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종주, 예행연습

- 4살 아이와 지리산 종주, 가능? 불가능?

by 안녕나무

#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십 대가 되면서 자기 세상을 꾸리기 시작한 아들과 곧 업고 갈 수 없을 만큼 커버릴 딸과 함께 별빛이 쏟아져 내렸던 지리산에 꼭 가고 싶었다. 그 품속을 함께 통과하고 싶었다. 아이 둘을 데리고 지리산 종주를 가자고 했다가 남편에게 무모한 계획이라며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소리까지 들었다. 고막에 울림은 조금 있었을 뿐 뇌에 빨간 불이 들어오진 않았는데 '이건 될 일'이라 여겼기보다 '올해 지나면 못 간다'가 분명히 느껴졌다. 아이를 키운 지 꼭 십 년이 되는 해였다. 삶의 큰 마디 하나가 매듭지어지고 있었다. 나는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해 지리산의 기운이 너무나도 필요했다. 그러나 겁먹은 사람과 함께 먼길을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먼저 죽을 곳인지 살 곳인지 노고단까지만 함께 가서 대피소 체험만 하루 해보고 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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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구간 : 성삼재주차장~무넹기~노고단대피소~노고단고개 : 당일
소요시간 : 01 시간 00분 거리 : 4.7 ㎞ 난이도 :



노고단 가는 길, 어린이와 걷기 좋다.

# 연습, 아이와 대피소에서 하루를 묵어보다.


성삼재에 차를 주차했다. 나와 큰 아이는 각자의 배낭을 메고 남편은 작은 아이를 등산 캐리어에 태워 멨다. 남편의 짐이 가장 무거웠다. 노고단까지 아이들과 함께 걸어가던 남편이 "길이 많이 좋아졌네" 하는 소리를 듣고 피식 웃었다. 20년 전에 갔던 지리산 길을 기억하는 남편은 그때 생각으로 안된다고 했던 거구나 싶었다. 길은 아이들과 걷기 편하게 닦여 있었고, 작은 아이는 캐리어에서 내려와 걷는 시간이 꽤 있었다. 안내판에는 성삼재에서 노고단까지 걸어서 한 시간 거리로 나와 있었으나 아이들과 함께 가니 두 시간이 걸려 대피소에 도착했다. 대망의 대피소에서의 하룻밤, 오늘 밤을 무사히 보내야만 지리산 종주가 가능하다.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하니 입구에서 예약을 확인하고 대피소 자리를 배정해준다. 자리에 까는 모포와 덮는 이불은 빌릴 수 있어 짐을 많이 줄일 수 있었다. 남자와 여자 자는 곳이 분리되어 있지 않고 여러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자는데 한 명씩 누울 만큼의 공간이 칸칸으로 나뉘어 있다. 이곳을 베이스캠프 삼아 내일 아침에 출발하려는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이 꽤 있었다. 우린 늦게 도착해서 3층을 배정받았는데 4자리가 연속된 자리가 있어 모여 잘 수 있었다. 잠자리가 3층이 되면서 아이가 화장실 한번 가겠다고 하면 3층을 오르내리게 되었다. 화장실은 대피소 맞은편 길 건너 밖에 있다. 어릴수록 화장실은 긴급하게, 자주 요청되니 이게 가장 큰 난관으로 여겨졌다. 다행히 아이는 대피소 내부의 가파른 나무 계단을 내려가는 것을 재밌어했고, 비슷비슷한 칸막이들 중에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것도 곧 잘했다. 밥은 대피소 옆에 취사장으로 코펠과 버너와 음식들을 가지고 가서 해 먹고 식기도구와 남은 쓰레기를 다시 가지고 와야 했다. 말도 안 되는 계획이라며 신경도 안 쓰던 남편이 취사장에서 꺼내는 버너 크기에 놀란다. 누가 이렇게 큰 버너를 가져오냐며 한소리 한다. 이런 시행착오들을 점검하러 미리 와 본 거니 개선사항으로 잘 체크해 놓는다. 밤이 되니 대피소 바깥에 안개가 가득했다. 밤기차를 타고 내려와 새벽 산행에서 만난 별이 쏟아졌던 노고단을 못 보는 건 아쉬웠으나 코 앞에 화장실도 희미하게 보일 정도의 안개에 싸인 풍경도 꽤나 운치 있었다. 소등시간이 되자 "엄마 무서워"하는 아이 소리와 "자자"하는 퉁명스러운 대답들이 오갔다. 소등 이후 시간에 네 살 아이가 보채면 낯선 곳에서 잘 달래 지지도 않고 데리고 나가서 잠들 때까지 있기도 어려울 것 같아 이어폰과 핸드폰 충전기를 챙겨 왔다. 아이가 소등되고 어리둥절해하는 시간에 좋아하는 영상을 잠들 때까지 함께 보았다. 우리 자는 자리에 충전코드가 따로 있었고 각 자리가 칸막이로 구분되어 있어 가능했다. 따라다니는 산행만 해봤지 내가 앞장서서 가자고 하고 주도적으로 준비하는 산행은 처음이다. 우리 목표는 지리산 종주이니 다음번엔 잘 준비해 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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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안개 가득했던 대피소의 아침. 별은 보이지 않을 뿐, 거기 있을 거야. (우) 대피소 한 칸, 상단 짐칸에 문제의 좀 컸던 버너.



다음날 새벽에 아침 지어먹으러 나갔더니 어제보다 안개가 더 자욱하다. 대피소에서 잤던 아이들이 모두 보였는데 이 순간이 참 좋았다. 어디선가 다람쥐가 내려오자 잠이 덜 깬 아이들의 눈이 빤짝거린다. 대피소 숙박객의 대부분은 아침 먹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산행을 길을 떠났고 우리는 노고단 주변을 둘러보고 주차장으로 다시 내려왔다. 그리고 바로 한 달 후 날짜로 노고단 대피소와 연하천 대피소를 연박으로 예약했다. 무리가 된다면 언제라도 뒤돌아 내려오면 되는 것이니, 일단 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