 한다. 가파른 오르막이 있을 테고 그야말로 지리산 종주길인데 생각할수록 우리는 해낼 것 같았다. 믿도 끝도 없는 믿음은 뭘까. 뭐였을까. 한 달 내에 국립공원 대피소 사용은 이틀까지 예약할 수 있었다. 낮에 여행하듯 자차로 이동해 노고단 대피소에서 1박 하고 다음날 아침에 출발해 연하천 대피소까지 가는 것으로 코스를 짰다. 밤기차로 이동해 새벽 산행으로 시작하면 이틀에 천왕봉까지 갈 수 있을 테지만 아이들과 새벽 산행을 할 수는 없다. 지리산을 넘는 것만도 힘든 일인데 거기에 아이를 달래는 일까지 만들어 붙일 수는 없다. 가능한 일을 불가능하게 만들면 안 된다. 종주를 위해서는 아이들 컨디션 좋게 하며 이동하는 게 제일 중요했다. 환경이 바뀌면 세상이 바뀐 것처럼 느낄 수 있는 둘째가 안심할 수 있게 저번에 다녀온 곳 또 가는 거라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산에 가서 저번에 봤던 다람쥐 만나고 오는 거야. 두 밤 자야 많이 만날 수 있으니 우리 두 밤 자고 오자. 우리 사탕이랑 젤리 많~이 먹고 오자."
# 노고단에서 연하천까지 걷기
아이들과 나눠 먹을 물 챙기고, 걸으며 아이들 달래줄 간식 챙기고, 큰 아이와 짐을 적당히 나눠 짊어지고, 아주 좋은 등반 캐리어에 올라탄 둘째와 이걸 매고 가야 하는 남편과 드디어 출발했다. 우리도 노고단 고개를 넘어 돼지령을 지나고 피아골 삼거리, 노루목을 지나 삼도봉에 도착했다. 여기까지는 지도상으로 나오듯이 황토색 길 난이도. 걷기 괜찮았다. 붉은색 길이 어려운 난이도를 나타내는데 삼도봉부터 토끼봉을 지나는 길이 가파르게 오르내렸다.
아이 둘과 등산을 하며 처음 보는 등산객들에게 예상하지 못했던 간식과 응원을 많이 받았다. 특히 큰 아이가 쉬고 있을 때마다 지나가는 어른들이 칭찬을 많이 해주었다. (아이 업은 남편도 칭찬을 많이 받았다) 산행의 끝까지 격려받고 응원받으며 산행하는 기분이었다. 처음 만난 분들이 그윽한 눈빛이 되어 그분들 아이들 어릴 때 데리고 왔던 경험을 들려주었다. 그 모습들을 보며 오기를 잘했구나 하고 생각했다. 우리 가족사에도 지리산이 들어왔으니. 들려주는 이야기 속의 어린아이가 부모보다 커져서 말하는 뒤에 빙긋이 웃고 서 있기도 했다. 산이 여러 사람을 품어 길러내는 느낌이 들고 묘하게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처음 보는 이들과, 그리고 뒤 이어 올 이들과. 이틀을 걷는 동안 세상의 온갖 일들이 모두 떨어져 나갔다. 남은 생각이라고는 "아, 배낭 무거워, 간식 먹을까, 얼마 남았어, 밥은 뭐해먹을까"만 남았다. 뭐 해먹지도 등 짐 속에 있는 안에서 선택해야 하니 이번에 못 먹으면 다음끼에 먹게 될 뿐이었다. 고를 것도 없고 심각하게 고민할 일도 없다. 쉬면서 물 한 모금 마시면 행복하고, 달달한 간식 하나 먹으면 몸에서 힘이 나는 게 느껴진다.
"얘가 어떻게 여길 왔어요?"
처음엔 긴장이 되었는지 힘든 줄도 모르다가 2.4km 남겨 놓고는 길이 가도 가도 끝이 안 났다. 물까지 떨어져 목마르다는 아이 때문에 난처했다. 지나는 등산객들도 모두 물이 떨어졌다고 했다. 출발한 지 7시간이 다 되고 있었다. 대피소가 금방인데 아무리 가도 안 나왔다. 어휴. 마지막으로 긴 계단 구간을 지나 드디어 대피소가 보였다. 낯가림을 하는 작은 아이가 도착하자마자 캐리어에서 내려 주변을 깡충깡충 뛰어다녀 신기했다. 보는 분마다 얘가 여길 어떻게 왔냐며 눈이 똥그래진다. 바닥에서 쉬고 있는 등산 캐리어를 가리키고 눈을 찡긋 해 보였다. 대피소에 도착해 지어먹는 밥은 정말 꿀맛이었다. 물론 노고단 예행연습 때와 다르게 작은 버너로 준비해왔다. 친구끼리 다 큰 아들 한 명씩 데리고 온 팀은 짐꾼이 많으니 프라이팬을 가져와 고기를 굽고 있었다. 우린 짐을 줄이고 줄여야 하는 처지라 딱 먹을 만큼, 부피 작은 것들로만 가져왔는데 그 경험이 참 좋았다. 숙소 도착해 물 한 병 사 먹는데 참 귀했다. 간식 하나, 식사 한 끼, 내가 들 수 있는 만큼 내에서만 가져올 수 있고 주변을 둘러봐도 다 자기 등에 질 수 있는 만큼의 짐을 들고 이동한다. 이런 사람들의 사는 모습은 아이에게 아무리 말로 설명하려 해도 전달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새벽에 일어나서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그 시간에 출발하는 분이 계셨다. 시계가 새벽 3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놀라 어디까지 가시는지 물으니 천왕봉 넘어까지 간다고 했다. 여자분 혼자서 헤드랜턴 켜고 캄캄한 산 길 속으로 떠나가는 뒷모습을 보는데 감동이 일었다. 안전산행을 기원해 드렸다. 대피소의 가장 늦은 출발자는 우리 가족이었다. 아이들 충분히 재우고, 밥 지어 먹이고, 컨디션 살피며 마당에서 시간 보내며 하루새 낯익은 분들 배웅해드렸다. 가방에서 주섬주섬 제일 아껴둔 맛있는 간식을 꺼내 아이들에게 주고 가시는 분이 계셨다. 힘찬 응원과 함께. 원래 계획은 원점회귀였는데 넘어왔던 길을 다시 구비구비 넘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뱀사골 계곡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내려가고, 내려가고, 내려가며 남편의 이십 년 전 친구들과 지리산행 추억들이 대 방출되고 그 위에 우리의 새로운 추억을 쌓으며 내려갔다. 가다가다 보니 드디어 식당들이 나타났다. 다리 뻗고 앉아지어 주는 밥을 귀하게 받아먹고, 그곳에서 택시를 불러 타고 차를 세워두었던 성삼재로 돌아왔다. 미리 예약해두면 하산 지점으로 주차된 차를 옮겨주는 서비스도 시행 중이었다.
아이들과 같이 산행하는 집들을 보니 아이들은 배낭을 메지 않고 맨 몸으로 오르게 하는 집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우리는 큰 아이가 끝까지 배낭을 메고 완주했다. 동생을 어른 한 명이 업고 가야 했기에 어쩔 수 없었는데 군말 없이 잘 메고 완주했다. 이번 산행은 아이의 올해 이룬 성취로 학기 말에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기도 했다. 가족들의 대화에 지리산에 다녀온 이야기가 오르면 반짝하는 빛이 우리 사이에 떠오른다. 작은 아이는 아마 기억하지 못할 테지만 다람쥐와 안개, 깊은 숲과 사람들의 환대로 아이의 기억 이전의 기억으로, 정서로 남지 않을까 싶다. 작은 아이는 등산 캐리어에서 낮잠도 자고 능선 구간에서는 캐리어에서 내려 쪼르륵 오빠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뛰어가며 완주했다. 지리산 종주 이후 작은 아이의 몸무게는 쑥쑥 늘었고 예상한 바와 같이 이제는 동네 뒷산도 업고 갈 수 없게 되었다.
더 늦기 전에 다녀오길 잘했다. 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