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에서 가장 높지만 아기자기했던 마니산
아이와 설악산을 다녀오겠다고 했더니 남편이 마니산이나 다녀오라고 했다. 아이도 등산 초보가 왜 자꾸 높은 산만 가느냐고 했다. 그래서 남편과 아이와 함께 다녀왔다. 해발 472 m 마니산. 둘째까지 함께하면 못 가겠다 업어달라 하는 통에 남편은 등산이 고행이 되니 질색을 하고 얼른 갔다 오고 싶은 큰 아이는 동생이 멈출 때마다 짜증이 난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집 뒤에 영봉을 아이 둘과 올라가다 큰 아이는 답답해서 작은 아이는 오빠가 화내서 한바탕 울고 있으니 지나가던 등산객이 뭐 도와줄 거 없냐고 물었던 일이 있다. 그 이후로 나도 쉽게 둘을 데리고 나서지 못한다. 정상까지는 계속 어려울 것을 각오해야 한다. 꼭대기에 다다르면 작은 아이는 큰 바위 타는 재미에 바위만 골라 올라가기 시작하고 다 왔다는 생각에 큰 아이도 신이 나서 후딱 앞서 가버린다. 하산길은 식은 죽 먹기다. 오를 때 힘들었던 얘기 웃으며 나누다 보면 어느새 등산로 입구에 다 와 있다.
아이들과 이런 과정이 힘들어도 가치 있다 생각하는 건 나지, 남편은 아니다. 남편은 그 점을 늘 분명히 짚는다. 둘째는 예쁘지만 아이와 어디를 가든 아이 따라다녀야 하는 건 똑같은데 왜 밖에서 고생해야 하느냐고 되물어온다. 둘째가 업고 갈 수 있는 마지막 무게라고 여겨졌을 때 설득해 다녀온 지리산으로 족하다. 나도 영봉 이후로는 설득까지 해서 가고 싶은 열정은 쪼그라들었다. 하아, 마니산을 어떻게 가야 하나 싶을 때 둘째 아이가 주말에 친구네 마실 초대를 받았다. 마니산으로 가는 길이 열리고 있었다.
"이번 주에 마니산 가자"
남편과 큰 아이는 떨떠름한 표정들이지만 해 놓은 말들이 있는 지라 안 간다고 하지 않는다. 작은 산에 가려니 준비할 게 없게 느껴진다. 물 한병, 각자 먹고 싶은 간식 하나씩이면 충분할 것 같다. 다만 집에서부터 거리가 있어 아침 일찍 출발해야 했다. 둘째가 놀러 가는 집에 사정을 얘기하니 아침 일찍 맡겨도 괜찮다고 했다. 마니산 출발 전 날, 내일은 눈 뜨면 친구네 집일 거라고 둘째에게 알리니 환호성을 지른다. 미안함과 행복한 마음으로 아침 7시에 이웃집 침대에 둘째를 던져놓고 강화도로 출발했다.
열 시가 안되었는데도 등산로 입구 주차장이 가득 차 있다. 남편은 이 시간에 주차장이 가득 찬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주차장 앞에 큰 길가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주차장을 가로질러 등산로 입구로 가는데 거기도 큰 식당들이 보인다. 하산길 식당으로 저곳을 가자고 의기투합했다. 10월의 끝자락에 단풍이 한창이다. 잘 닦인 등산로 입구가 넓고 환하다. 낮은 산이라 하니 오르는 마음이 여유롭다. 짧게 치고 올라가는 걸 좋아하는 아들 스타일을 고려해 계단로로 오르고 가을을 만끽하고 싶은 나를 배려해 단군로로 내려오기로 했다. 거리는 6km, 3시간이 걸리는 코스다. 아이와 함께 가니 시간은 좀 더 늘어날 것이다. 단풍이 한창인 산으로 향해가는 길이 가을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계단을 오르다 보니 벌써 정상이다. 높은 산들을 먼저 다녀 놓으니 뭐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아들과 돌아보며 벌써 끝이야 하는 표정을 나누며 웃었다. 마니산 정상에 서니 인천 바다와 강화도의 너른 들판이 한눈에 보였다. 참성단은 개방을 하지 않고 있었다.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곳으로 요새도 개천절에 제례를 올린다고 한다. 빛바랜 표지판 사진에서 선녀들이 참성대에서 춤추고 있는데 교과서에서 본 듯도 했다. 남편이 88 올림픽 성화 채화가 되었던 곳이라 알려준다. 전국 체육대회 성화 채화가 되는 곳이다. 불을 얻는 곳이라 하니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겼던 장소였겠다. 이 산으로 올라와 불을 얻어 다시 내려가는 사람들의 무리가 그려졌다. 참성단에서 불은 어떻게 붙여갔을까 궁금해졌다.
단군로로 내려오는데 약간의 울퉁불퉁한 바위길이 있었다. 그것마저 없으면 서운할 뻔했다. 좁은 바위길에 사람들이 서로 기다려주며 비켜 갔다. 둘째를 데려왔으면 정상에서 내려가는 단군 길 초입로가 어려울 뻔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포함한 가족들도 보였다. 아빠와 아들이 얘기하며 앞서가는 걸 보며 내려왔다. 귀가 좀 간지러웠다. 다 내려오니 작지만 잘 꾸며진 매점이 있었다. 테이블 두 개를 놓고 컵라면, 과자 몇 가지, 커피를 팔고 있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컵라면 하나씩 먹었다. 아이 표정도 남편 표정도 넉넉하고 둥글둥글해져 있다. 이 정도 산을 택해가면 둘째도 데리고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다음 큰 그림을 그려보며 남편과 큰 아이를 향해 나도 넉넉한 웃음이 흘러나가고 있었다.